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의대' 가려고 수능 다시 보는 의대생...이래도 괜찮을까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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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이 시험장 밖으로 나서고 있다. |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당장 올해부터 의대 정원을 2천 명 늘리겠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예견됐던 바라 그다지 놀랍진 않다. 이른바 '한 끗 차이'로 의대 진학에 실패한 명문대 공대생들이 다시 수능에 도전하게 될 거라는 예측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었다. 정부 발표와 동시에 그들의 '반수'가 시작됐다.
재학생 중 최상위권 아이들에다 기존의 'N수생'과 명문대 공대생까지 의대 진학에 다 걸기 하는 전에 없던 상황이 펼쳐졌다. 학교 안팎에서는 "2천 명을 뽑는 데 2만 명이 몰려든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이 느닷없는 '병목현상'으로 공교육은 초토화되고 사교육은 또다시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
그들이 1~2등급을 독식하면서 도미노처럼 상위권 아이들의 등급이 아래로 밀려나고 있다. 최근 대학별로 수능 등급 컷 기준을 다소 완화하긴 했지만, 느닷없는 '의대 증원 2천 명' 정책으로 그 취지가 상쇄되어 버렸다. 특히 의대에 지원한 재학생에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듯하다.
그러잖아도 의대 합격자 중 재학생, 곧 졸업예정자의 비율이 10% 안팎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의대생 중 'N수생'이 열에 아홉이라는 이야기다. 의대 진학을 위해선 '재수가 기본, 3수는 필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고, 심지어 과거 '고시 낭인'이라는 표현에 빗대어 '의대 낭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가 '의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기관'
그런데도 최상위권 중에 의대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들의 수시 응시 원서 6장 중에 무조건 한두 개는 의대다. 그 아래로 치대와 약대, 한의대 순으로 지원하는 게 보통이지만, 공대를 마지노선 삼아 끼워 넣고, '간판'을 앞세우고 싶다면 '문과 침공'을 하는 게 불문율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며 요행을 바라는 경우가 없진 않겠지만, 최상위권의 꿈은 한결같이 의대다. 물론, 수능을 치른 첫 해 바로 합격할 것으로 기대하는 아이는 많지 않다. 재학생이 단번에 의대에 진학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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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 앞에 의대 진학반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2023.10.17 |
| ⓒ 연합뉴스 |
이젠 각자의 흥미와 적성이 아닌, 오로지 성적순으로 아이들의 진로가 정해지고 있다. 학년 초마다 실시하는 흥미 적성 검사는 하나 마나 한 관행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사교육 시장에 '초등 의대반'이 생기더니, 고등학교에도 '의대 진학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뜻 전국의 모든 학교가 의사 양성을 목표로 한 기관이 된 듯한 모양새다. 요즘엔 의대 진학 실적을 학교 홈페이지나 교문 현수막의 맨 윗자리에 내걸고 있다. 한때 명문고 판별의 기준이 됐던 서울대, 연고대 등은 뒤로 밀려났다. 한때 전국의 과학 영재들이 모여들었던 카이스트(KAIST)나 포스텍(POSTECH) 등도 옛 영화를 잃어버렸다.
"서울대 공대나 카이스트 갈 바에야 조금 더 노력해서 의대를 가야죠. 어차피 수능으로 치면 한두 문제 맞고 틀리고 차이인데, 억울하지 않겠어요?"
의대가 '블랙홀'이 되면서 학교 교육은 엉망진창이 됐다. 교육과정도 학사일정도 최상위권 아이들의 의대 진학에 도움이 되도록 우선 설계되고 있다. 수능 대비와는 별개로, 의대 진학에 필요한 교과목이 중점 개설되고, 생명과학과 화학 관련 동아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최상위권 중에 과학자나 공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는 찾아보기 어렵고, 기껏해야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인공지능 전문가 정도가 더러 보일 뿐이다. 그나마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비교적 잘 된다는 분야라서다. 거칠게 말해서, 지금 학교는 '극소수의 의대 반'과 '절대다수의 의대 아닌 반'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 사회의 '의대 중독' 현상이 몰고 온 가장 큰 해악은 아이들 사이에서 끝도 없이 세분화하는 열패감이다. 당장 명문대 공대생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안겼다. 그들에게 건네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말은 위로가 아닌 조롱이다. 결국 의대생 앞에 무릎 꿇으라는 뜻이어서다.
의대에 갈 성적이었는데도 과학자가 되고 싶어 기꺼이 공대를 선택한 아이에게도 '2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대놓고 말하진 않아도, 누구든 의대에 떨어져 공대에 왔다고 여기는 거다. 몇 해 전 공대로 진학한 한 제자는 '알곡은 의대로 가고, 공대엔 쭉정이만 남았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며, 다시 수능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의대생은 공대생을 무시하고, 공대생은 자연대생을, 자연대생은 인문사회대생을 얕잡아 본다. 여기에다 기존의 'SKY, 서성한, 중경외시'의 학벌 구조와 '인 서울'과 지방의 위계가 덧씌워져 서열이 매우 복잡하고 촘촘하다. 이는 각자의 적성과 진로 따위와는 무관하고, 오로지 대입의 '입결' 순이다.
문제는 아이들 대다수가 이 서열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도 당장 차별이 두려워 의대를 가고,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어도 취업률을 걱정하며 공대를 선택한다. 집 앞의 지방 국립대를 놔두고 부러 은행 빚을 내서라도 서울의 사립대에 가려는 것도 그래서다.
영혼을 병들게 하는 맹목적인 경쟁
듣자니까, 지방의 한 의대 재학생이 올해 수능에 다시 응시해 경북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미 의대생인 그가 뭐가 아쉬워 또다시 수능을 준비했는지 당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선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 금쪽같은 시간을 고작 수능 준비와 맞바꿀 이유가 하등 없다는 생각에서다.
"선생님과 저희와의 세대 차이에요. 의대에도 '인 서울'과 지방대의 격차를 무시할 순 없죠. 서울대 출신 의사와 지방대 출신 의사를 어찌 감히 비교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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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한 의과대학. 2023.10.15 |
| ⓒ 연합뉴스 |
서울대 출신 의사가 지방대 출신 의사보다 자질과 능력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부박한 현실 앞에 학교 교육은 껍데기만 남았다. 상위 0.1% 안에 들 지방의 의대생마저 열패감에 시달리게 하는 사회가 정상일 리 없다. 오로지 서열 경쟁만 남은 교육이라면, 더는 의미가 없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영혼을 병들게 하는 맹목적인 경쟁을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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