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싸우는' 의사들... 의사들은 왜 그랬을까
2024년 의료대란에서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의사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황당함이 묻어나는 의문이다. 반면 의사들은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비판하며 언론과 시민들이 의사를 ‘악마화’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의사들은 도대체 왜 의대 정원 증원을 수용하느니 의료를 멈추겠다고 말하는가. ‘미래’를 말하기 위해, 우리는 의사가 탄생하는 과정과 그 내부정치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기자말>
[Health Socialist Club]
"조선인이 응급실 돌다 죽어도 아무 감흥이 없음," "죽음에 대한 공포로 온몸이 마비되고, 의사에게 진료받지 못해서 생을 마감할 뻔한 경험들이 여럿 쌓이고 쌓여야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 (2024년 9월 11일 자 연합뉴스 보도)
▲ 의사와 의대생들이 모여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조롱하는 글이 게시되고 있다. 2024년 3월 7일 YTN 보도. https://youtu.be/OHVHnGeYc8Q?si=L4L7IhDiWcYLpgmS |
ⓒ YTN |
강경 발언, 배신감···의사들은 어디로 가나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들의 과격한 '여론'이 전체 의사들을 대표하는지 혹은 공식 의견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매파"로 분류되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전체 여론을 끌고 가는 탓이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는 않았다. 2020년 의사 파업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냈던 "다른 생각을 가진" 의사와 의대생 단체는 지금도 시민을 설득하고 함께 나아가자고 호소하고 있다(관련기사: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의대생의 호소문, 집단행동 반대하는 전공의·의대생들 "의사 수 충분치 않아…공공의료 대안 논의해야"). 서울대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시민의 의견을 듣고, 시민이 어떤 의료를 원하는지 함께 이야기하자는 의견을 표명했다(관련기사: 서울대 의대에서 열린 의료개혁 관련 토론회).
하지만 의사들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조직들은 여전히 공적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와의 대화와 관련, 지난 13일 오후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이에 정부는 또다시 추가적인 대화의 자리를 요청하고 있다(관련기사: 의료계 공동선언 "정부 변화 없는데 협의체 참여 시기상조", 추경호 "의료계 발표 아쉬워…아직 대화의 문 열려 있다"). 정부와 대화에 나서는 일과 관련, 구성원을 배신하는 행위로 여기기까지 하는 모양새도 여전하다(관련기사: 경기도의사회 "의대생·전공의 빠진 의료계 입장 발표는 월권").
▲ 국민의힘은 지난 12일 한덕수 총리,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함께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를 개최했다. 사진=국민의힘 TV 유튜브 화면 캡쳐 |
ⓒ 국민의힘 |
▲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진 등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위-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오마이TV 유튜브 화면 캡쳐 |
ⓒ 오마이TV |
이렇게 똘똘 뭉쳐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의사들의 이해관계는 과연 단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진료 축소 그리고 경영난을 호소하는 주된 곳은 상급종합병원이다. 의사 인력 중 다수를 전공의로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비수도권 병원들은 애초에 전공의를 다 채우지 못했고, 전공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어려움은 애초부터 모든 병원에서 동등하지 않았다.
전공의 수련과 무관하게 운영되던 병원들은 큰 병원을 찾던 환자들이 오게 되면서 오히려 특수를 누리는 중이다. 사직한 의대 교수를 영입하기 위해 분주한가 하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갈 수 없게 된 환자들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응급실 의사에게 대대적인 인센티브를 약속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결국 의사 개인이 의대 증원에 결사반대하는 정치적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수익 차원에서는 반사 이익을 누려 온 셈이다. 전체 의사 중 약 43%가 종사하는 의원급 의료기관 역시 비슷하다. 의사협회의 집단휴진 설문조사에는 적극 찬성하면서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휴업을 한 의료기관은 15%도 되지 않는다(관련기사: 휴진율 14.9%, 2020년 절반… 의협 "27일부터는 무기한" vs 정부 "의협 해산도 가능"). 의사 수를 늘리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지만, 이를 위해 지금 당장 오늘의 수익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의문도 제기해 볼 수 있다. 치료의 여정에서 만나게 된 훌륭한 의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증 환자를 치료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의료 소송의 위험에 위협당하고 있다고 호소하면서도 여전히 중증 환자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감내하는 의사들도 많다.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며 시민들과 연대하고 대화할 만한 교양과 덕성을 소유한 의사 역시 분명히 있다.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정부 한국 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에 참석해 의료 정상화를 요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2024.5.30 |
ⓒ 연합뉴스 |
최근 많은 관심을 받았던 한국은행의 '입시 불평등' 보고서(관련기사: "상위 대학 진학률 격차 좌우하는 75%는 '부모 경제력'")에서 확인되듯 한국에서 입시는 수험생과 그 가족이 온 힘을 합쳐 치르는 계급 전쟁과 유사하다. 수험과 수련 과정이 암만 고달프다고 해도 의사가 되면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 사회적 지위가 그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안정적인 보상을 제공한다는 판단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급 전쟁'을 뚫고 의과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매우 동질적인 '의사'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의학계에서는 의료 행위가 생명과 직결되기에 모든 의료인에게 높은 수준의 윤리적 책임이 요구되며 높은 수준의 판단력과 책임감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쳐 왔다.
▲ 미국의사회 의료 윤리 강령. 1847년 발행본 표지. 출처: https://www.ama-assn.org/sites/ama-assn.org/files/corp/media-browser/public/ethics/1847code_0.pdf |
ⓒ 미국의사협회 |
교육 과정을 통해 의사들은 교과서에는 명시적으로 적혀있지 않지만, 의사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준거를 형성한다. 예컨대 의사가 환자에게 반말하는 일이 허용되는지, 병원 외래와 당직실을 드나드는 제약회사 직원이 건네는 선물을 어디까지 받을지, 응급실에 내원한 경증 환자가 정치인의 가족이라고 주장하며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밤 11시에 전화를 해 내일 오전까지 우리가 쓸 축구화 22켤레를 구해 놓으라는 선배의 전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대한 판단을 익히게 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기묘할 정도로 선후배 사이의 결속이 강하고 아직 의사가 되지 않은 의대생들도 단일한 주장을 하려 애쓰는 것 역시 의사 공동체에서 학습된 정체성의 한 단면이다.
동질성은 있어도, 리더십은 없다
▲ 2020년 전공의협의회에서 작성한 홍보 자료. 젊은의사 단체행동 인스타그램@youngmd_do.right 2020 캡쳐 https://www.instagram.com/youngmd_do.right/ |
ⓒ 대한전공의협의회 |
전공의는 수련을 포기했을지언정 어디서든 의사 면허를 걸고 일을 하고 있을 테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의대생들의 향후 행방은 의학교육의 중대한 문제가 됐다. 24학번 학생들은 25년에 입학할 4500여 명의 후배들과 함께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에 물리적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예상이 많다. 이보다 더 중요한, 하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이들은 성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사회적 책임과 권리를 배우고 시민 되기를 학습해야 할 시기를,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적인 정치적 정동을 공유한 채 수업을 거부하며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의료계가 정부가 그토록 요구해 온 "합리적인, 통일된 안"을 제시하며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가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의료대란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2020년 의사 파업을 비롯해 지금까지 의사 단체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들이 사회적 협상을 통해 집단행동을 멈출 만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한다(관련기사: "수시 접수 시작하는데 "25년 증원 백지화"...의-정 협의 '막막'").
누군가 의사들을 대표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시민들과 합의를 이끌어 낸다고 하더라도 흩어진 의대생들을 2학기에는 돌아오도록 설득하거나, 이미 그만둔 전공의들을 수련병원으로 복귀시킬 수 없을 거란 소리다.
이런 판단이 사실이라면, 2024년 한국의 의사들은 시민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에 참여할 역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협상에 임할 만한 조직적 구심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다. 거버넌스에 참여해 의견을 조정하고 구성원을 규율하는 일이 집단으로서 의사 전문직의 사회적 책무임을 고려하면, 이 역시 한국 의사의 전문가주의적 자율규제가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점재검토"라는 요구는, 원하는 정책을 관철할 수는 없지만, 원하지 않는 정책에는 언제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사 집단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의사정치' 실패 비용 청산하고 미래 여는 길
의사들의 정치적 조직력 부재는 단지 그들의 사회적 명성과 권위가 실추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의사들은 정책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실패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좋은 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짧은 안목에서 의사들의 정치적 조직화 실패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용이하게 할 것 같지만, 의료의 생산이 의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고스란히 사회의 비용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와 시민들은 의사들을 공론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강력한 자기규율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전문가 집단의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일까지 정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도저히 어려워 보인다.
▲ 동질적으로 집단의 이익을 수호하는 듯 보이지만, 이미 한국 의사 중에는 환자와 시민의 편에 서서 사회적 진보에 기여한 인물이 적지 않다. 사진은 2012년 서울 중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해결을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선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사진=리영희재단. 연합뉴스 2016년 11월 16일자 보도 |
ⓒ 리영희재단 |
그러나 이제 의사들의 독점권은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대신 부당한 특권이 되어 시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심지어 이 권한이 의료체계 전반의 비효율을 야기한다면, 지금의 상태가 적절한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의사가 누리는 자율성은 신이 내려준 권리가 아니다. 2024년 한국이 겪고 있는 의료대란에 대한 판단은 엇갈릴 수 있지만, 의사와 사회가 맺고 있는 관계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기 어렵다. 외국에서는 고유의 역사적 맥락 아래 의료 전문직이 형성됐으나, 한국은 전문가주의가 그저 수입되어 이식되었기 때문에 이 모양이라는 냉소 역시 무책임하다.
▲ 영국 의사들은 2022년 동료들과 함께 시위대를 조직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사진=BMJ |
ⓒ BMJ |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
(2)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3) 의료체계에 던지는 질문들
(4) 노동에 던지는 질문들
(5) 의사에 던지는 질문들
(6) 7개월, 질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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