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말들] '사랑꾼' 샤갈이 연인을 추모하는 방식
[오마이뉴스 글:문하연, 편집:최은경]
미술작품 한 점을 독자와 함께 감상하며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와 작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미술전문가의 입장보다는 관람객 입장에서 그림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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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생일(마르크 샤갈,1915,뉴욕 현대미술관) |
| ⓒ 뉴욕현대미술관 |
정열의 레드 카펫 위,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벨라와 대조적으로 샤갈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그가 더 꿈 길을 걷고 있는 중임을 표현한 거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조차도 둘의 사랑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하고 차분하다. 연령대별 사랑의 느낌이 차이가 있다면 이건 단연코 20대의 사랑이다. 순수한 사랑에의 열정이 가득 찬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작품 '내 생일'
"나는 벨라가 내 과거, 현재, 미래까지 언제나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벨라와 처음 만났던 순간 그녀는 나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꿰뚫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바로 나의 아내가 될 사람임을 알았다." (중략) "내가 나의 창문을 열기만 하면, 벨라가 푸른 공기, 사랑, 꽃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벨라는 순백의 혹은 검정색의 옷을 입은 채 오랫동안 캔버스 위를 떠다니며 나의 예술을 인도하는 것 같았다." (샤갈의 자서전 나의 인생 중)
벨라는 부유한 보석상의 막내딸이다. 러시아에서도 손에 꼽히는 성적을 낸 우수한 학생이었고 러시아 여성 3%만 입학이 가능하다는 모스크바 게리에르여자대학교를 입학한 수재였다. 배우가 꿈이었던 그녀는 꿈을 접고 20살의 나이에 28살의 샤걀과 결혼한다.
러시아의 유대인 마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야채를 파는 어머니 사이 9남매의 장남으로 어렵게 자랐다. 그의 어린 시절의 본명 모이쉬 자카로비치 샤갈로프. 가난한 형편에 미술은 꿈꾸기 어려웠으나 '맹자엄마'같은 교육열을 가진 어머니덕분에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파리로 간 샤갈은 러시아 출신 유대인 예술가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프랑스식 이름인 '마르크 샤갈'로 개명했다. 하지만 그의 정체성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1910년, 후원자를 만난 샤갈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파리로 가서 그림을 그리며 모딜리아니, 레제, 아키펜코를 만났고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를 쓴 기욤 아폴리네르와도 교류한다. 샤갈은 예술의 변방 러시아와 비교 불가한 파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술의 태양은 파리에서만 빛나고 있었다."
1914년 베를린에서 첫 대형 개인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샤갈은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벨라도 만나기 위해 잠시 귀국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파리로 돌아가지 못 한다. 다음해에 샤갈은 벨라와 결혼하고 딸 이다를 낳는다. 은유로 가득 차있는 샤갈의 그림을 이해하기위한 몇 가지 소재를 알아보자.
평생 외국을 떠돌았던 샤갈은 그의 고향을 배경으로 연인, 염소, 소, 닭과 같은 동물, 그리고 바이올린, 꽃을 주로 그렸다. 동물들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친근한 동물이기도 하지만 종교적인 뜻이 함축되어 있다.
당시 러시아의 유대교는 '하시디즘'이라는 분파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사후에 닭, 염소, 말 등의 동물로 영혼이 들어간다고 믿었다. 또한 소는 러시아 대륙을, 바이올린은 유대교를 상징한다. 특히 바이올린은 그가 자주 연주했던 애정하는 악기다. 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랑이다. '내 생일'에 등장한 작은 꽃다발은 해를 거듭할수록 벨라를 향해 커져만 가는 사랑처럼 커지고 다채로워진다.
환상과 상징은 장치일 뿐, 그것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진실한 현실임을 그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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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인들(마르크 샤갈,1937, 국립 이스라엘 미술관) |
| ⓒ 국립 이스라엘미술관 |
이즈음에 벨라도 자신의 회고록을 2권 썼다. 어린 시절 기억을 모아 '타오르는 불꽃'을, 샤갈과의 만남과 사랑을 모아 '첫 만남'을 집필했다. 그녀가 '타오르는 불꽃'을 쓰는 동안 그는 '첫 만남'에 들어갈 삽화를 그렸다.
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중년의 부부가 지난날을 회상하며 어떤 일화를 넣을지, 그 글에 어떤 그림이 어울릴지를 이야기하며 보냈을 따뜻한 시간들. 사랑이주는 감동은 이렇듯 사소한 것에서 나온다. 힘든 시간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함께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공유.
그는 딸 이다와 함께 벨라의 회고록 '타오르는 불꽃'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삽화를 그리며 그 시간들을 버텼다. 그녀 사망 후 9개월, 샤갈은 다시 붓을 들어'그녀 주위에'라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다"라고 말한 샤갈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절망 속에서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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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 주위에(마르크 새갈,1945,조르주 퐁피두센터) |
| ⓒ 조르주 퐁피두센터 |
그런데 샤갈은 왜 고개를 거꾸로 그렸을까. 내면에의 응시로 주로 풀이가 되지만, 내게는 그녀를 떠나보낸 슬픔을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처럼 보여진다. 작품을 지배하는 슬픔 속, 남자의 눈빛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넋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정할 수 없는 그녀의 죽음. 서로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3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상대를 떠나보내는 심정은 어떤 걸까.
딸 이다의 친구였던 25살 연하 버지니아가 샤걀의 가사도우미로 들어간 후 그는 그녀와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고 7년을 살았다. 하지만 벨라를 잊지 못하는 그를 그녀는 결국 떠난다. 1952년, 발렌타인 브로드스키(애칭 바바)를 만나 그녀와 재혼한 후 샤갈은 다시 활력을 찾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며 98세까지 살았다.
샤갈을 사랑 충만한 예술가로 살게 해준 5명의 여인들. 어머니, 벨라, 이다, 버지니아, 바바. 그녀들이 없었더라면 샤갈의 그림은 다른 색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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