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가 피어났다. 트루동의 향기와 함께
Q : 촬영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좋은 향이 나더군요. 오늘은 트루동의 세 가지 향과 함께했습니다
A : 향기 속에서 촬영하니 분위기 몰입에도 도움이 됐어요. 마지막에 촬영한 앱솔루 오 드 퍼퓸이 가장 인상에 남아요. 향이 제 취향에 가장 가깝기도 했고요.
Q : 향기는 특별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죠. 향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면
A : 어린 시절 어머니가 쓰던 보디로션 향이요. 그 향이 너무 좋아서 엄마 살에 코를 대고 킁킁 맡았을 정도였거든요. 그 살냄새와 기억이 정말 오래가요.
Q : 어릴 때부터 감각이 활짝 열린 아이였나 봅니다
A : 오감의 민감도가 많이 발달한 편인 것 같기는 해요. 그렇다고 성격이 예민하지는 않아요. 외부 자극과 반응에 민감한 게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필요에 의해 차단하기도 하거든요.
Q : 올해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하 〈히어로〉)과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로 연달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 때보다 천우희 얼굴이 많이 보이는 요즘이죠. 사랑을 실감하나요
A : 아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몽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현지 분들이 〈히어로〉를 봤다며 반갑게 인사해 주시더라고요. 중장년 분들이 먼저 와서 인사하고 손잡아 주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꽤 기분이 좋아요. 어른들이 날 알아봐 주신다? 이건 정말 인지도가 꽤 있다는 거다. 오케이! 이런 느낌이죠(웃음).
Q : 한편 받은 사랑을 잘 돌려주고 있기도 해요. 지난 8월 데뷔 20주년을 맞아 팬들을 위해 카페를 빌려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A : 제게 주는 애정과 관심에 막연하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아 내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20주년은 특별한 기점이잖아요. 제 마음은 19주년과 20주년이 다르지 않지만 팬들은 또 다를 것 같더라고요. 팬들이 이벤트를 준비하기 전에 제가 먼저 뭔가를 기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게나마 준비하게 됐어요.
Q : 선수를 친 셈이군요(웃음). 배우로서 20의 구력이 쌓였습니다. 자주 언급되는 대표작들이 있지만 대중은 그동안 자신이 만난 작품 속 얼굴로 배우의 인상을 기억하기 마련이죠
A : 맞아요. 만나는 순간 잘 봤다고 작품명을 언급하며 인사를 건네시죠. 저를 처음 본 작품의 이미지로 보는 분들이 꽤 있다는 건 배우로서 많은 사람을 대하며 느끼는 아이러니하면서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해요. 저는 배우로서 여러 인물을 연기했을 뿐인데 그 캐릭터로 인해 저를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니까요. 간혹 나에게 악의를 느낄 때는 당황스럽기 하지만 내 연기가 나쁘지 않았나 보다, 인상 깊었나 보다 하고 받아들여요.
Q : 수많은 인물과 만난 천우희에게도 〈더 에이트 쇼〉의 행위예술가 ‘8층’은 전무후무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캐릭터에게 어떻게 접근했을지
A : 저는 외부에서 착안하지는 않아요. 레퍼런스를 풍부하게 보면 도움은 되겠지만 제 안에 갖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확장시키는 것이 더 맞는 방법 같더라고요. 모든 배우들에게 자기가 맡은 인물은 자신만의 캐릭터이기 마련이거든요. 내가 지금까지 관찰해온 특성과 실체, 상상력 같은 것들을 종합해서 한 인물을 만들어내죠.
Q : 여전히 새롭게 시도할 것도 많고요. 〈히어로〉에서 만났던 2012년생 박소이(복이나) 배우가 본격적으로 연기 합을 맞춘 첫 아역배우라고 해서 의외였어요
A : 장기용(복귀주) 씨와의 멜로도 멜로지만 〈히어로〉는 정말 ‘여여’ 케미스트리가 남달랐어요. 소이 양 뿐 아니라 고두심(복만흠) 선배님, 수현(복동희) 언니, 아벨(그레이스)….. 연기를 할 때마다 현장이 즐거웠죠. 애드리브도 잘 살고, 나중에 감독님이 우리를 위한 장면을 따로 만들어 주시기까지 했으니까요. 특히 소이 양의 집중력과 순수함이 정말 좋았어요. 덩달아 저도 동화돼 굉장히 밀도 높은 장면이 탄생했죠.
Q :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군요
A : 어른들은 대부분 아이들이 뭘 잘 모르기 때문에 순수한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소이 양을 보며 아이들의 순수함은 자신과 세상을 향한 명확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강력한 순수함이 연기할 때도 느껴지더라고요.
Q : 아이들이 가진 세상을 향한 신뢰라는 건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일 것이다, 관용적일 것이다, 같은 아이다운 믿음을 의미하는 걸까요
A : 직관적인 본능이라고 봐요. 어른들은 상대를 의심하고,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잖아요. 많은 경험이 좋은 연기의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가진 직관에는 날것에서 꺼나오는 감성이 분명 있어요.
Q : 천우희가 훼손당하지 않고 지켜가고 싶은 마음은 뭔가요
A : 여러 가지가 있지만 축약하면 순수함과 호기심, 열의…. 이런 단어들이 되지 않을까요. 세상이나 다른 것을 바라보는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잃는다면 그만큼 열의도 없어질 테고, 순수함도 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Q : 문득 ‘아이 천우희’를 잘 드러내는 일화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A : 음. 어릴 때부터 부모님 친구 분들이 자주 놀러오셨어요. 그 분들이 제게 많이 말씀하신 게 ‘어쩜 그렇게 사람을 꼬옥 안아주냐”는 거예요. 아마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신뢰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예전에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따뜻하고 맑고, 사랑이 많았나 보다 싶어요.
Q : 지금도 천우희는 사랑이 많지 않나요? 당신과 함께한 많은 동료들이 ‘둥글둥글’ ‘두루두루’라는 단어로 당신을 소개하던데
A : ‘둥글둥글’은 아닙니다(웃음). 누군가 공격성을 띠면 저도 뾰족해져요. 제법 고슴도치가 가시를 확 세우는 것처럼 말이죠. 완강하지는 않더라도 내 의견을 내야 할 순간들도 있고요. 하지만 ‘두루두루’는 맞아요. 제가 타고난 기질인지 사회적 습득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단성을 띠거나 편을 나누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굉장히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Q : 그나저나 김혜수, 한석규, 전도연, 설경구 등 선배들과의 에피소드가 종종 들리는 반면 후배들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 본 것 같습니다
A : 후배들을 후배 아닌 동료라고 여겨요. 기용이도, 〈이로운 사기〉 때 함께한 이연이라는 친구도 다 자기 몫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들이거든요. 무엇보다 이 직업, 연기에 대한 애정이 큰 모습을 봤을 때 동료로서 힘껏 박수 쳐 주고 싶고, 그 마음을 잃지 않길 바라죠. 상처받지 않고, 일에 대한 열의를 잃지 않고 자신이 갈 길을 묵묵히 갈 수 있음 해요. 앞으로는 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나서, 또다른 시너지를 낼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기대감은 있습니다.
Q :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작품 〈마이 유스〉 촬영에 돌입했겠군요. 이상엽 연출의 전작인 〈유미의 세포들〉과 〈아는 와이프〉의 경쾌한 에너지가 감도는 촬영장을 상상하게 되는데
A : 상대역인 송중기(선우해) 씨를 비롯해 촬영장과 조금씩 친해지는 중이에요. 매 작품마다 임하는 마음은 같아요. 항상 같이하는 모든 이들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Q :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팀장이라는 성제연의 직업도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A : 제 주변에서 많이 보고 만날 수 있는 직업군이다 보니 사실적인 모습을 투영해서 연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멜로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현실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Q : 아주 짙은 잔향을 남길 멜로가 기대되는군요. 남은 한 해, 천우희는 어디로 달려갈까요
A : 〈마이 유스〉 대본에 그렇게 적어뒀어요. ‘2024년, 2025년의 나’라고요. 제 모습이 담길 이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싶고 그 안의 일상 또한 즐겁게 영위하고 싶습니다. 재밌고 새로운 것들, 마음이 동하는 것이 있으면 곧바로 시도하고 만끽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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