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가구 바닥 뜯어라" 임대아파트 라돈 공포

이은지 2018. 11. 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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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대리석서 라돈 5배 검출"
부산시 조사 땐 "기준치 미달"
주민 "공중에서 측정, 못 믿어"
범정부 라돈 대응 TF 재조사키로
부산시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지난 14일 부산시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라돈 측정을 앞두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오른쪽은 공정시험 기준에 따라 지상 1.2m에서 라돈을 측정하는 모습. [사진 부산시]
부산시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A씨는 다른 지역 아파트에서 라돈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보고 임신한 아내의 건강이 걱정됐다. 발암물질이 혹시 자신의 집에서도 나오고 있다면 아내는 물론 태아의 건강까지 장담할 수 없어서다.

A씨는 직접 간이 라돈측정기를 사와 거실 바닥에 설치했다. 얼마 후 측정기에 뜬 수치를 보고 A씨는 눈을 의심했다. 라돈 검출 수치가 공공주택 실내공기 질 기준치인 200베크렐(㏃/㎥)의 5배에 달하는 1000㏃/㎥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 A씨는 지난 11일 아파트 커뮤니티 사이트에 측정 결과를 올렸다. 5000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주민들은 불안감에 떨기 시작했다.

라돈은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 쪽에 주로 깔린다. 기어 다니는 아이가 있는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컸다. 라돈은 주로 돌에서 검출되기 때문에 주민들은 대리석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당장 뜯어내자는 민원이 쏟아졌다. 하지만 임대아파트라 주민 마음대로 대리석을 교체할 수 없었다. 주부 김모(36)씨는 “화장실 대리석 위에 아이들 칫솔도 있고, 대리석 옆 욕조에서 오랫동안 목욕도 한다”며 “2014년 7월 입주한 이후 4년 동안 라돈을 흡입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북·강서을 지역위원회에 라돈 재측정을 의뢰했다. 지역위원회는 강서구청에서 간이 라돈 측정기 8대를 빌려 라돈 수치를 측정했다. 그 결과 세 가구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부산시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부산시는 한국환경기술연구원과 함께 지난 14일 정밀 측정에 나섰다. 아파트 두 가구의 거실과 화장실에서 검사가 이뤄졌다. ‘실내 공기 질 공정시험’ 기준에 따라 라돈 측정기는 지상 1.2~1.5m 높이에, 벽과 0.3m 떨어진 곳에 설치됐다. 48시간 동안 문을 닫고 라돈 검출량을 조사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거실은 36.6㏃/㎥, 화장실은 34.2㏃/㎥로 나왔다. 기준치의 6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주민들은 부산시의 측정 방법에 의문을 제기했다. 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 이정훈 위원장은 “라돈은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 쪽을 측정해야 하는데 공중에 띄운 채로 측정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A씨의 경우 바닥에서 측정했다. 간이 측정기는 공중에 설치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주민들 사이엔 부산시가 두 가구만 대상으로 측정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산시는 지난 20일 긴급히 재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시 내부에서조차 “(시가) 단독으로 측정해 봐야 같은 논란만 반복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부산시는 결국 범정부 라돈 대응TF(태스크포스)에 ‘SOS’를 쳤다.

지난 15일 출범한 라돈 대응 TF는 첫 현장조사를 부산 아파트 단지로 나서게 됐다. 재조사 시기는 12월 초로 예상된다. 조사 참여 인원과 측정 방법은 주민과 협의 후 결정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재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대리석 전면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사 측은 5000가구의 대리석을 전면 교체하려면 20억원의 비용이 든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신 이사를 원하는 주민은 위약금 없이 이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건설사와 주민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부산시가 할 수 있는 조처는 없다. 실내 공기 질 관리법에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문제는 정부가 개선을 ‘권고’할 뿐이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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