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오길영 기자]
▲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생물학, 심리학, 정신분석학에 기대어 요약하면,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상황은 생존 본능과 깊이 연관된다. 공포는 내가 부딪치는 대상(인간, 자연 등)과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 때, 혹은 대상의 불확실성과 거기서 생기는 통제 불가능성, 그 대상이 가할지 모르는 위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인간의 시각적인 정보를 제한하며, 주위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 혹은 빈방에서 마네킹을 보고 섬뜩함을 느끼는 이유도 생존 본능과 관련이 된다. 특히 마네킹처럼 인간과 거의 흡사하지만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존재는 불안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SF 시리즈 최근작인 <에이리언: 로물루스>(아래 <로물루스>)에 나오는, 인간과 구분되면서도 닮은 외계생명체(에이리언)를 보면서 느끼는 섬뜩한 느낌이 그런 사례다.
여러 평자가 지적하듯이 <로물루스>는 오랜만에 나온 잘 만든 SF 시리즈 작품이다. 재미있는 영화다. 그런 평가에 동의하면서 내가 주목했던 몇 가지 쟁점, 특히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한 지점에 대해 적는다. 앞서 이야기했듯, 오랜 진화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형태를 지닌 존재에 대해 독특한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인간 형태의 인형과 마네킹을 만든다거나 인간 형태와 닮은 로봇(휴머노이드)을 제작하려는 욕망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부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 뭔가 뒤틀리고 훼손된 형태를 취하면 호감도가 감소하고 불쾌감 혹은 섬뜩함을 느낀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사용한 개념인 언캐니(Unheimlich, Uncanny)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이다. "기괴한, 친숙하지 않은, 불쾌한" 등의 뜻하는 이 단어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로물루스>의 에이리언에서 확인한다.
에이리언은 낯선 존재이지만, 그것의 형태나 행동이 인간에게 익숙한 동물적 혹은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닌다. 영화에서 나오는 외계생명체 중 가장 인간과 유사한 존재인 제노모프의 은색 치아를 인간의 그것과 비슷하게 설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로물루스>는 그런 강렬한 비주얼로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설게 느껴지는 것에서 비롯된 불안과 공포를 전달한다.
기술 발전에 대한 맹신이 부르는 재앙
뛰어난 SF 문학이나 영화는 인간이 우주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나고 힘 있는 존재라는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해체한다. 에이리언은 인간중심주의를 위협하는 강력한 존재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위협적인 동물은 여전히 통제 가능하다는 걸 인간은 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이리언은 친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 인간보다 강하고 거의 불멸의 생명력을 지녔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첫 작품부터 나타났듯이 에이리언은 인간의 몸에 침입해서 증식하고 생명력을 키운다. 그렇게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인간은 자아와 타자,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무생명 사이의 경계를 유지하며 정체성을 형성한다.
에이리언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로물루스>에서도 인상적으로 시각화되었지만, 에이리언이 주는 공포는 그것이 외부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침범해서 내부에서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괴하게 변형된 생명체를 탄생시킨다는 점이다.
<로물루스>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인간과 에이리언의 유전자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 생명체, 이전 시리즈 작품과는 달리 신체를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출산 과정을 통해 '정상적으로' 세상에 출현하는 외계인+인간의 기괴한 결합체는 그런 공포심의 극한을 보여준다. 그 형태가 기괴해서만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 미래의 개조된 신인류 혹은 괴물이 자신을 낳아준 엄마/인류를 죽이는 괴물이라서 더욱 두렵다. 여기에서 영화의 부제인 '로물루스'의 의미가 주목받는다.
로마 건국 신화에서 형 로물루스와 동생 레무스 형제는 암컷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 로마를 건국한다. 그 과정에서 형이 동생을 살해하고 제국을 세운다. 그러면 <로물루스>가 보여주는 제국의 부활(르네상스)은 어떤 제국을 가리키는가? 적어도 인간의 제국은 아니라는 걸 영화는 암울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의 뿌리는 어디인가? <로물루스>를 비롯한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국가나 정부는 안 보인다. <로물루스>에선 웨이랜드 유타니 같은 기업이 우주 식민지 개척을 주도한다. 고된 노동 착취가 이뤄지는 우주 식민지에서 탈출하길 희망하는 주인공 레인(케일리 스페이니)과 동료들은 인조인간 과학 장교(대니얼 베츠)에게 인류와 에이리언의 이종 교배에 관한 비밀을 듣게 된다. 우리 시대나 백 년 뒤에나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의 욕망은 변한 게 없다.레인의 동료인 임산부 케이는 자신과 태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DNA 개조를 위한 실험용 샘플인 액체를 몸에 주사하고 괴물을 낳는다.
회사는 왜 에이리언을 굳이 생포해서 생체 실험하는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시리즈가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듯이, 인간의 육체는 우주 정복과 개척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식민지 경영 회사는 인간의 육체를 우주 환경에 맞게 개조하려 든다. 에이리언 DNA의 일부를 인간과 결합해서 창조한 새로운 생명체를 이용해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한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체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물루스>에서 인상적으로 펼쳐지는 인간과 외계생명체, 혹은 조작된 생명체의 피 말리는 추격전과 생존을 위한 싸움은 인간이 자신의 과학 기술 능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오만하게 대할 때 초래하는 결과다.
SF의 고전이나 <로물루스>가 경고하는 것은 과학 기술을 제한 없이 발전시키면 빈곤, 전쟁, 기후 변화와 같은 인류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기술 가속주의(accelerationism)의 위험이다. 인류의 오만함으로 지구를 망쳐놓고 우주 항해 기술을 통해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서 보여준 것이다. <인터스텔라>나 <로물루스>가 보여주는 건 인류 문명의 뿌리를 성찰하려는 마음과 영혼의 훈련 없이 기술 발전을 맹신하는 과욕은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왼쪽이 레인, 오른쪽이 앤디.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간신히 할당 시간을 채우지만, 회사는 규정이 변경되었다면서 할당량이 추가로 배정됐다고 알린다. 레인은 동료들과 함께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다른 우주 식민지인 이바가로 탈출할 꿈을 꾸고 실행에 옮기지만, 그 결과는 끔찍한 괴물과의 마주침이다. 청년들이 벗어나려는 우주 식민지 자본의 욕망이나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에이리언의 강인한 생명력은 공통점이 있다. 식민 기업이나 에이리언은 끊임없는 번식과 성장과 점령을 목표로 움직인다. 둘은 언뜻 적수처럼 보이지만 같은 욕망으로 움직이는 짝패다.
암울해 보이는 영화가 그래도 보여주는 희망의 씨앗이 있다면 그건 새로운 형태의 우정 혹은 애정의 가능성이다.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은 레인에게 남은 가족은 인조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뿐이다. 에이리언과의 치열한 사투에서 살아남은 레인은 앤디를 이바가로 가는 비행선의 동면 캡슐에 넣으면서 "널 꼭 다시 고쳐줄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합리적인 선택조차 많은 감정을 거쳐야 하는 나약한 존재"인 인간을 도우면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존재는 사실 앤디다. 레인과 앤디 중에 누가 더 우월한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우리 시대나 먼 미래에나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구원하는 힘은 기술발전주의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 혹은 인간 대 비인간 사이에서 이뤄지는, 지금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우정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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