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판정육점 2대와 3대를 잇는 이경수·준영(완쪽)씨 부자가 집무실이라 할 수 있는 책상 앞에 나란히 자리했다. 수십 년 써온 출납장부 앞에서 웃는 표정은 순조로운 대물림을 보여주는 듯하다.
불고기용 앞다리살
부채살(일명 낙엽살)
차돌박이
팔판정육점 2대와 3대를 잇는 이경수·준용(왼쪽)씨 부자가 집무실이라 할 수 있는 책상 앞에 나란히 자리했다. 수십 년 써온 출납장부 앞에서 웃는 표정은 순조로운 대물림을 보여주는 듯하다.
3대 76년. 이번엔 음식점이 아니라 음식 명가에 고기를 대는 정육점 얘기다. 명절 앞두고 품질 좋은 소고기 믿고 살 만한 곳 찾는 사람들을 위해 소개한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는 그곳 주인을 ‘전설적인 정육 명장 이경수 선생’이라고 칭송했다. 날마다 대기손님이 길게 꼬리를 무는 우래옥·하동관에 70년이나 고기를 대고 있는 ‘주식회사 팔판정육점’(서울 종로구 팔판길 19 / 전화 02-732-4757)이다. 겉보기엔 시골 푸줏간 같지만 암소만 고집하는 고급 정육점이다. 매장 뒤 별채에 소 도체(屠體) 240마리가 들어가는 저온창고를 갖춘 대규모다. 서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
이경수(68) 회장은 부친(고 이영근씨)이 1940년 창업한 정육점을 ‘매입’해 42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차남 준용(43)씨에게 대물림 중이다. 42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그는 ‘전설’이 됐고, 서울 최고의 음식점에서 70년이나 이 집 고기를 쓸까.
검은 머리가 거의 없는 백발의 이 회장은 웃는 모습이 산타클로스를 연상시킨다. 외모만 그런 게 아니다. 실제 퍼주는 게 일상일 정도로 이웃에 나눠주는 걸 좋아한다. 골프 빼고는 유일한 취미생활이라고 스스로 꼽는 일이다. 고기를 풀어 팔판동 골목잔치도 열어주고, 친구들 초대해 구워 주기도 한다. 나도 그런 자리에 몇 차례 낀 적이 있다. 10년 가까이 내왕하며 이런 저런 자리에서 그의 ‘전설’을 단편적으로 들어온 터에, 이번엔 작심하고 사연을 들어봤다.
◇”나는 거지였다”=1950~1960년대 부친은 정육점 7곳을 경영했다. 당시 한강이북 지역 군부대에 고기 군납을 독차지했다. 하루 소 80여 마리, 돼지 300~350마리를 도축해 납품했다.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10억원어치쯤 된다고 한다. 부친은 기업도 여럿 경영했지만 장남에게 맡겼다. 장남은 인천의 제절소를 포함해 9개 기업을 날려버렸다. 8남매 중 여섯째이고 아들로는 셋째인 이 회장은 형들의 실패를 보며 부친에게 큰소리를 쳤다. “저는 결혼할 때 방 한 칸만 얻어주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삼청파출소 옆 3층 건물에 방 한 칸만 얻어줬다. “그때 큰소리친 걸 10년 넘게 후회했다. 하지만 아버지 재산을 받았으면 나도 다 날려버렸을지 모른다. 지금은 형제들 가운데 내 살림이 제일 짱짱하다.”
이경수 회장의 고교 졸업앨범 사진. 76년 역사에 비해 정육점의 지난날 사진이 거의 없다.
1974년 7월 4일 부친에게서 정육점을 인수했다. 그의 차량번호가 7474인 이유다. 물려받은 게 아니라 거래였다. “창고의 고기 값은 100% 다 드리고 가게 값은 시세의 절반가량 드렸다. 처가에서 빌려서 치렀다. 본가나 처가는 부자지만 나는 거지였다.”
아버지가 42년간 날마다 적어온 출납장부를 물려받은 이준용씨는 신세대지만 여전히 수기(手記)를 한다. 컴퓨터를 쓰지 않는 아버지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휴일 없이 일을 했다. 거지 신세 면하겠다는 각오로 하루 4시간 이상은 자지 않았다고 한다. 명절도 쉬지 않았다. 명절에 문을 열면 평일보다 나았다. 오후 1시30분까지만 열어도 매상이 평일의 5~7배 올랐다. 30년을 연중무휴로 하다가 큰며느리 보고 나서 명절 당일만 쉰다. 며느리가 재벌집 딸인데 명절 쇠러 와서 시아버지가 돈 벌러 나갔다고 하면 체면이 상할 것 같아서다.
◇”하루 1시간30분 잔다”=장에 가서 소를 골라 도축장에 보내면 밤 12시5분~1시30분(공판장에서 오는 요즘엔 오전 2시~4시) 도체가 정육점에 들어온다. 지육(枝肉)이라고도 하는데, 소 한 마리에서 머리·내장을 뺀 전체를 말한다. 4분할 상태(4분도체)로 온다. 지육을 받아놓으면 4시40분 직원들이 나와서 발골하고 부분육으로 분할한 다음 정형해서 납품할 업소에 보내고 하루 영업을 시작한다. 한밤에 이런 과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 회장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방학동 집에 오가는 시간만 2시간30분이 걸려 매주 화~금요일 나흘은 아예 가게에서 먹고 잔다. 그가 잔다고 표현한 상황은 놀랍다. 10평 좀 넘는 정육점 매장 한쪽에 바닥을 30cm쯤 높게 만든, 2평이 채 안 돼 보이는 그의 집무실이 있다. 허리 높이로 칸막이만 둘렀다. 하루의 대부분을 거기서 보낸다. 밤샘을 한 그는 점심식사 후 집무의자에 앉아 1시간30분 쪽잠을 잔다. 그게 하루 수면의 전부다. 지난 42년 내내 일과가 그런 식이었다.
팔판동 골목길에 있는 정육점은 찾아서 가지 않으면 있는지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서 피곤하지 않다. 대신 집에 들어가는 날엔 누우면 바로 잠이 들어서 세상 모르게 잔다. 꿈도 안 꾼다. 42년간 꿈을 꿔본 적이 없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한번도 못 뵈었다.”
◇”가장 맛있으니까 암소”=그는 부친에게 소 고르는 법을 배우며 전국 우시장을 20여년 따라다녔다. 부친이 82세가 될 때까지 계속됐다. 그렇게 물려받은 솜씨는 발군이었다. 40년 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소 10마리를 세워놓고 눈대중으로 근수 맞추기 내기를 하면 할 때마다 이겼다. 지금은 기계로 스캔을 해 알지만 예전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서 소를 골랐다.
정육점 바로 뒤 별도 건물에 도축한 소 240마리가 들어가는 냉동창고가 있다.
음식점과 대량 거래처로 나갈 고기들이 잠시 대기하는 대형 냉동창고 내부.
정육점 매장에도 대형 냉동고가 3개나 있다. 바닥을 30cm쯤 높여 칸막이를 두른 곳은 주인 부자의 집무공간이자 이경수 회장의 쪽잠 자리다. 2평이 채 안 된다.
매장 소매용 고기를 저장하는 냉동고 내부.
귀를 만져서 가죽이 겉돌면 물 먹인 소다. 앞가슴 늘어진 부분이 두꺼우면 얇은 소보다 고기가 20~30근(12~18kg) 적다. 옆구리 거죽을 잡았을 때 두꺼우면 잘 먹인 소다. 그런 소는 살이 많다. 얇게 잡히면 근량이 적다. 7~8% 차이가 난다. 꼬리를 들어 항문 주변에 혹처럼 삐져나온 덩어리가 있으면 100% 좋은 소다.”
소는 살아있을 때 600kg 내외를 가장 좋은 걸로 친다. 거기서 암소는 살코기가 390근(234kg / 39%) 나오면 최상이지만 황소는 480근(288kg / 48%) 정도 나온다. 90근 차이(9%p)가 나지만 값은 암소가 100만원쯤 비싸다. 산술적으로 보면 암소만 취급하면 앉아서 밑지는 장사다. 하지만 팔판정육점은 암소만 고집한다.
최상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암소가 맛있다. 황소를 거세해서 키우면 중성화돼 지방이 많아지고 맛도 황소보다 좋아진다. 그래서 요즘 거세우가 시장에 많다. 하지만 암소와 거세우를 함께 취급하면 소비자가 싸잡아 낮춰 본다. 최상급 암소만 파는 건 손님과 나의 약속이다.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공판장에서 소의 지육과 함께 온 지난 2월 25일~8월 9일 사이 축산물 등급판정확인서를 살펴보니 모두가 암소였다. 1++(투뿔) 등급은 4마리 중 1마리 꼴이다.
소 한 마리에서 나온 통 등심. 윗등심·아랫등심·꽃등심·살치살·채끝살 등이 한 덩어리로 있는 상태다. 지육 400kg 소에서 등심은 35~38kg쯤 나온다.
이 회장 설명에 따르면, 거세우 고기는 연하면서 맛있다. 암소는 연하고 맛있으면서 고소한 여운이 길게 남는다. 그게 차이다. 사람들은 1++(흔히 ‘투뿔’) 고기를 찾는데 그렇게 흔한 고기가 아니다. 400마리 도축하면 암소 투뿔은 3~4마리뿐이다. 거세우에서는 20~30마리 나온다. 팔판정육점에 한 달에 들고나는 소는 25마리 정도. 그 중 ‘투뿔’은 소 4마리에 1마리 꼴이다. 나머지는 1+다. 지난 2월 25일~8월 9일 들어온 소 130~140마리 분의 ‘축산물 등급판정확인서’ 철을 넘겨보니 대략 그렇다.
부친은 우시장에 좋은 소가 나오면 다른 사람은 엄두도 못 내게 할 정도로 값을 불러 반드시 차지했다. ‘팔판동 대장’이라는 별명은 울릉도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좋은 고기에 대한 욕심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지금도 공판장에 좋은 암소가 나오면 앞뒤 안 가리고 지른다. 한우 암소 ‘투뿔’은 귀하니까 있으면 일단 사들이는 것이다.
현재 대물림 중인 아들(3대)에게는 소 고르는 수련이 필요 없게 됐다. 시장이 변했다.10여 년 전부터는 우시장에 안 간다. 수원·안성·안중·평택, 이런 데 우시장이 다 죽었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 상인들을 골탕 먹였다. 초음파 촬영해 마블링 좋은 소는 도매시장으로 보내고 겉만 멀쩡하게 보이는 나쁜 소만 우시장에 내니까 서울 업자들이 한두 번 당하다가 시장에 안 가기 시작했다. 1++라고 해서 샀는데 잡아보니 2~3등급이 나왔으니까 속인 거지.” 그는 지금도 우시장이 서던 경기·강원, 충청 북부 일대의 5일장 날짜를 줄줄 꿴다. 소를 사러 시장을 찾아 다닐 땐 하루 500km씩 차를 몰았다. 장에 나갈 일이 없어진 지금은 안성·안양·음성 축산물 공판장을 통해 고기를 주문한다. 명절에는 부천·익산에서도 고기를 들여온다.
◇미국 MBA 아들 “아버지에게 배운 ‘장사’ 요체는 인내”=아들 준용씨는 정육점 3대 대물림을 시작한 지 5년2개월째다. 교육 관련 기업의 CEO이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가업을 이으면 기업 연봉의 3배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기업에서 잘 나가는 아들을 정육점 운영에 끌어들이는 걸 극력 반대한 어머니는 6개월이나 눈물로 저항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편찮으셨을 때 부재(不在)상황이 떠올랐다. 내가 맡아야 할 것 같았다. 초기엔 고기에 대해 책도 많이 보고 인터넷 검색해 소고기에 관한 자료를 500페이지 넘게 갈무리해 공부했다. 머리에 정보는 잔뜩 넣었는데 현장에 서니까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쉽다는 전각(앞다리) 발골(뼈·살 분리)부터 도전했다. 처음엔 ‘빨간 건 고기, 하얀 건 뼈’ 정도만 보였다. 지금은 작업을 직접 하지 않지만 30~40년 경력의 형들(직원들을 그렇게 불렀다)과 비슷하게 본다.”
스테이크용 안심
아버지에게 배운 건 ‘장사’다. 경영학 전공해 미국에서 MBA를 했는데 장사와 경영은 다르더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손해 보는 일을 할 때가 있다. 예전 아버지가 그럴 때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해보니까 다 이유가 있더라. 손님 응대하는 자세도 많이 배운다. 지나가는 재벌 회장보다 내 고기 사 가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더 공손하라고 가르치신다. 핵심은 ‘인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99% 내가 운영한다. 아버지께서 아주 꼼꼼하고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초기엔 자리 비우는 것도 불안해 하고 나갈 때는 해야 할 일을 일일이 메모해놓고 돌아오면 확인하고 하셨다. 빈틈 없는 분인데 요즘엔 가끔 구멍이 보인다 그걸 젊은 내가 메워 드린다. 근래는 내가 알아서 다 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매장 소매 ‘가성비’ 좋아=김영란법 영향은 없겠는지 이 회장에게 물었더니 단호하다. “우리는 큰 음식점이나 성북동·북촌·평창동 회장님 댁들이 단골이고, 대량거래를 주로 하기 때문에 그 법하고 별로 상관이 없다. 매장 소매는 동네장사인데 이웃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밑지지 않는 수준에서 싸게 판다.”
동네장사로 매장에서 파는 고기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아주 좋다. 저울 실하고, 믿을 수 있는 암소고기가 품질에 비해 값이 싸다. 특히 소 꼬리·족·사골을 사면 수지맞는다. 주력상품이 아닌 부산물이어서 박리(薄利) 처분한다. 품질은 백화점 안 부럽지만 값은 훨씬 저렴하다. 명절에 집안 어른들 선물로 안성맞춤이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으로 검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