[볼 만해?]투박한 이야기, 묵직한 감동 '고산자'

부수정 기자 2016. 9. 4.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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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 부수정 기자]
배우 차승원은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김정호로 분해 열연했다.ⓒCJ엔터테인먼트

"가슴이 뛰어서."

조선시대 지리학자 김정호 선생은 영화 '고산자,대동여지도'에서 지도를 그린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지도에 미친놈'이라 불리던 김정호는 시대와 권력에 맞서 지도를 그렸다.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는 단단한 소신과 끈기, 집념으로.

그는 조선 최고의 지도로 평가받는 대동여지도를 그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김정호를 알지만 김정호에 대한 역사적 사료는 전무하다. 언제 태어나, 언제 사망했는지도 모른다. 학자들이 추정해 판단할 뿐이다.

소설 '고산자'를 쓴 박범신 작가는 김정호를 두고 "어쩌면 유령 같은 존재다. 우리 모두 이름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위대한지는 모른다"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 김정호가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투캅스'(1993), '공공의 적'(2002)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강우석 감독의 스무 번째 작품이자 첫 사극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를 통해서다. 고산자(古山子)는 김정호 선생의 호다.

배우 차승원과 강우석 감독이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고산자)로 만났다.ⓒCJ엔터테인먼트

박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고산자'는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권력과 운명, 시대에 맞선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를 담아냈다.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김정호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CJ E&M이 120억원을 투자했다.

지도가 곧 권력이자 목숨이었던 조선시대. 소년 김정호(차승원)의 아버지는 잘못된 지도에 의지하다 길을 헤매고 목숨을 잃는다.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던 소년은 어느덧 '지도꾼'으로 성장한다.

김정호는 정확하고, 배포가 쉬운 목판 지도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는 데 몰두한다. 조선의 진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두 발로 전국 팔도를 누비다 지도에 미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하나뿐인 딸 순실(남지현)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3년 반 동안 집을 떠나 돌아다니며 오로지 지도에만 몰두한 탓이다.

미천한 신분인 그는 '길 위에는 신분도, 귀천도 없다'고 외친다. 길 위에서 그는 한없이 자유롭고,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을 꾼다. 남들이 미쳤다고 수군대더라도 그가 길을 걷는 이유는 단 하나. 꿈을 꿀 수 있고, 가슴이 뛰기 때문.

그런 그에게 목판은 '내 새끼'다. 자식처럼 아끼는 소중한 보물 같은 존재. 김정호는 조각장이 바우(김인권)과 함께 목판을 다듬어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땀을 흘린다.

그러던 중 지도를 독점하려는 흥선대원군(유준상)과 안동 김씨 세도가의 권력 다툼에 휘말리게 되고, 급기야 대동여지도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된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 '고산자'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권력과 운명, 시대에 맞선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를 담아냈다.ⓒCJ엔터테인먼트

'고산자'는 김정호의 삶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김정호의 족적과 그의 가치관, 인간적인 면모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게 전개 방식이다. 김정호가 전국 팔도를 누비는 활발한 움직임, 지도를 완성하기까지 고군분투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이야기가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딸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애통함은 관객들의 가슴을 건드린다.

김정호는 가족, 자기 자신보다 지도를 더 소중히 여긴다. 갖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지도를 지키려 했던 김정호의 신념은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올 듯하다.

극 말미 바우가 광화문에서 대동여지도를 펼치는 장면은 압권. 지도꾼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조차 동요되는 감동과 여운을 준다.

대한민국 팔도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게 영화의 미덕이다. 제작진은 마라도부터 합천 황매산, 강원도 양양, 여수 여자만, 최북단 백두산까지 총 9개월간 106.240km에 달하는 거리를 두 발로 디디며 대한민국 사계절을 담았다. 오프닝 7~8분 동안 보여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풍광에 눈이 즐겁다. 특히 백두산 절경은 마치 CG처럼 보일 정도로 환상적이다.

강 감독은 "자연경관은 발품을 팔아서 찍었고, 계절 변화는 기다림 끝에 촬영했다"며 "대한민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첫 사극에 도전한 강 감독은 "데뷔작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촬영을 결심하기까지 두 달이나 걸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각박하고 팍팍한 삶에서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힘이 돼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김정호의 이야기를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차승원 주연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만든 강우석 감독은 "김정호 선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밝혔다.ⓒCJ엔터테인먼트

차승원이 김정호로 분해 준수한 연기력을 뽐냈다. 김정호의 집념과 신념,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은 차승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목숨이 끊어지는 상황에서도 지도를 붙잡는 모습, 딸을 향한 부성애 등이 진정성 있게 와 닿는 것은 차승원의 호연 덕이다.

차승원은 "실존 인물을 소화하는 건 득보다는 실이 많다. 김정호 선생의 위대함을 연기하는 게 부담됐고 힘들었다. 김정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려고 노력했고, 그분의 1만 분의 1이라도 좇아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토로했다.

이번 영화는 차승원에게 각별한 의미가 될 듯하다. 그는 "'고산자'는 배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작품이자 포인트"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준상, 김인권, 남지현, 신동미 등도 자기 몫을 해냈다. 김인권은 "대동여지도를 펼쳤을 때 느낀 감동은 연기하면서 처음 접해보는 감정이었다"며 "견딜 수 없이 강렬했다"고 전했다. 여주 댁역의 신동미는 "대단한 작품에 출연하게 돼서 영광"이라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는 큰 반전,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사건이 없어 심심하다. 그렇다 보니 129분이 다소 길다. 화려한 양념에 깃든 관객들은 밋밋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9월 7일 개봉. 상영시간 129분.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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