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AI시대, 온사이트 전력과 계통 연계의 중요성

2026. 3. 1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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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욱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

인공지능(AI)은 산업의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인프라 게임이 됐다. 이제 경쟁의 핵심은 모델 성능만이 아니라, 그 모델을 학습·추론할 전력과 컴퓨팅, 그리고 이를 담아낼 데이터센터의 설계·운영 역량이다. 데이터센터는 ‘서버를 모아 둔 곳’에서 ‘전기를 고성능 연산으로 바꾸는 공장’으로 바뀌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와 기술 전제가 다르다. 첫째, 전력 밀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 랙은 수십㎾를 넘어 훨씬 커지고, 공랭만으로는 한계에 이르러 액체냉각이 사실상 전제가 된다.

둘째, 전력품질 요구가 더 까다롭다. 무정전전원장치(UPS)·정류기·서버전원장치 같은 대규모 전력전자 장비는 고조파와 무효 전력 문제를 만들 수 있고, 급격한 부하 변동은 전압 변동과 순간정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냉각·전력품질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한다. 실제 계통 해석을 해보면 수밀리초(㎳) 단위의 부하 변화만으로도 전압 위상과 무효전력 흐름이 크게 요동한다. 대용량 전력전자 부하는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계통 동특성을 바꾸는 ‘능동 요소’로 취급해야 한다.

이 배경에서 ‘온사이트(on-site) 발전’은 점점 현실적 대안이 된다. 대규모 전력 수요를 제때 계통에서 받아오기 어렵거나, 계통 보강·연계 절차가 길어지는 문제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고효율 가스터빈·열병합(CHP), 연료전지를 결합한 마이크로그리드형 온사이트 전원은 상시 부하를 안정적으로 받치고, 필요 시 계통과 분리된 섬운전으로 ‘자급형 전력섬’을 만들 수 있다.

전력계통 관점에서 장점은 명확하다. 데이터센터 피크를 현장에서 흡수하면 계통 혼잡을 줄이고 송배전 증설 부담을 낮춘다. 또한 전압 저하·사고 시에도 자체 전원과 제어로 버티는 라이드스루 능력을 키우면, 대용량 부하의 급락·재투입이 계통에 주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실제로 대형 부하가 한 번 탈락했다가 재투입될 때 계통은 발전기 고장보다 더 큰 주파수 변화를 겪기도 한다. 데이터센터는 ‘정전 대비 설비’가 아니라 ‘계통 안정화 설비’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지역 에너지자립, 탄소배출 관리와도 결합 여지가 크다. 특히 지역난방·집단에너지 연계는 데이터센터 폐열을 난방열로 재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전력·열·가스를 분리된 인프라로 다루던 시대에는 보기 어려웠던 구조다. 이제 데이터센터는 수요가 아니라 다에너지 계통의 하나의 노드가 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민간과 공공이 이런 모델을 추진 중이라는 신호가 뚜렷하다. 울산에서는 SK가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인근 액화천연가스(LNG) 기반 열병합 등 집단에너지 설비를 통해 전력 자체 조달 기반을 마련한다는 보도가 있다. 전북 군산에서는 SGC에너지가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추진하며 ‘자가 발전 설비를 통한 대규모 전력 공급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도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고, 데이터센터 폐열을 지역난방에 재활용하는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전력계통을 연구자로서 ‘데이터센터가 계통의 부담’이라는 단순 프레임을 넘어 ‘계통과 공존하는 에너지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현장을 보게 되어 감회가 깊다.

그러나 온사이트 발전이 만능은 아니다. 계통 연계가 잘못 설계되면 고장 전류가 예상치 못한 경로로 흘러 보호계전이 오동작하거나, 분산전원이 사고를 증폭시켜 광역정전 위험을 키울 수 있다. 특히 인버터 기반 전원이 많은 환경에서는 기존 보호계전 개념이 그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고장전류 크기가 아니라 파형 특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보호 철학이 필요하다. 연료 조달·가격 변동, 운영·정비, 환경·배출 규제와 인허가도 리스크다.

해법은 ‘기술과 제도의 정합’이다. 계통영향평가에서 단락전류·전압/주파수 안정성·보호협조·전력품질을 정밀 검증하고, 자동 섬운전/재연계, 보호계전·자동복구, 고조파·무효전력 관리 설비를 표준 패키지로 갖춰야 한다.

정책 기조는 ‘막지 말자’가 아니라 ‘안전하게 빨리 짓게 하자’로 가야 한다.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표준 모델 기반으로 간소화하고 예측가능성을 높이며, AI 데이터센터·마이크로그리드에 대한 전용 심사 트랙을 마련해야 한다. 섬운전 요건 정비, PPA·재생에너지·열병합 및 폐열 회수 연계 지원, 지역 수용성 확보를 위한 환경 기준의 합리적 정비, 실증사업·표준화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기술은 이미 가능한 수준에 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허용 여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허용할지를 명확히 하는 규칙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계통과 산업정책이 만나는 국가 인프라다. 보다 빠른 실행이 필요하다. 온사이트 발전과 계통 연계를 ‘위험’이 아니라 ‘설계·표준·제도’로 관리해, 한국형 AI 데이터센터 모델을 세계 시장에 내놓을 때다.

한상욱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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