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깨지고 뜯기고 "폐가 수준 관리" 청와대, 천연기념물까지 하청

김화빈 2024. 10. 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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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벽지·도보 등 파손, 관람객들도 의문 표시... 강유정 "졸속 이전 탓, 재단 업무 재설계해야"

[김화빈 기자]

 지난 1일 찾은 청와대의 모습.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 파손된 상춘재 지붕 기와 ▲ 파손된 관저 건물 뒤 벽면 ▲ 액자 아래 부분이 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초상화 ▲ 도보석이 훼손돼 관광객들이 자주 걸려 넘어지는 소정원 입구.
ⓒ 김화빈
"TV에선 화려해 보였는데 실제로 와 보니 낡았네요. 관리가 안 되고 있나요?"
"(영부인 집무실) 벽지와 가구가 왜 이렇게 허름하죠?"

지난 1일 오후 2시께 윤석열 정부가 개방한 청와대를 찾은 관람객들이 <오마이뉴스>와 만나 남긴 평가다. 정부가 청와대 시설 유지·관리를 위해 올해 약 15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곳곳에 하자가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청와대 관리를 국가유산청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가 맡으면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폐가로 돌려줬다"고 혹평했다. "정부가 청와대 관리에 다단계 하청을 줘 관리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빈 초청 상춘재 기와도 손상... "고택 망가지는 첫 단계"
 지난 1일 방문한 청와대 내 본관 영부인 집무실(무궁화실)의 벽지에 문제가 생긴 모습.
ⓒ 김화빈
이날 오전 9시 청와대에선 지반 침하로 내려앉은 연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통령 집무·외빈 접견에 사용되던 본관 1층 영부인 집무실 벽지는 공기와 습기가 들어가 울퉁불퉁 했다. 벽지 가장자리는 스테이플러 심으로 박아 고정돼 있었다. 본관 세종실에 걸린 역대 대통령 초상화는 액자 하단이 들린 채 불안정하게 전시 중이었다.

본관에서 소정원으로 향하는 도로는 갈라지고 깨진 데다 높낮이가 다른 단차현상이 확인됐다. 청와대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이 지점에서 관광객들이 자주 넘어진다"고 전했다. 대통령 관저 건물 뒷쪽 벽면은 뜯겨나가 움푹 파여 있었다. 개방 후에도 국빈행사 등으로 활용되는 상춘재는 기왓장 안쪽 황토가 빗물에 쓸려 일부분이 내려앉았고, 청와대 관람을 위해 들어서는 입구 기와 또한 파손돼 있었다.

넓은 관람 부지에 비해 개방된 화장실은 3곳(여민1관·춘추문·관저 앞)에 불과해 성수기 때면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는 실정이다. 일부 관람객이 등산로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볼 일을 보기도 해 직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경복궁만 해도 직영관리사무소를 둬 300여 명의 직원들이 철저히 관리하는데 청와대는 폐가 직전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특히 우리 전통 고택에서 (관리 부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기와다. 기와를 놓을 때 백토·황토·석회석을 섞는데 황토가 내려오는 것이 손상의 첫 단계"라며 "경복궁 직영사무소 수리 담당자들이 하자가 생길 때 즉각 수리·보수하는 것과 (현재 청와대의 모습은)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영선' 담당자 사실상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2월 6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常春齋)에서 열린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친교 차담을 마친 후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이 같은 부실 관리의 원인으로 ▲ 유지·관리·관광 등에 필요한 업무를 모두 외주화한 점 ▲ 시설물을 건축·수선하는 영선 업무 담당자를 사실상 채용하지 않은 점 등이 꼽히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시설관리·조경·미화·방호·관람안내·홍보 등이 모두 '문화체육관광부→청와대재단→용역업체'라는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심지어 청와대 내 천연기념물까지 용역업체가 관리하고 있었다. 현재 청와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6그루가 자라고 있다.

특히 '2024년 청와대 권역 시설관리 위탁운영(약 15억 원)'의 과업내용서·산출내역서를 보면, 영선(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 담당자가 따로 채용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해당 자료에는 위탁 업무로서 "시설물 감시·운전·점검·유지관리 및 경미한 보수"와 "옥내·외 건축물에 대한 경미한 신설·변경·수리"가 적혀 있었지만, 노무비엔 관리소장, 기계·전기과장 및 기사 항목만 책정돼 있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청와대재단은 용역업체에서 발생한 임금체불(각종 수당 과소지급)도 파악하지 못했다(관련기사 : [단독] '윤 정부 개방' 청와대재단 업체 임금체불, 노동청 근로감독 https://omn.kr/29wwv). 과업내용서엔 "발주처(청와대재단)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와 관련된 확약 내용 이행과 노동법령 준수 여부를 확인·지도할 수 있다"고 나와 있으나 실제 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은성 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는 "청와대의 부실한 관리와 재하청 노동구조를 보면 재단이 도대체 왜 설립됐는지 의문"이라며 "전방위 재하청 계약이 역사·정치적으로 상징성 있는 청와대를 현재 상태로 유지하는 것 말고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재하청 구조는 문화체육관광부·청와대재단의 관리 부실에 대한 감독 책임을 하청업체로 돌릴 수 있게 만든다"며 "상시적인 청와대 유지·관리에는 단순 노무만 활용되는 게 아닌 만큼 노동자들의 안정감 있는 장기근속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재단 "중장기 계획 수립 예정"
 지난 1일 한 외국인 관람객이 청와대 내 본관을 둘러보고 있다.
ⓒ 김화빈
강유정 의원은 "청와대재단은 청와대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을 위해 설립됐으며 관련 예산도 크게 증액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무가 용역업체에 의해 이뤄지고 임금체불도 벌어졌다"라며 "이 와중에 청와대 곳곳도 훼손됐는데 재단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하며) '국민께 청와대를 돌려드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준비와 계획 없이 졸속으로 대통령실이 이전됐다는 점만 확인되고 있다"며 "재단 업무 전반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재단 시설관리팀 관계자는 "과업지시서 근로자 자격 요건에 영선이 포함됐지만, 감독관과 협의할 경우 자격 요건을 변동할 수 있다"며 "영선 업무 등은 18명이 나누어 수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시설관리는 건축·기계·전기·소방 관련 시설물을 유지 관리하면서 쾌적한 관람 환경을 조성하려는 목적"이라며 "청와대 자체의 노후화로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상시로 영선 업무를 진행하고 있지만, 청와대 원형 보전과 관련된 부분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보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일 청와대 정문 펜스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김화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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