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 1곡 1-3행 | 지옥은 당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미궁

2018. 8. 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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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으로 들어가는 단테’. 귀스타브 도레, 1861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혹은 ‘소유하고 싶은 것들’인가? 내 직장, 가족, 학력, 친구들 그리고 이것들이 가져오는 부와 명예가 ‘나’인가? 나는 우연히 길바닥에서 커다란 설탕 조각을 발견한 개미와 같다. 나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오기 위해 온 힘을 소진한다. 인간은 죽음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어 그 순간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혜안이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깨닫는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결심이다. 나는 오늘이라는 원석을 어떻게 가공할 것인가? 자신에게 감동적인 일을 발견하고 그것에 몰입하는 사람에게 신은 ‘아름다움’을 선물해준다. 아름다움은 몰입할 때, 자신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다. 고대 인도의 스승이 인류 철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은 산스크리트 문장으로 정리했다. ‘타트 트밤 아시(tat tvam asi)’. 번역하자면 “네가 추구해야 할 그것(tat)은 바로 ‘너 자신(tvam)’이다”다. 나의 하루는 내가 두 손으로 정과 망치를 들고 가공할 예술작품이다. 훌륭한 작품의 기준은 ‘의미(意味)’와 ‘미(美)’다. 그 작품이 자신에게 중요한가 혹은 자신에게 눈물을 자아낼 정도로 감동적인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완수해야 할 만큼 시급한가? 오늘이란 작품은 나에게 감동적일 때 타인에게도 감동적이다. 나에게 의미가 있을 때, 타인에게도 의미가 있다.

단테가 살던 시절, 인류는 이데올로기의 노예로 살고 있었다. 중세 유럽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장악한 노리개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고정돼 있었고 소위 ‘거대한 존재의 사슬’ 안에 먹이사슬의 한 고리처럼 존재했다. 중세인들은 성 어거스틴이 로마 멸망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원인을 인간 내면에서 찾아낸 4세기 이론을 아직도 신봉하고 있었다. 그 이론이 바로 ‘원죄’다. 어거스틴은 문화적으로 우월한 로마가 고트족과 같은 야만족에 의해 멸망당하는 이유를 인간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오만’에서 찾았다. 그 이론이 단테가 ‘신곡’을 쓰기 시작한 1300년에도 맹위를 떨치는 ‘삶의 교본’이 됐다. 단테에게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할 대상이다. 인생은 ‘여정’이며 하루는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목적지를 가는 과정으로 건너뛸 수 없는 징검다리다.

필자는 신곡의 첫 번째 책인 ‘인페르노(지옥)’를 소개하는 이 지면에서, 이탈리아어 원문을 싣고 그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단테가 의도한 내용을 700년이 지난 후, 매경이코노미 독자들에게 솜씨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원문 단어에 대한 설명 없이는 불가능하다. 34편으로 이뤄진 ‘인페르노’를 소개하기 위해 1편부터 그 핵심적인 내용이 담긴 원문 3절을 선별해 소개, 설명할 것이다.

‘인페르노’ 제1곡의 핵심은 첫 3구절에 등장한다.

(1)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넬 메조 델 캄민 디 노스트라 비타) ; (2)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미 리트로바이 페르 우나 셀바 오스쿠라) ; (3) che la diritta via era smarrita(체 라 디리타 비아 에라 스마리타).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리 삶의 여정 한가운데서, (2) 나는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3) 그곳은 지금 길이 숨겨진 장소다.”

단테는 자신이 경험한 지옥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지하세계로 데리고 간다. 그는 자신이 본 지옥은 죽은 다음에 가는 실제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신비한 미궁이라고 묘사한다. 이곳은 수많은 강들이 구역을 나누고 괴물들이 그 경계를 지킨다. 그는 1편 1행에서 ‘나의 여정’이 아니라 ‘우리 여정’이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함으로써 이 여정이 인류 보편적이라고 주장한다. 단테는 ‘우리의 삶’을 ‘여정’이라고 정의한다. 단테는 ‘캄민(cammin)’이란 특별한 단어를 사용한다. ‘캄민’은 자신이 가고 싶은 목적지를 위해 매일매일 걸어가는 길이다. ‘캄민’은 목적이 있는 삶이다. 그래야 오늘이 의미가 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내가 오늘 내딛는 발걸음 하나가 필수 불가결한 단계다. 단테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오늘 이 순간을 자신의 삶을 위해 결정적인 순간으로 낚아챘다. 그래서 그가 사용한 단어가 ‘한가운데’라는 표현이다.

1행의 시작인 ‘넬 메조(Nel mezzo)’에는 단테가 자신의 상상력에 기반한 학문 전통과 그것을 통해 ‘신곡’에서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숨겨 있다. ‘메조(mezzo)’는 ‘메조소프라노’라는 단어에도 등장하듯 ‘중간’이란 의미다. 단테가 이 단어를 사용한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단테가 자신의 고향 피렌체를 떠나 외국에서 외교관으로 재직할 때 피렌체에서는 교황과 황제의 권력 다툼이 있었고, 단테는 자신의 고향에 죽을 때까지 돌아가지 못했다. 단테는 이 취약한 상황에서 결정한다. 그는 피렌체를 넘어,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깊이 묵상했다. 유럽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취약한 모습을 직시하고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단테는 그것을 발굴해내기 위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인페르노’, 즉 ‘지옥’으로 내려간다.

단테는 ‘메조’란 단어를 성서가 상징하는 헤브라이즘 전통과 그리스-로마 전통 그리고 중세 신학과 철학을 기반으로 탄생시켰다. 단테는 1265년에 태어나 1300년, 즉 그가 35세가 되던 해, 지옥 여행을 시작한다. 구약성서 시편 90편 10절에 등장하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다’라는 구절에 근거했다. 그가 35세가 되던 해는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다. 성서 전통이 단테에게 실질적인 숫자로서 ‘메조’란 단어를 사용하게 만들었다면, 그리스-로마 전통은 ‘메조’의 문학적이며 철학적인 짜임새를 제공했다. 서양문학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나열하지 않고 ‘사건의 중간에서’ 시작한다. 로마 수사학자 호라티우스는 ‘시학(Ars Poetica)’이라는 작품에서 서양문학의 효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도 처음부터(ab ovo)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중요한 사건에 매달려, ‘사건의 중간으로(in medias res)’ 들어갑니다.”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양문학은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에서 시작한다. 단테는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메조’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처음이면서 마지막이며 미래와 과거가 만나 처음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단테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게 됐다. 그는 스스로에게 1인칭일 뿐 아니라 1인칭을 바라보는 3인칭이기도 하다.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된 것이다. 그는 ‘어두운 숲 속(selva oscura)’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을 볼 정도로 성숙해졌다. 서양 전통에서 ‘숲’은 우주가 창조되기 전, 혼돈의 상태며 영웅이 되기 전 범인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 숲은 빛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캄캄하다. 단테는 그곳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었다. 그곳으로 진입해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보물이란 3행에 등장하는 ‘지름길’이다. 삶을 위해 최적화된 유일한 길이다.

단테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먼저 지옥으로 내려갔다. 지옥에서 자신이 버려야 할 것들을 덜어내야 천국으로 갈 수 있다. 단테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왜 사십니까? 오늘이 당신의 삶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을 관찰하고 있습니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69호 (2018.08.01~08.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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