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차범근 축구대상' 신현준 "'인도네시아의 차붐' 키우고 싶어요"

피주영 2018. 8.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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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피주영]
제8회 차범근 축구상 대상 출신 신현준. 피주영 기자

"'인도네시아의 차범근'을 키우는 게 꿈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신현준(35)의 목표는 크다. 인도네시아 프로축구 선수 출신인 그는 2년 전 처음 축구 학교를 열고 한인과 현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23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16강 한국-이란전이 열린 치카랑의 위바와 묵티 스타디움에서 만난 그는 "축구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제자들이 50~60명으로 늘었다"면서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경험 축구를 전파해 내 영웅인 차범근 감독님과 같은 선수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신현준은 신정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축구화를 신었다. 골 결정력과 발재간이 좋았다는 그는 일찌감치 재능을 꽃피웠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는 또래 최고 유망주에게 주어지는 차범근 축구상 대상(1996년·8회)을 수상했다. 앞서 1995년(7회) 대상 수상자는 김두현(네게리 셈빌란)이었고, 1994년(6회)은 최태욱(현 축구대표팀 코치)이 받았다. 김두현은 2008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웨스트브로미치 알비온에 진출했고, 최태욱은 히딩크호의 막내로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썼다.

차범근 축구상 대상 수상 후 차범근(윗줄 가운데)와 기념 사진을 찍은 신현준(가운데). 신현준 제공
'롤모델 차범근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신현준은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목동중 3학년 땐 프로축구 부천 유공에 '특별 연습생'으로 뽑혀 윤정환(현 세레소 오사카 감독) 조성환(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강철 등 국가대표 출신 스타 선수들과 훈련했다. 신현준은 "윤정환 형과 룸메이트 생활을 했다. 선배님들도 한참 어린 내가 신기했는지,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고 많이 챙겨주셨다"고 기억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1998년에는 브라질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 최고의 축구 강국에서 선진 축구를 배우기 위해 상파울루의 까레까 축구학교에 들어갔다. 신현준은 "문화 충격이었다. 숙소부터 운동장과 코칭스태프까지, 브라질은 오직 축구에만 전념하고 잘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물만난 고기처럼 그라운드를 누볐다. 포지션도 미드필더로 변경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체득한 자유분방한 축구는 독이 됐다.

내셔널리그 시절 신현준. 내셔널리그 지공
2002년 귀국해 전북 현대에 연습생으로 들어갔지만, 한국식 축구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이듬해 프로 계약 제안을 받고도 8개월 만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프로팀 바스코 다가마의 19세 이하(U-19) 팀으로 유턴했다. 2003년 재차 국내 무대에 도전했지만, 당시 강한 힘을 앞세운 압박과 스피드 축구가 유행이였던 K리그에서 설 자리는 없었다. 테스트를 받았던 FC 서울·수원 삼성·포항 스틸러스 등은 모두 '볼은 예쁘게 잘 차지만, 힘과 속도가 아쉽다'며 퇴짜를 놨다.
그를 받아준 것은 실업축구(내셔널리그) 강릉시청(2003~2004년)이었다. 강릉시청을 거쳐 서산시민구단(2005~2007년) 대전한국수력원자력(2008년) 천안시청(2009년) 등 내셔널리그에 몸담은 7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신현준은 "처음엔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무척 상했다. 프로에 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면서도 "최고라는 생각에 젖어있던 나는 내셔널리그에서 좋은 선생님과 동료를 만나 팀워크를 배웠다. 프로에 갔다면 배우지 못했을 '진짜 축구'를 했다"고 고백했다.
끝내 이루지 못한 프로의 꿈을 이뤄준 곳은 인도네시아였다. 2009년 은퇴한 그는 이듬해 인도네시아 프로축구 마카사에 입단했다.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찾은 '미지의 땅' 인도네시아는 알고보니 '축복의 땅'이었다. 평균 관중 1만5000명 정도 되는 꽉 찬 경기장에서 처음 뛰던 날 신현준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뛰며 축구인생 28년 만에 처음으로 팬이라는 존재가 생겼다. 이런 게 프로 선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그는 뒤늦게 전성기를 달렸다. 현지 팬들은 그를 '미스터 신'이라고 부르며 환호했다. 신현준은 "인도네시아에서 축구를 하면 어딜 가든 알아보고 박수 쳐준다. 그는 데뷔 시즌 이후 인도네시아 리그(말레이시아 1년 포함)에서 5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

신현준은 "인도네시아는 꿈의 무대로 불리는 프리미어리그나 독일 분데스리가 부럽지 않은 곳이었다. 한국에선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이곳 팬들에게 원없이 받으며 뛰었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그 사랑을 돌려줄 때다. 재능있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유소년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서 좋은 선수로 길러내고 싶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 최고의 재능이었지만, 성인 무대에선 좌절도 경험한 신현준은 그 누구보다 좋은 스승이 될 자신이 있다.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스망앗(인니어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예요. 제 축구인생을 돌아보니 결과를 좇았다면 버텨내지 못했겠더라고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달리다보면 혹시 압니까.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차범근 축구 대상 받는 선수가 나오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자카르타=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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