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평생 사창가 여인들과 더불어 지낸 비운의 화가
젊은 연인이 지긋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꼭 안은 채 침대에 누워 있다. 그림의 전체적인 창백한 블루톤은 이들이 이미 피할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졌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침대에서 : 키스(Au lit : Le baiser, 1892년)’라는 작품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림 속 연인은 둘 다 여자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의 인생이 파란만장했으리라 느끼는 것은 대범한 주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장 없는 담담한 묘사인데도 처연한 생의 본연적 슬픔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때문이다. 지체 높은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더없이 기구한 삶을 살다 간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년)였기에 가능한 그림이 아니었을까.
동성애는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당시에는 말해 무엇하랴. 실제 이 그림은 1892년, 전시 중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철수되는 일도 겪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그는 사회적 논란을 무릅쓰고 왜 평범한 연인이 아닌 여성들의 키스를 주제로 했을까. 게다가 상당히 여러 점을 그린 것으로 볼 때 이 주제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무엇이 그를 이 주제에 천착하게 했을까.
우선 등장인물에 대한 그의 깊은 정서적 공감을 원인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로트레크는 프랑스 최고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권력 유지를 위해 이뤄진 근친혼 전통 탓인지 집안에 유전병이 많았다. 그 역시 선천적으로 병약했고 뼈가 약해 성장이 더뎠다. 모친의 살뜰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결국 13, 14세에 연이어 대퇴부가 골절된 이후 불행하게도 하반신 성장이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 이로 인해 어른의 몸통에 아이의 다리를 가진 기이한 형상으로 성장했다. 다 자란 키가 142㎝ 정도였고, 15세 이후 줄곧 지팡이에 의존해야만 걸을 수 있었다. 이런 신체 조건으로 인해 그는 자신과 같은 명문가 또래들이 즐기는 승마, 사냥 등 야외활동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에게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능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림이었다. 어머니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불구로 인해 일반 여성과의 연애가 어려웠던 로트레크는 자연스럽게 매춘부들과 가까이 지내게 됐다. 그러면서 그녀들의 지난한 삶을 기록하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화폭에 담았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그는 알고 있었으리라. 같은 신분의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무의식중에 그로 하여금 평생 사창가 여인들과 더불어 지내도록 했을 것이다.
‘침대에서 : 키스’에 등장하는 여인들 역시 매춘부다. 당시 그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지친 육신을 보듬으며 정신적 위안을 얻는 레즈비언 섹스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화가 개인의 불운한 삶이나 취향의 투영만이 아니라 세기말의 퇴폐적인 당대 사회 분위기를 거울처럼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당시 파리는 극심한 경제적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농촌에서 상경하는 여자들의 수가 급증하는 추세였다. 1870년대 후반에는 그 정도가 극에 달했다. 국가가 번성하는 사창가를 통제하기 시작했으나, 오히려 많은 여성이 생계를 위해 개인 매춘부로 길에 나서는 결과를 가져왔다. 심지어 어린 소녀까지도.


이렇게 그는 평생 사창가의 모습을 원 없이 그리며 떠돌았다. 그리고 심각한 알코올 중독과 매독으로 심신미약 상태가 돼서야 겨우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다. 일설에 의하면 죽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뱉은 말은 “늙은 멍청이(Le vieux con)!”였다고 한다. 불구가 된 이래 그는 아버지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 부와 명예, 모든 것을 갖춘 부친에게 그는 자식이 아니라 인정하기 싫은 짐이었을까. 서른일곱의 짧은 생애 동안 평생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린 것은 아마도 아버지를 향한 증오, 그리고 가슴 깊이 감췄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내면의 뜨거운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의 대표작 중 한 점인 ‘분홍색 스타킹을 신고 앉아 있는 댄서(Danseuse assise aux bas roses, 1890년)’에는 특별한 일화가 있다. 다양한 기부활동으로 명망이 높았던 미국인 컬렉터 존·프랜시스 로브(John & Frances Loeb) 부부는 1963년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이 작품을 처음 마주했다. 프랜시스는 남편 존이 이 그림에 운명 같은 이끌림을 느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25만달러(현재 가치로 약 25억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돌아섰다. 프랜시스는 그림의 가치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남편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몰래 구매해 크리스마스에 깜짝 선물로 이 작품을 선사했다.
금슬이 남달랐던 부부는 1996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고, 주로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작품을 소장했던 이들의 컬렉션이 1997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출품됐다. 낙찰가 총액이 9270만달러(약 1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싱글 오너 컬렉션으로는 갠스(Ganz) 부부에 이어 당시로서는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이 경매에 출품됐던 작품 중에서 ‘분홍색 스타킹을 신고 앉아 있는 댄서’에 가장 치열한 경합이 붙었다. 4명의 전화 응찰자와 2명의 룸 응찰자가 참여한 끝에, 높은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는 1320만달러(약 147억원)에 낙찰되면서 당시 로트레크 작품 중에서 가장 높은 경매 낙찰가를 기록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3호 (2018.08.29~09.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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