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현직 경찰관인 내가 112신고를 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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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기자]
새벽 3시 08분. 피곤한 몸으로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갑자기 제게 말을 겁니다.
"손님, 저 앞에 보이는 저 차 있잖아요. 저 사람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것 같지 않으세요? 저기 보세요. 차선을 저렇게 넘고... (차를 지켜보다가) 어어~ 저래도 되나? 저 차 운전이 너무 위험한데요. 어떻게 하죠?"
택시 안, 뒷좌석에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저는 창밖 앞쪽을 쳐다봤습니다.
"어 그러네요, 진짜 위험해 보여요. 기사님, 너무 가까이 붙으시면 2차, 3차 교통사고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위험하지 않게 조금 거리를 두시죠"
"저도 택시 운전을 꽤 오래 했지만 저렇게 위험하게 운전하는 건 처음 보네요"
저는 살짝 고민하다가 말했습니다. '112신고'를 하겠다고요.
"기사님, 일단 제가 전화로 112신고를 하겠습니다."
지난주 시청 옆에서 야간 철야 근무를 하다 다음날 집안에 일이 있어서 새벽 3시 조퇴를 하면서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고 한남대교를 넘어 올림픽대로로 들어선 지 채 몇 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음주운전 같은 차량을 보고 112 신고
저는 먼저 현재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앞 차량 번호를 확인한 뒤 휴대전화의 '112' 버튼을 눌렀습니다.
사실 경찰관인 저도, 범죄 의심에 대한 112신고는 꽤 오래전에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자전거를 절도하는 현장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신고했던 기억이 마지막입니다.
"112 신고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고생하세요. 제가 지금 택시를 타고 올림픽대로 위 한남대교에서 잠실대교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요. 앞에 차량 운전자가 아무래도 음주 운전 같습니다. 차량 번호가 12가○○○○입니다. 색깔은 회색이고 현대 차량 △△△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에 차가 어떻게 운전하고 있다는 거죠?"
"네, 차가 두세 개 차선을 지그재그로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넘나들고 있고요. 갑자기 속도를 30킬로미터 이하로 줄였다가, 다시 100킬로미터 이상 높였다가 합니다. 급브레이크도 밟고요. 택시 타고 가다가 봐서 지금 2분 넘게 계속 뒤에서 따라가고 있는데,택시 기사님께서 먼저 확인하고 승객인 저도 확인했습니다. 운전자의 음주 운전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네, 지금 관할 지구대에서 순찰차는 출동했고요. 출동 중인 경찰관이 전화를 드릴 테니 모르는 전화가 와도 꼭 받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12신고 내용을 들으신 택시 기사님께서 제게 질문합니다.
"아니, 손님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고 간단하게 조목조목 답변하세요. 나는 가끔 승객 때문에 신고하는 경우가 있는데 막상 말하려고 하면 말도 꼬이고 잘 안 나오더라고요. 마음만 급했지…."
저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기사님. 사실 저도 경찰관입니다. 아침 8시 퇴근인데 집안일로 3시 조퇴하고 집에 가고 있거든요. 죄송합니다. 미리 경찰관이라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어쩐지. 그러셨구나."
"기사님 저는 영동대교 지나서 강남경찰서 쪽으로 빠져야 하는데 앞차가 계속 직전 하면 어떻게 하죠?"
"손님만 괜찮으시면 계속 가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 요금은 계산됐으니, 추가 요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저도 손님만 내리시면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거든요. 어떻게 할까요?"
▲ 음주의심 차량을 따라가는 택시 택시 기사님과 저는 음주 운전이 의심되는 앞에 차량을 10여분간 따라갔습니다. |
ⓒ 박승일 |
"안녕하세요. 112신고 하셨죠? ○○경찰서 교통경찰관 경사 김 아무개입니다. 지금 어디 지나고 계시죠?"
"네, 지금 청담대교 막 지나서 분당 가는 동부간선도로 올라타고 있습니다. 차량 번호는 정확하고요. 아직도 운전을 너무 위험하게 합니다. 저러다 진짜 사고 날 것 같습니다."
"너무 가까이 가시면 위험하니까요. 뒤에서 거리를 두고 가시면 됩니다. 신고하신 분은 어디까지 가시는 길이이죠?"
"저는 본래 목적지가 다른데요. 택시 기사님과 함께 경찰관들 도착하실 때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희도 곧 도착하니까 잠시만 전화 끊지 마시고 위치 좀 확인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3분 가량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주행하는 위치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앞 차는 동부간선도로를 빠져나와 위례 신도시 방향으로 얼마 가지 않아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50대 남성 답변의 반전
그리고 그 차가 주차를 했고, 50대 가량의 남성이 차에서 내렸습니다. 검은색 정장에 검정 넥타이를 매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오는 길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기사님, 제가 지금 내릴 건데요.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기사님께서는 차에서 절대 내리지 마시고 차량으로 위협만 좀 부탁 드릴게요. 그리고 112신고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 내리겠습니다."
저는 음주가 의심되는 차량에서 내린 남성 쪽으로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차로 다시 타지 못하도록 문을 가리고 섰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경찰관입니다. 선생님께서 올림픽대로 한남대교 쪽 지날 때부터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 운전하시는 데 너무 정상적이지 않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음주 운전이 의심돼서요. 혹시 술 드시고 운전하셨나요?"
"제가요? 술은 마시지 않았는데요."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들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이세요? 지금 복장을 보니 장례식장에 다녀오시는 길 같은데 맞나요?"
"네, 고속버스터미널 옆 장례식장에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제가 운전을 하면서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중간 중간 졸음운전을 한 것은 맞습니다. 너무 졸려서 힘들게 왔거든요. 그런데 정말 술은 안 마셨습니다."
사실 제가 직접 음주 운전을 했다는 자백을 받기 위해서 질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출동 중인 순찰차가 도착하고 근무 중인 경찰관들이 음주에 대한 여부는 확인하면 됩니다. 자칫 감정적인 싸움이 될 수 있어서 굳이 강하게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사실 제가 저기 택시를 타고 귀가 중에 112신고를 했거든요. 곧 경찰관들이 도착할 텐데 그럼 그때까지 좀 기다리셔도 괜찮을까요?"
"그러시죠."
다행스럽게도 선뜻 운전자 또한 제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순찰차 두 개가 연속해서 도착했습니다. 이후에 2차례에 걸쳐 음주 감지를 시도했으나 '미감지'로 나왔습니다.
다행히도 음주 운전은 아니었습니다. 다행스럽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으며, 졸음운전 또한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운전자는 출동한 경찰관들을 보면서 "제가 너무 늦게까지 장례식장에 있다가 운전하다 보니 졸음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졸음운전을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술은 마시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운전자분께도 그랬고, 112신고를 접수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에게도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운전자와 경찰관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소란을 피웠네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운전자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닙니다. 사실 저도 운전하는 내내 너무 졸려서 순간순간 졸음운전을 한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다른 운전자가 볼 때는 충분히 음주 운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습니다.
출동한 경찰관들에게도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하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저의 음주 운전 의심 차량에 대한 112신고는 '졸음운전'으로 끝이 났습니다.
▲ 112신고 처리 후 복귀하고 있는 순찰차와 제가 탄 택시 음주의심 차량은 단순 졸음운전이었습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졸음운전에 대한 위험성을 다시한번 깨닭았습니다. |
ⓒ 박승일 |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일을 꺼내어 보니 저도 112신고를 하면서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여러 번 '침착하자'를 반복했었고, 심호흡도 몇 차례나 했습니다.
'경찰관인 나도 이런데, 일반 시민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몇 가지 112신고 요령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올바른 112신고 요령과 주의할 점>
첫 번째, '육하원칙'.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육하원칙으로 말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가, 왜, 무엇을'에 맞게 신고해야 더욱 신속하게 경찰관이 출동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현장 전달'. 눈 앞의 피해 상황을 먼저 설명하고, 가해자의 상태를 말해줘야 합니다. 가해자가 현장에 있는지 아니면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세 번째, 말로 답하기가 어려울 때는 112신고센터 경찰관의 물음에 아무 버튼이나 눌러서 지금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줘야 합니다. 신고자가 경찰관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네 번째, 반드시 음성으로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112 문자 보내기를 통해서도 음성 신고와 같게 신고할 수 있습니다. 경찰관과 문자로 대화도 가능합니다. 음성으로 신고하기가 어려울 때는 문자를 활용하면 좋습니다.
다섯 번째, 신고를 한 뒤에는 다른 사람과의 통화를 자제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고하고 무섭고 겁이 나서 주변 지인들과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출동 중인 경찰관이 전화를 해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출동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 경찰차(자료사진) |
ⓒ introspectivedsgn on Unsplash |
제가 택시 기사님께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차에서 내렸다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므로 내리지 않도록 했던 겁니다. 112신고를 한 뒤에는 출동 중인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상황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평생을 살면서 112신고 한번 안 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험한 상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고, 그런 상황을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후자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오늘이 그런 날이기를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박승일의 경찰관이 바라본세상에서)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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