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지법] 왜 축구 감독을 '선생님'이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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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축구계에서 감독이라는 단어가 뭘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말에서 기대하는 바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주젭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전술 전문가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팀 전체를 뜯어고치는 총괄 책임자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선수를 성장시키는 교육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언어권마다 감독을 지칭하는 표현은 조금씩 다르고 그 표현에는 감독에 대한 인식이 반영돼 있다. 축구 게임 이름에도 들어가는 영국의 매니저(manager)가 대표적이다.
#독일은 '단장', 영국은 '매니저'
유럽 국가 대부분은 영어의 `트레이너`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감독을 지칭한다. `훈련시키는 사람`이라는 간단한 의미가 있다. 독일은 아예 영어에서 비롯된 트레이너(trainer)라는 표현을 쓴다. 스페인어의 엔트레나도르(entrenador)도 `훈련시키다`를 의미하는 entrenar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쓰는 알레나토레(allenatore)도 마찬가지다.
이들 표현과 영국식 매니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영어에 코치(coach)도 있지만 영국 프로팀 감독은 대부분 매니저라고 불린다. 팀을 운영(manage)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표현이다. 훈련을 지휘하고 전술을 지시하는 코치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선수단 안팎을 책임져야 한다. 분업화가 제대로 되기 전 단계의 축구 문화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인데 영국은 축구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뒤에도 매니저 문화를 오래 고집했다.
최근 영국 축구는 달라졌다. 팀마다 단장, 기술이사로 번역할 수 있는 직책이 생겨 감독과 권력을 나눠 가지는 추세다. 맨체스터시티는 치키 베기리스타인 등 전 바르셀로나 출신 인사들을 중용했고, 리버풀 등은 미국계 자본이 경영하기 시작한 뒤로 미국식 합리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감독도 무소불위의 장기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2000년대 이후 코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은근한 분업화를 통해 27년 동안 한 팀을 지휘할 수 있었다.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의 `마지막 매니저`라고 불리기도 한다. 벵거 감독이 전술, 선수 관리 등 지나치게 많은 부분에 신경쓰느라 분야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수년에 걸쳐 꾸준히 제기되는 중이다.
원래 단장의 권한이 강한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구단들은 회장, 단장, 감독의 삼두체제로 운영된다. 그중 결정권과 실무적 영향력을 동시에 가진 단장이 핵심이다. 독일 구단의 단장들은 경기가 열리는 동안 벤치에 앉는다는 점부터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있다. 2011년 함부르크에서 프랑크 아르네센 단장이 감독대행을 맡았던 것도 이런 문화에서 기인한다. 독일 축구계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다 탈세로 투옥된 울리 회네스 전 바이에른 단장처럼 전설적인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반면 이탈리아 구단에서 비슷한 업무를 보는 직책은 마찬가지로 단장이라 번역되지만, 감독보다 상급자라기보다 보조자에 가까운 팀이 많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말하는 강화부장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AC밀란에서 큰 권한을 행사했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단장의 경우 실제 직책은 부회장(vicepresidente)이었다.
유럽 각국의 축구 용어 중엔 영어식 표현이 유독 많다. 축구 종주국의 영향이다. 독일의 트레이너처럼 이탈리아에서도 감독을 코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에선 선수들이 감독을 부를 때 미스테르(mister)라고 부르는데 영어의 미스터와 같은 뜻이다. 축구계에선 흔히 쓰이지만 다른 분야에선 잘 쓰이지 않는다.
영국에서 쓰는 표현 중 보스(boss), 개퍼(gaffer)는 한 조직의 리더라는 의미가 강하다. `훈련시키는 사람`이라는 기능적 측면에서 용어를 붙인 나라들과 다른 문화가 반영돼 있다. 감독의 전문성보다 카리스마를 더 중시하는 용어에서 과거 영국 축구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감독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문화, 뿌리깊은 가족주의서 비롯돼"
한국은 한자문화권 국가 중 중국보다 일본에 가까운 용어를 갖고 있다. 중국은 감독을 교련(教练)이라고 부른다. `트레이너`에 대한하는 한자가 마땅히 없어 교련이라고 옮기는 것이 비교적 적당하긴 하지만 가르칠 교(敎)가 포함됐다는 점에서 교육자라는 뉘앙스도 내포돼 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감독(監督), 일본식 발음으론 간토쿠라는 단어로 감독을 지칭한다. 일본 선수들은 가장 격식을 차려야 할 때 "XX 간토쿠"라는 표현을 쓰고, 비교적 편한 자리에서 "XX 상"이라고 감독을 부른다.
일본 선수들이 감독에게 직접 말을 걸 때도 "XX 상"이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다만 고등학교 이하 유청소년 선수들은 다르다. 일본 학원 축구 감독은 교원 자격증을 가진 교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XX 센세"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센세를 "XX 상"이라고 부르면 실례다. 축구 문화가 반영돼있다기보다 제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특수하다. 한국은 20대 중반이 된 프로 선수들도 감독과 코치를 "선생님", 더 친근하게는 "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 유소년 선수들이 흔히 쓰는 표현은 "감독쌤"이다. 서양 선수들이 감독과 어느 정도 친해지면 아무런 호칭 없이 이름만 부르는 것과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외국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한국 유망주들도 감독을 이름으로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식보다 자신이 자라는 나라의 관습을 몸에 익힌 결과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선수들이 각별한 관계의 감독을 마에스트로(maestro)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개인적인 헌사가 담겼다는 점에서 "선생님"과는 차이가 크다.
`제자`, `사제 관계`라는 표현은 한국 스포츠계에서 당연한 듯 쓰이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선 잘 발견되지 않는 특이한 용어다. 안익수 U-19대표팀 감독은 청소년 선수들을 지도하는 지금뿐 아니라 부산아이파크 시절에도 20대 선수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스포츠평론가 정윤수 한신대 교수는 스승과 제자를 강조하는 한국식 축구 용어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가족주의가 스포츠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난다는 걸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정 교수는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뿐 아니라 "어떤 조직을 이끌어가는 정서적 원리가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인식이라면 그건 가족주의"라고 진단했다. 과거 축구인들은 "선수는 아버지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을 곧잘 썼는데, 여기서 아버지란 축구 기능을 가르치는 감독을 넘어 인맥을 형성하고 진학을 밀어주는 등 사회적 후견인 역할까지 하는 감독을 의미한다.
가족주의가 늘 나쁜 건 아니다. 드라마 <미생>에 등장하는 영업 3팀은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을 중심으로 뭉친 가족 같은 팀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담긴 한국식 가족주의엔 폐단이 더 많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감독이 일종의 가부장으로서 모든 측면을 관장하려 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심리 치료가 필요한 선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선수를 감독 혼자서 모두 책임지려다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정 교수는 축구계가 분업화, 전문화되다보면 가족주의를 프로페셔널리즘이 자연스럽게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상명하복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일본과도 차이가 있다. 재일교포로 한일 양국을 모두 취재해 온 신무광 축구전문기자는 "일본에 비해 한국 선수들이 감독을 더 어려워한다. 일본 선수들에게 감독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쉽게 답을 들을 수 있다. 한국 선수들은 험담이 아닌 경우에도 감독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한국 축구계가 일본보다 경직돼 있는 이유를 국민성 차이에서 찾기엔 무리가 있다. 종목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 기자는 "일본 야구계는 한국 축구와 비슷하다. 일본 야구 감독은 코치를 넘어 선생님 같은 존재다. 감독의 말은 무조건 따라야 하고, 선수들은 감독을 어려워한다"고 설명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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