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일상이 갈린다, 공립·사립 선택이 만든 차이

서부원 2026. 4. 6. 09:4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공립과 사립고 학생들의 전혀 다른 일상, 어긋난 교육 현실 속 학교의 편의만 앞세울 수 없어

[서부원 기자]

오늘도 한 무리의 졸업생 제자들이 찾아왔다. 대개 스승의 날 즈음에 맞춰 오는데, 요즘엔 시도 때도 없다. 박카스 한 상자를 손에 들고 교무실을 순회하며, 만나는 선생님마다 하나씩 꺼내어 선물하듯 건넨다. 신기하게도 졸업한 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아이들의 이름이 기억난다.

제자들의 모교 방문은 대학 시험 기간이 대목이다. 특히 갓 졸업한 새내기라면 거의 예외가 없다. 첫 월급 타면 부모님께 내복을 선물하듯, 1학년 첫 대학 시험이 끝난 뒤 모교를 찾는 건 일종의 불문율이 됐다. 그날은 그들의 미주알고주알 대학 생활 이야기로 교무실이 종일 소란스럽다.

군에 입대하거나 전역할 때도, 휴가를 나올 때도 학교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마치 은사 앞에서 입대와 전역 신고를 하듯 방문한 느낌이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어색하지만, 대견한 마음에 부러 쓰다듬으며 농을 건네게 된다. 교사로서 보람되고 뭉클한 순간이다.

공립 학교에서 근무하는 아내는 이를 내심 부러워한다. 사립 학교에서만, 그것도 남자 고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말한다. 공식적인 방문 행사가 있거나 졸업한 첫해라면 모를까, 몇 년이 지나서도 모교를 떼 지어 찾아온다는 건 공립 학교에선 상상하기 힘들다고 했다.

여학생의 경우엔 더욱 드물다고 한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은사를 뵙고 싶어 모교를 찾아온 여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여학생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출가외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성별의 차이라기보다는 인사이동이 잦은 공립 학교의 한계일 테다. 공립 학교의 졸업생에겐 '모교는 있어도 은사는 없다.' 4년마다 다른 학교로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모교를 찾아 사제지간의 연을 이어가기란 여간 쉽지 않다.

교육청에서는 근무지도 교사의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조회가 제한되어 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찾아뵈려는 은사의 근무지를 물어물어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은사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고 해도 선뜻 통화 버튼을 누르기 망설여진다.

학교 생활의 격차, 사립과 공립

"중학교는 몰라도 고등학교는 공립보다 사립이 백 배 나아요."

얼마 전, 중학생 자녀가 공립 학교로 배정되어 속상하다는 동료 교사의 하소연을 들었다. 사립 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의 경우와 학교생활이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이는 모교에 대한 추억이나 교사의 보람 같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의 불만은 단순했다. 학교가 너무 일찍 파한다는 것이다. 명색이 고등학교인데 정규수업이 끝난 오후 4시 반이면 교문이 닫힌다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학교가 수험생인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말까지 거침이 없었다.

학교의 학사일정은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4시 30분에 끝난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개설하고 있고, 지방의 경우에는 야간자율학습까지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특히 사립 학교는 예외가 없을 정도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방과 후 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강제하는 학교는 없다. 그랬다간 쏟아지는 '민원 폭탄'을 감당할 수 없다. 푼돈 수당을 위해 퇴근 시간을 미루는 교사가 있을 리 없고, 학생들 역시 일찍 하교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입장은 다르다. 학교가 자녀의 방과 후 일상까지 일정 부분 책임져주기를 바란다. 하교 후 아이들이 학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는 것은 대학 입시에 대한 부담감 탓도 있지만, 당장 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많다. 그들의 인식 속에는 '귀가'라는 선택지가 희미하다.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인 요즘, 아이들이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다.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하는 직장은 드물다. 자녀의 끼니조차 챙겨주지 못하는 부모의 안타까움보다 아이가 집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불안이 학교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학교가 아이들을 학원과 독서실로 떠밀고 있다고 느낀다. 학교가 아이들의 방과 후 일상을 품어 준다면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의 절감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학교라는 교육 공간을 계속 활용할 수 있어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덧붙인다.

교사도 지켜야 할 균형

교사도 할 말은 있다. 교사에게도 가정이 있고 돌봐야 할 자녀가 있다. 그들은 교육자로서 교사의 역할을 부모가 대신할 수 없듯, 가정이 해야 할 일을 학교가 대신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방과 후 일상은 어디까지나 가정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입장이 충돌하는 그의 하소연은 모순투성이일 수밖에 없었다. 교사로서는 학부모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말하면서도,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학교의 책임을 묻게 된다. 그렇다고 그를 탓할 수 없는 건, 이 둘은 뒤틀려 있을지언정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이기 때문이다.

그의 두 자녀는 모두 고등학생이지만, 일상은 크게 다르다. 사립 학교에 다니는 큰아이는 오후 10시까지 학교에서 하루를 보낸다. 정규수업 이후 방과 후 수업, 저녁 급식,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한다.

반면 공립 학교에 다니는 둘째는 오후 4시 30분 이후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는 '뺑뺑이' 생활을 반복한다. 사교육비 부담도 크지만, 저녁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학원 시간표에 맞춰 식사 시간이 들쭉날쭉하고,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다.

결국 그는 둘째 아이를 챙기기 위해 정시 퇴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주로 여교사의 몫이다. 그가 방과 후 수업에다 야간자율학습 감독까지 해야 하는 동료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두 아이의 '삶의 질'이 다르다고 말한다. 충분한 식사와 안정된 일과를 가진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공립 학교에 진학한 선택을 두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학교의 역할과 교육 본령

전국의 모든 공립 학교를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학부모의 요구가 있다면 학교 역시 대응을 고민해야 한다. 학교가 방과 후까지 책임지는 게 맞느냐는 지적은 백 번 옳다. 그러나 어긋난 교육 현실 속에서 학교의 편의만을 앞세울 수는 없다.

설령 희망자가 적다고 해도 그들을 위해 학교를 개방하는 게 교육의 본령에 부합한다.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은 교실 수업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따른 교사의 처우와 책임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학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교사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 '임장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혼 가정과 조손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아이들 교육을 학교가 모두 떠안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미는 손을 학교가 나 몰라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는 오늘도 졸업생들을 함박웃음으로 맞이하며 덕담을 건넸다. 그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모교를 찾아오는 이유는 성별이나 공립·사립의 차이가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의 차이라는 것을. 아이들과 학부모는 그 시간을 '열정'이라고 부른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