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우리 애, 성적 좋으니까"…부모가 담배 '댈구' 해준다
“성적 좋은 아이가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며 담배를 사달라고 합니다. 부모는 황당하겠죠. 그런데 ‘만약 내가 안 사주면 더 나쁜 방법을 시도하지 않을까’ 걱정도 될 겁니다.”

흡연 청소년의 담배 대리구매 문제를 학술논문으로 다룬 오영삼 부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8일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하교 시간 전국의 중ㆍ고교 교문 앞에선 한 갑당 500~2000원씩 ‘뚫값(수수료)’을 받고 담배를 대신 사주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며 "담배를 대신 사주는 사람은 주로 노인으로 일명 ‘앵바리’라고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런 내용은 청소년 사이에 정보가 공유된다”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는 담배 대리구매 공식 통로”라고 했다.
청소년 담배 대리구매 성행
오 교수와 같은 대학 허원빈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제목은 ‘흡연 청소년은 담배 판매 금지를 어떻게 뚫는가?’이다. 이들은 청소년이 담배를 구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담배 대리구매, 이른바 ‘댈구’ 문제는 언론 등에서 제기됐지만 학술 연구가 진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는 부산을 포함해 전국 14~18세 흡연 청소년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뒤 분석한 게 핵심 내용이다. 이 논문은 청소년 금연 정책을 검토하는 보건복지부 용역으로 진행됐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발간한 ‘담배 폐해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청소년 흡연율은 12.1%에서 4.5%로 줄었다. 비율은 줄었지만, 국내 사망 위험요인 1위인 흡연이 청소년에게 노출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질병청은 진단했다.
연구 결과 인터뷰한 10명 중 8명이 대리구매를 가장 일상적인 담배 취득 경로로 꼽았다. 타인을 통한 대리구매인 ‘앵바리’는 물론 부모를 포함한 가족도 대리구매자로 나섰다. 오 교수는 “선입견과 달리 ‘모범생’으로 불리는 학생도 가족이 담배를 구매해주기도 했다. 자칫 성적이 떨어지거나, 더 음성적인 담배 구매 경로를 찾다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담배 대가로 여학생 스타킹 주기도…“음주ㆍ마약 이어질 위험”
이번 연구를 통해 여성 청소년은 담배를 구하기 위해 성인 남성과 만남을 요구받거나, 스타킹 등을 대가로 건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뷰에 응한 청소년들은 “(남자들은) 만나면 같이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만남의 대가가 담배” “스타킹을 팔기도 하고 인스타에 사진 올리면 남자들 연락이 많이 온다. ‘영상 통화하거나 만나면 (담배 등을) 준다’는 식의 연락”이라고 했다.

오 교수는 “수요자 입장인 청소년이 공급자인 담배대리 구매자를 신고할 가능성이 작고, 가족이 대리구매를 하는 사례까지 확인된 만큼 적발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처벌 강화보다는 원천 차단에 해당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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