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서로 “내가 이겼다”…시한폭탄 88분 남기고 극적 휴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문명 파괴’ 선언과 이란의 원유 허브 하르그섬에 대한 공습으로 시작된 7일(현지시간). 약 10시간 동안 전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핵 전쟁 위기까지 몰렸다가 극적인 휴전으로 한숨을 돌렸다.
2주간 휴전에 합의한 미국과 이란은 오는 10일부터 협상에 돌입한다. 그러나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하고 있어 원만한 합의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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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사라진다”는 말에…핵 전쟁 우려 제기
이란의 모든 교량과 발전소를 비롯한 원유시설에 대한 총공세가 예고됐던 이날 오전 이란의 핵심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에 대한 맹폭이 시작됐다. 이날 오후 8시로 예고됐던 공격 일정보다 12시간가량 이른 공격이었다.

하르그섬 공습이 군사 시설에만 가해진 사실이 확인된 직후인 오전 8시 6분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에 “오늘 밤 한 문명 전체가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군사 시설 공습이 그 작전의 서막임을 강조한 말이었다.
같은 시각 헝가리를 방문 중이던 JD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악관이 즉각 부인했지만, 밴스 부통령이 언급한 수단이 핵일 것이란 관측이 쏟아져 나왔다.

외교채널 중단…‘인간띠’ 만들며 배수진
이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중재국을 통한 미국과의 간접 협상 채널에서도 완전히 이탈했다. 이란 내부에선 추가 공습에 대비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미국의 공격이 예상되는 주요 교량과 발전소 주변에는 시민들이 모여 인간띠를 형성하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높였다.

인간 방패를 자처한 시민들을 겨냥해야 할 처지가 된 트럼프 대통령은 NBC 인터뷰에서 “(인간 사슬은) 완전히 불법으로 그런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날 회견에서는 국제법에서 금지한 민간 시설 공격에 대해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시민들 머리 위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서다.
5시간 앞둔 중재안…폭발 88분 남기고 스톱
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불과 5시간도 남겨 놓지 않은 오후 3시 17분. 양측을 중재해온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X(옛 트위터)에 최종 중재안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시한을 2주 연장하고, 이란은 해당 기간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를 푸는 내용이었다. 파국을 향해 달려가던 미국과 이란은 대참사를 막을 명분이 극적으로 제시되자 긍정적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맞춰놓은 ‘시한폭탄’의 타이머는 폭발을 불과 88분 남겨놓고 멈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 32분 SNS에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완전하고 즉각적이고 안전한 개방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이란에 대한 폭격과 공격을 2주간 중단하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휴전 제안에 동의하며 “향후 2주간 호르무즈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10일부터 협의…서로 “내가 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직후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휴전 합의는 미국의 완전한 승리”라고 했다. “완전하고 완벽한 승리다. 100%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전쟁을 시작한 주요 명분이었던 이란의 핵 능력과 관련해 “농축 우라늄 문제는 완벽하게 처리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았다면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란 최고 국가안보회의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며 특히 “이란이 제시한 10개 항의 종전안을 미국이 전부 수용했다”고 맞대응했다. 자국 여론을 의식한 말로 해석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글에는 “10개 항 종전안은 협상이 가능한 기반”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란의 요구안에는 우라늄 농축 허용, 호르무즈해협 운항에 대한 이란의 통제, 역내 모든 기지에서 미 전투 병력 철수, 대(對)이란 제재 완화, 전쟁 피해 배상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쪽 모두 명분 필요…이스라엘도 변수
종전 협의는 오는 1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시작된다. 핵심 쟁점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 금지 문제와 호르무즈해협의 정상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그간 이란을 상대해 온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를 비롯해 JD 밴스 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다. CNN에 따르면 미국 협상 대표단의 목표는 완전한 종전이다. 장기화한 이란 전쟁의 수렁에서 빨리 벗어나겠다는 의도다.
이란 역시 종전이 목표다. 다만 이란의 종전은 상호 불가침 약속, 평화적 핵 이용 및 미사일 개발 권리를 비롯해 제재의 전면적 해제 등을 전제로 한다. 이번 기회에 미국의 압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의도다. 이 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호르무즈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 측에선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마즐리스) 의장이 협상단을 이끈다고 이란 ISNA통신이 8일 보도했다.

한편 강경론을 펼쳐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휴전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레바논 내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상대로 한 전투는 이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만약 2주일의 협상 기간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멈춰진 폭탄의 타이머는 언제든 다시 카운트다운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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