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타임머신] 황장엽 망명

“서울에 도착한 제 마음은 정말 한마디로 말해서 감개무량합니다.” 1997년 4월 20일 서울공항에 발을 디딘 북한 노동당의 황장엽(사진) 전 국제담당 비서가 기자들을 향해 대한민국 입국 소감을 밝혔다. 2월 12일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에 피신하여 망명 의사를 밝혔지만 5주째 중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황장엽이 필리핀을 거쳐 마침내 대한민국에 발을 디딘 것이다.
1923년생, 탈북 당시 74세. 황장엽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갔지만 해방으로 중단하고 귀국하여 소련 유학 후 김일성종합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 김일성은 황장엽에게 큰 임무를 연이어 맡겼다. 북한 인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통치 이데올로기, 이른바 ‘주체사상’을 설계할 것.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후계자가 될 김정일에게 가르칠 것.

주체사상은 기독교 메시아주의, 속류 다윈주의적 사회진화론, 낭만주의적 운명론, 심지어 도교와 민간신앙적 요소까지 되는대로 뒤섞어놓은 유사 종교 이데올로기다. 얼핏 보면 인간이 주체적으로 운명을 결정한다는 내용의 좋은 이야기 같다. 하지만 결국 ‘수령은 두뇌고 인민은 수족’이라며 일당독재 개인숭배를 합리화하는 결론으로 향할 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민주주의’도 없고 ‘인민’을 보호하지도 않으며 ‘공화국’조차 아닌, 임금의 성씨만 바뀐 조선왕조로 퇴행해버린 이유다.
주체사상은 기형적이지만 성공적이었다. 1960년대 중반 중소분쟁의 틈바구니에서 김일성 독재를 굳히고 3대 세습까지 가능케 하는 이념적 원동력을 제공했다. 그 성공으로 인해 황장엽은 남다른 영향력을 얻었고, 그것이 ‘제자’ 김정일의 심기를 거슬러, 김일성 사후 황장엽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숙청의 칼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그는 가족을 등진 채 비서 한 사람만을 대동하고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주체사상을 설계한 장본인이 수령의 뜻을 거슬러 탈출한 셈이다. 토론과 합의를 통해 공적 의사를 결정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 체제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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