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인프라주 투자 괜찮나
조정에도 밸류 부담…“옥석 가릴 때”
최근 증시에서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는 ‘전력 부족’이다.
주요 기업의 일감은 빠르게 쌓이고 있다. 올해 1분기 국내 주요 전력기기 3사(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의 합산 수주잔고는 30조원을 넘어섰다. 전선 업체 역시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과 해저케이블 중심으로 수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다만 시장 한편에서는 과열 우려도 나온다. 주요 종목 주가가 고점을 찍은 뒤 떨어지는 모습이다. 국내 전력기기와 전선주 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RISE AI전력인프라 ETF’는 3만1475원에서 2만4025원으로 23.6% 내려 앉았다. 월가에선 여전히 밸류에이션 부담이 크다고 보는 분위기다.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시점이란 평가다.

미국·이란 종전 시 ‘재건 특수’ 가능성
조정 국면에도 증권가는 전력기기 부문의 랠리 재개 가능성을 점친다. 근거는 ‘수주잔고’다. 올해 1분기 기준 전력기기 3사의 합산 수주잔고는 약 32조3500억원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4~5년 치 일감으로 본다.
증권가는 ‘구조적 사이클’ 진입을 내다본다. 전력 부족에 따른 병목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박승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력 산업은 반도체와 함께 명백한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쌓이는 수주에 실적 컨센서스(전망치)도 빠르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 5월 20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전력기기 3사의 영업이익 컨센서스 합산액은 2조9892억원에 달한다. 효성중공업(1조942억원), HD현대일렉트릭(1조2499억원), LS일렉트릭(6451억원) 등이다. 지난해 전력기기 3사의 영업이익 합산액(2조1686억원)과 비교하면 37.8%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증권가는 중동 지역 ‘재건 특수’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으로 중동 지역 내 9개국에 걸쳐 최소 40곳 이상의 에너지 시설이 상당한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초고압 변압기·차단기 등의 대규모 교체 수요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력기기 3사 중에선 HD현대일렉트릭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전력청(SEC)에서만 전체 매출의 10.3%에 해당하는 4212억원의 매출을 올릴 만큼 중동 네트워크가 탄탄해서다.

해외 초고압 마진 > 국내 마진
전력기기뿐 아니라 전선 부문도 수주 잔고가 쌓이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LS전선(8조5000억원)과 대한전선(3조8270억원)의 합산 수주잔고는 12조3270억원에 달한다.
실적도 가파른 상승세다. 대한전선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604억원을 기록했다. 한 분기 만에 지난해 영업이익(1286억원)의 약 47%를 달성했다. 나민식 SK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조적인 마진 개선 구간”이라며 “해외 초고압 마진이 국내 마진을 추월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과거에는 한전 중심 국내 사업이 전선 업체의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꼽혔다. 반면 해외 사업은 물량은 커도 경쟁이 치열해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해외 마진이 국내 마진을 넘어섰다는 건 해외 시장에서 가격 협상력의 주도권이 전선 업체 쪽으로 넘어왔다는 의미다.
LS전선도 올해 1분기 영업이익 97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830억원) 대비 16.8% 늘었다. 증권가는 비상장사인 LS전선 기업가치가 반영될 LS를 주목한다. 장재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LS전선은 고수익성 수주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하반기로 갈수록 유럽향 고수익 매출 비중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4배↑
물론 시장 전망이 장밋빛 일색인 건 아니다. 월가를 중심으로 전력 인프라 부문 과열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다.
JP모건은 최근 발표한 ‘아시아 전력기기’ 보고서에서 업황과 주가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LS일렉트릭의 목표주가를 16만원으로 제시했다. 5월 20일 종가(23만8500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난 4월에는 맥쿼리가 LS일렉트릭 목표주가 15만원을 내놓고 투자의견을 중립(Neutral)에서 매도(Underperform)로 조정했다. 맥쿼리는 LS일렉트릭의 펀더멘털 대비 주가가 과도하게 치솟았고, 중국 업체의 공격적인 미국 시장 진입으로 리드타임(주문 후 납기일까지 기간) 경쟁력이 희석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NH투자증권이 5월 21일 리포트에서 제시한 LS일렉트릭의 2026년 예상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7.3배에 달한다. 슈나이더일렉트릭(26.7배), 히타치(25.3배) 등 글로벌 경쟁사 대비 높은 편이다.
전력 인프라 업종 전체를 흔들 변수도 있다. JP모건은 북미 시장에서 발생 중인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상황을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IB인 베어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취소 건수는 2023년 2건, 2024년 6건에서 2025년 25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분위기가 더 좋지 않다. 블룸버그는 지난 4월 “올해 계획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가운데 절반이 지연·취소됐다”고 전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건설비가 오른 데다 지역 사회 반발도 상당해서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기를 쓰고 냉각수도 필요하다. 전력회사가 새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우선 배정하면 일반 가정과 기업의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음과 송전선 증설에 따른 환경 파괴 우려도 주민 반발을 키우는 요인이다. 지난 5월 12일(현지 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시의회는 주민 반발에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오는 6월 8일 중단 여부를 표결할 예정이다.
전력 인프라 부문에는 악재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일정이 밀리면 변압기와 초고압 케이블 발주 시점 역시 늦춰질 수 있다. 수주잔고가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있었다. 닷컴버블 당시 통신 인프라 기업들은 인터넷 트래픽 증가 기대를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갔지만, 실제 수요가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하자 과잉 설비와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2000년대 후반 조선업이 대표 사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주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돼 인도 지연과 계약 취소가 잇따랐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1호(2026.05.27~06.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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