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의 기쁘고 아름다운 그 모든 시간
Q : 오랜만입니다. 계절이 여덟 번 바뀌는 동안 당신은 여전한가요
A : 저는 여전해요. 무탈하게 살고 있거든요.
Q : 시계와 함께하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죠. 루이 비통과의 인연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A : 이전에도 인연을 맺은 적 있어요. 대단한 두 디자이너의 시간을 고루 함께한, 운 좋은 사람이죠. 워치로 또 한 번 인연을 이어가게 됐는데, 신기하게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루이 비통과는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Q : 첫 시계를 가졌을 무렵, 공유는 어떤 청년이었나요
A : 막 군대를 다녀온 30대 초반이었을 거예요. 당시 시계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어느 정도 고가의 시계를 내 돈으로 구입하기로 결심했죠. 성인이 됐고,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으니 괜찮은 시계 하나 정도는 좋지 않을까 하는 통상적인 생각으로요. 벌벌 떨면서 샀죠(웃음).
Q : 의외인데요? 멋진 시계를 차고 태어났을 것 같은 사람인데(웃음)
A : 하하. 고르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어요. 남들이 봤을 때 ‘왜 저렇게까지 고민하나?’ 싶을 정도로. 당시엔 굉장히 큰 소비였거든요. 주변에서 ‘너 정도면 충분히 살 법한데?’라고 했지만, 경험이 없었으니까. 열심히 발품 팔고, 가격 비교도 하고, 오래 리서치해서 겨우 하나 샀어요. 그 시계가 여전히 소중해요.
Q : 낚시가 ‘인생 취미’잖아요. 혹시 시계보다 낚싯대 개수가 더 많나요
A : 맞아요(웃음). 낚싯대를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성격상 효율성을 따지고, 필요 이상의 소비에 대한 경계가 있죠. 검소하다는 뜻이라기 보단, 그렇게 구매해야 그 물건에 대한 애착이 커지고, 소중하게 느껴지니까.
Q : 이달 초 드디어 당신이 보내온 〈오징어 게임2〉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12월 말에 공개되죠. 열심히 찍은 작품의 공개를 기다리는 마음, 대중을 그 멋진 세계로 초대하는 기분은 여전히 떨리나요. 지금 딱 그런 시기겠네요
A : 그럼요. 오랜 기간 한뜻으로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 시청자에게 가 닿는 거니까 기분 좋은 떨림이 있죠. 이제는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불안함과 조바심이 앞섰다면, 지금은 여전히 떨리긴 하지만 시청자 반응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생겼달까요. 재미있게 보시든, 재미없게 보시든 작품으로 터져나오는 여러 반응 자체가 궁금해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은 흔치 않단 걸 알기에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Q : 예고편에서 사람들을 게임으로 초대하는 ‘딱지남’의 말끔한 수트 차림은 얄미울 정도로 격식 있었습니다. 어쩌다 이 거대한 세계의 문을 여닫는 사람이 됐네요
A : 〈오징어 게임〉은 사실 황동혁 감독님과 친분으로, 사석에서 농담처럼 시작한 카메오 출연이라 제게는 그다지 무겁지 않은 프로젝트였어요. 이렇게까지 판이 커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죠. 어쩌다 그 세계관에서 분량이 조금 늘어났는데, 지금도 남의 일 같아요(웃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에 함께할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고, 누가 되지 말자는 마음입니다. 덧붙여 그간 해보지 않던 스타일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신선함과 재미가 충만했고, 짧은 기간이나마 통렬함과 희열을 느꼈어요.
Q : 오랜 기간 연기한 당신에게도 요즘 플랫폼의 속도는 생경하게 느껴집니까? OTT나 극장 시스템의 변화는 배우에게도 새로운 에너지나 자극으로 다가오는지요
A : 그걸 외부 영향이라 표현한다면 저는 크게 영향받는 사람은 아닌 것 같고요. 다만 그 변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려고 하죠. 배우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만 좇거나 속된 말로 그런 콘텐츠가 ‘돈이 되다’ 보니 영화 산업이든 OTT든 계속해서 그런 가치만 지향하다 보면 제작의 다양성이 무너지잖아요. 물론 이 산업 자체가 돈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지만, 너무 일변도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제가 정의 내릴 수 없는 부분이고, 대중의 선호 또한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그저 노파심인 거죠.
Q : 그럼에도 변치 않는 ‘감성’이 있죠. 개인적으로는 공유가 그리는 섬세한 사랑의 얼굴 같은 것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만…. 대중이 사랑하는 얼굴과 자신이 사랑하는 얼굴의 간극을 느낀 적도 있습니까
A : 너무나 있죠. 그 간극이 큰 것 같아서 부채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 나는 그들의 생각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닌데 더 뛰어난 사람으로 봐주는 것에 대해 뭐랄까, 기분 좋은 책임감이 들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꼭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기대하시는 것 비스무리하게라도 스스로 부족함을 채워서 어느 정도 레벨을 맞추려고 노력해요. 그게 때로는 원동력이 돼 저를 추켜세우는 느낌입니다. 내가 더 노력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까, 선순환인 거죠.
Q : 그런 의미에서 김려령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드라마화한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의 공개된 스틸 한 장을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익숙하고도 완전히 새로운 공유의 얼굴이었거든요
A : 그게 딱 정원의 모습이에요. 리허설 연기를 하고 있을 때 찍는 줄 모르고 찍힌 사진인데요. 어떻게 보면 공유가 아닌, 완벽히 정원이 돼 있는 찰나를 포착한 거죠. 작품의 콘트라스트도 잘 담겼고요. 마냥 밝지는 않은 작품이니까.
Q :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죠. 과거의 아픔으로 불안과 외로움에 잠식된 음악 프로듀서인 정원은 그간 다방면으로 그려온 이런저런 장르 속 공유의 집대성처럼 느껴져요
A : 아이, 집대성까지는 아니고요(웃음)! 〈트렁크〉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그런 맥락이었어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작품이 획일화되지 않게끔 나름대로 소소한 노력을 기울이는 겁니다. 관객들이 이런 장르도 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하기도 하고요. 작품의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그 정도의 꿈틀거림을 갖고 있는 거죠. 불특정 다수가 좋아해줄 법한 소재나 장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가진 않아요.
Q : 그나저나 매니지먼트 숲 공식 유튜브 콘텐츠에서 과자를 먹다가 카메라가 등장하니 “내가 과자 먹는 게 콘텐츠가 돼?” 하고 묻는 장면이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관심사가 여전히 신기하게 느껴지나요
A : 그건 팬이나 대중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었어요(웃음). 물론 제게도 관심이 가고 궁금한 사람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굳이 내가 몰라도 되는 부분까지 알고 싶어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정이 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게 왜 궁금하지 싶어서 물어봤어요.
Q : 그래도 우리는 궁금하니까. 아침에 어떤 커피를 마셨는지요
A : 하하. 라테 먹었어요(웃음). 그간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언젠가부터 아침에 제대로 차려먹기 힘드니까 오트 우유를 넣은 라테로 빈속을 달래요.
Q : 술과도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요즘 어떻게 낭만을 채우나요
A : 완전 ‘위스키파’죠. 화이트 와인을 즐겨 마시는 때가 있었고, 맥주도 여전히 좋아해요. 원래는 소주파였는데 위스키에 관심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 역사와 세계를 탐방하는 것이 재밌더군요. 최근 여름휴가를 못 가서 짧게 3박 4일 삿포로에 다녀왔는데, 온전히 위스키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위스키 바를 구글링하고, 발품 팔고, 엄선해서 찾아다녔어요. 회사 이사님과 둘이 갔는데, 남자 둘이서 했던 여행 중 가장 신났습니다.
Q : 〈커피프린스 1호점〉과 〈도깨비〉로 신드롬적 인기를 구가했던 당신의 스물아홉과 서른아홉을 기억합니다. 되레 스스로 “가장 가혹했던 시기”라고 말해 왔는데 지금 공지철은 ‘공유’라는 존재를 조금 즐기게 됐나요
A : 저는 공유를 지금도 여전히, 앞으로도 즐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고민 없이, 가장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한순간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인 것 같아요. 모순적이게도 제게 가장 큰 희열과 성취감은 물론, 지독한 외로움을 함께 주거든요. 그때가 ‘공유’라는 존재를 가장 잘 즐기는 순간이죠. 그래서 이 일에 더 매력을 느끼는 건지, 멈출 수 없는 건 아닌가 하면서요.
Q : 공유가 그토록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은
A : 원래 기질이 그래요. 발이 붕 뜨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소위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일컫는 기준이 있죠. 시청률, 신드롬급의 이슈, 1000만 관객 같은 것들…. 결과로 평가받는 직업이기도 하니까 수용은 하지만, 그런 것에서 누가 저를 붕 띄우는 것도 싫고, 스스로 붕 떠서 허우적거리는 걸 지극히 경계해요. 불편해요. 땅에 발을 딛고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라 옆에서 누가 구름 태워주면 불안할 뿐이죠. 물론 나아가려는 노력은 하지만, 늘 저만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Q : 그렇다면 그 지지와 사랑을 어떻게 알맞은 온도로 돌려줄 생각인가요
A : 대중은 말 그대로 저마다 취향과 관점이 너무나도 다른, 매번 작품을 올리지만 참 어려운 존재입니다. 굉장히 불규칙한 흐름을 지녔고, 시시각각 변하니까 어렵고 또 무섭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는 걸 깨닫고 난 후부터 좀 편해졌어요. 그러니 마음을 내려놓고 내 기준과 소신 안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보자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그러니 이 말은 참 상투적이지만, 앞으로 좋은 작품과 대중의 기대치에 조금이라도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전에는 보여주지 못했던 표정과 눈빛, 그 어떤 연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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