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가 피어났다. 트루동의 향기와 함께

정윤지 2024. 10.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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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가 그려낸 향기로운 여인의 초상

Q : 촬영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좋은 향이 나더군요. 오늘은 트루동의 세 가지 향과 함께했습니다

A : 향기 속에서 촬영하니 분위기 몰입에도 도움이 됐어요. 마지막에 촬영한 앱솔루 오 드 퍼퓸이 가장 인상에 남아요. 향이 제 취향에 가장 가깝기도 했고요.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에서 불어오는 자유의 바람이 공간을 채우는 느낌, 트루동 ‘아브 델 카데르’ 향이면 가능하다. 이슬람 민족운동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알제리 시인이자 철학자의 이름을 따 만든 컬렉션으로, 프레시한 모로칸 민트 티와 스파이시한 생강, 레몬과 토바코의 쌉싸래한 향이 어우러진다. (왼쪽부터) 룸 스프레이 아브 델 카데르, 375ml 35만원, 클래식 캔들 아브 델 카데르, 270g 16만5천원, 골드 쿠펠, 9만5천원, 테이퍼 캔들 스너퍼, 10만원, 클래식 디퓨저 아브 델 카데르, 350ml 31만원, 모두 Trudon.
블랙 시스루 톱과 프린지 스커트는 모두 Akris. 골드 이어 커프는 Didier Dubot.

Q : 향기는 특별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죠. 향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면

A : 어린 시절 어머니가 쓰던 보디로션 향이요. 그 향이 너무 좋아서 엄마 살에 코를 대고 킁킁 맡았을 정도였거든요. 그 살냄새와 기억이 정말 오래가요.

늦여름 지중해 해안의 정취를 담은 캡슐 컬렉션 ‘이슬라 디 오로’. 베르가못의 다양한 면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오 드 퍼퓸과 캔들을 함께 선보이는 트루동 최초의 듀오 컬렉션이다. 신선한 시트러스 베일 뒤로 카다멈, 머스크의 묵직한 느낌이 올라오며 황금빛 석양이 내려앉는 순간에 어울리는 완벽한 향을 자아낸다. 천우희가 손에 쥔 향수는 대낮의 열기가 수그러드는 여름 저녁에 어울릴 풍부한 시트러스 노트의 이슬라 오 드 퍼퓸, 100ml 39만원, 베르가못에 월계수와 튜베로즈, 재스민 등의 플로럴 노트를 더해 다층적인 시트러스 향취를 느낄 수 있는 클래식 캔들 디 오로, 270g 19만원, 프랑스 조각가 프랑수아 지라르동이 제작한 ‘루이 14세 기마상’을 본뜬 대형 캔들. 버스트 루이 14세 스톤, 38만원, 모두 Trudon. 화이트 슬립 레이스 원피스는 Blumarine. 로즈골드 이어 커프는 Didier Dubot.

Q : 어릴 때부터 감각이 활짝 열린 아이였나 봅니다

A : 오감의 민감도가 많이 발달한 편인 것 같기는 해요. 그렇다고 성격이 예민하지는 않아요. 외부 자극과 반응에 민감한 게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필요에 의해 차단하기도 하거든요.

루이 14세가 이 나무 향기를 사랑해 베르사유 궁전 곳곳에 심은 것으로 알려진 오렌지나무. 조향사들에게도 오렌지꽃은 상징적인 재료로 손꼽힌다는 스토리에서 영감을 얻어, 깊고 풍부한 오렌지 블로썸 앱솔루트 향을 베이스로 시대를 초월하는 강인함에 경의를 표하는 향수가 태어났다. 앱솔루 오 드 퍼퓸, 100ml 36만원, Trudon.

Q : 올해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하 〈히어로〉)과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로 연달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 때보다 천우희 얼굴이 많이 보이는 요즘이죠. 사랑을 실감하나요

A : 아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몽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현지 분들이 〈히어로〉를 봤다며 반갑게 인사해 주시더라고요. 중장년 분들이 먼저 와서 인사하고 손잡아 주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꽤 기분이 좋아요. 어른들이 날 알아봐 주신다? 이건 정말 인지도가 꽤 있다는 거다. 오케이! 이런 느낌이죠(웃음).

Q : 한편 받은 사랑을 잘 돌려주고 있기도 해요. 지난 8월 데뷔 20주년을 맞아 팬들을 위해 카페를 빌려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A : 제게 주는 애정과 관심에 막연하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아 내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20주년은 특별한 기점이잖아요. 제 마음은 19주년과 20주년이 다르지 않지만 팬들은 또 다를 것 같더라고요. 팬들이 이벤트를 준비하기 전에 제가 먼저 뭔가를 기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게나마 준비하게 됐어요.

“얼마나 잘 되려고 이럴까?” ‘천우희적 사고’와 쉽사리 정의 내리기 힘든 팔색조 매력,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천우희.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1세의 왕실 공급 업체로 지정된 이래 지금까지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역사를 써 내려가는 트루동과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신선하고 향기로운 영감이 되길. 블랙 오픈 숄더 미디 퍼프 드레스는 Tory Burch.

Q : 선수를 친 셈이군요(웃음). 배우로서 20의 구력이 쌓였습니다. 자주 언급되는 대표작들이 있지만 대중은 그동안 자신이 만난 작품 속 얼굴로 배우의 인상을 기억하기 마련이죠

A : 맞아요. 만나는 순간 잘 봤다고 작품명을 언급하며 인사를 건네시죠. 저를 처음 본 작품의 이미지로 보는 분들이 꽤 있다는 건 배우로서 많은 사람을 대하며 느끼는 아이러니하면서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해요. 저는 배우로서 여러 인물을 연기했을 뿐인데 그 캐릭터로 인해 저를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니까요. 간혹 나에게 악의를 느낄 때는 당황스럽기 하지만 내 연기가 나쁘지 않았나 보다, 인상 깊었나 보다 하고 받아들여요.

Q : 수많은 인물과 만난 천우희에게도 〈더 에이트 쇼〉의 행위예술가 ‘8층’은 전무후무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캐릭터에게 어떻게 접근했을지

A : 저는 외부에서 착안하지는 않아요. 레퍼런스를 풍부하게 보면 도움은 되겠지만 제 안에 갖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확장시키는 것이 더 맞는 방법 같더라고요. 모든 배우들에게 자기가 맡은 인물은 자신만의 캐릭터이기 마련이거든요. 내가 지금까지 관찰해온 특성과 실체, 상상력 같은 것들을 종합해서 한 인물을 만들어내죠.

수평선 위에 아스라이 태양이 걸려 있는 늦은 오후는 이슬라 오 드 퍼퓸의 향을 만끽하기 좋은 최적의 시간. 싱그러운 베르가못 노트에 자몽, 카다멈, 베티버, 앰버 등을 가미해 트루동만의 모던한 시트러스 향이 완성됐다. 천우희의 피부에 우아한 향의 베일을 드리우는 듯한 이슬라 오 드 퍼퓸, 100ml 39만원, Trudon. 화이트 슬립 레이스 원피스는 Blumarine. 로즈골드 이어 커프는 Didier Dubot.

Q : 여전히 새롭게 시도할 것도 많고요. 〈히어로〉에서 만났던 2012년생 박소이(복이나) 배우가 본격적으로 연기 합을 맞춘 첫 아역배우라고 해서 의외였어요

A : 장기용(복귀주) 씨와의 멜로도 멜로지만 〈히어로〉는 정말 ‘여여’ 케미스트리가 남달랐어요. 소이 양 뿐 아니라 고두심(복만흠) 선배님, 수현(복동희) 언니, 아벨(그레이스)….. 연기를 할 때마다 현장이 즐거웠죠. 애드리브도 잘 살고, 나중에 감독님이 우리를 위한 장면을 따로 만들어 주시기까지 했으니까요. 특히 소이 양의 집중력과 순수함이 정말 좋았어요. 덩달아 저도 동화돼 굉장히 밀도 높은 장면이 탄생했죠.

Q :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군요

A : 어른들은 대부분 아이들이 뭘 잘 모르기 때문에 순수한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소이 양을 보며 아이들의 순수함은 자신과 세상을 향한 명확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강력한 순수함이 연기할 때도 느껴지더라고요.

베르가못의 밝고 풍성한 어코드가 돋보이는 이슬라 오 드 퍼퓸, 100ml 39만원, 지중해 휴양지의 분위기를 선사하는 클래식 캔들 디 오로, 270g 19만원, 모두 Trudon.

Q : 아이들이 가진 세상을 향한 신뢰라는 건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일 것이다, 관용적일 것이다, 같은 아이다운 믿음을 의미하는 걸까요

A : 직관적인 본능이라고 봐요. 어른들은 상대를 의심하고,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잖아요. 많은 경험이 좋은 연기의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가진 직관에는 날것에서 꺼나오는 감성이 분명 있어요.

Q : 천우희가 훼손당하지 않고 지켜가고 싶은 마음은 뭔가요

A : 여러 가지가 있지만 축약하면 순수함과 호기심, 열의…. 이런 단어들이 되지 않을까요. 세상이나 다른 것을 바라보는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잃는다면 그만큼 열의도 없어질 테고, 순수함도 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Q : 문득 ‘아이 천우희’를 잘 드러내는 일화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A : 음. 어릴 때부터 부모님 친구 분들이 자주 놀러오셨어요. 그 분들이 제게 많이 말씀하신 게 ‘어쩜 그렇게 사람을 꼬옥 안아주냐”는 거예요. 아마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신뢰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예전에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따뜻하고 맑고, 사랑이 많았나 보다 싶어요.

Q : 지금도 천우희는 사랑이 많지 않나요? 당신과 함께한 많은 동료들이 ‘둥글둥글’ ‘두루두루’라는 단어로 당신을 소개하던데

A : ‘둥글둥글’은 아닙니다(웃음). 누군가 공격성을 띠면 저도 뾰족해져요. 제법 고슴도치가 가시를 확 세우는 것처럼 말이죠. 완강하지는 않더라도 내 의견을 내야 할 순간들도 있고요. 하지만 ‘두루두루’는 맞아요. 제가 타고난 기질인지 사회적 습득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단성을 띠거나 편을 나누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굉장히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타 들어가는 캔들의 심지를 숨죽인 채 응시하는 천우희의 고요한 시간. 트루동의 클래식 캔들은 1643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가장 오래된 캔들 왁스 제작 업체로서 전통과 노하우를 집약한 제품인 만큼, 태우면 태울수록 독보적인 품질을 느낄 수 있다. 인테리어 오브제로도 손색없는 디자인과 오랫동안 균일하게 발산하는 향으로 매일 밤 자신만의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 버베나와 민트, 생강과 레몬 등이 어우러진 향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훈풍의 정취를 담고 있다. 클래식 캔들 아브 델 카데르, 270g 16만5천원, 클래식 캔들이나 룸 스프레이 받침으로 사용 가능한 골드 쿠펠, 9만5천원, 모두 Trudon.

Q : 그나저나 김혜수, 한석규, 전도연, 설경구 등 선배들과의 에피소드가 종종 들리는 반면 후배들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 본 것 같습니다

A : 후배들을 후배 아닌 동료라고 여겨요. 기용이도, 〈이로운 사기〉 때 함께한 이연이라는 친구도 다 자기 몫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들이거든요. 무엇보다 이 직업, 연기에 대한 애정이 큰 모습을 봤을 때 동료로서 힘껏 박수 쳐 주고 싶고, 그 마음을 잃지 않길 바라죠. 상처받지 않고, 일에 대한 열의를 잃지 않고 자신이 갈 길을 묵묵히 갈 수 있음 해요. 앞으로는 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나서, 또다른 시너지를 낼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기대감은 있습니다.

블랙 오픈 숄더 미디 퍼프 드레스는 Tory Burch.

Q :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작품 〈마이 유스〉 촬영에 돌입했겠군요. 이상엽 연출의 전작인 〈유미의 세포들〉과 〈아는 와이프〉의 경쾌한 에너지가 감도는 촬영장을 상상하게 되는데

A : 상대역인 송중기(선우해) 씨를 비롯해 촬영장과 조금씩 친해지는 중이에요. 매 작품마다 임하는 마음은 같아요. 항상 같이하는 모든 이들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오른쪽) 조향사 앙투안 리는 오렌지꽃을 “향수에 들어가는 흰 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꽃이자, 세대를 초월해 우리 삶과 함께하는 꽃”이라고 묘사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꽃 내음을 맡으며 각자의 추억 속으로 침잠할 수 있는 매혹적인 향. 앱솔루 오 드 퍼퓸, 100ml 36만원. (왼쪽) 상큼한 민트와 따뜻하고 매콤한 생강, 토바코가 만나 이국적인 무드를 자아내는 룸 스프레이 아브 델 카데르, 375ml 35만원, 모두 Trudon. 블랙 시스루 톱과 프린지 스커트는 모두 Akris. 골드 이어 커프는 Didier Dubot.

Q :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팀장이라는 성제연의 직업도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A : 제 주변에서 많이 보고 만날 수 있는 직업군이다 보니 사실적인 모습을 투영해서 연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멜로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현실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어떤 원료와 조합하느냐에 따라 어릴 적 순수함을 상기시키기도, 거부할 수 없는 관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오렌지 블로썸.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오렌지 블로썸 노트를 중심으로 부드러운 사프란과 카다멈, 우아한 아이리스, 신비로운 통카빈과 가이악 우드 등을 더해 찬바람 부는 계절에 딱 어울리는 향수가 태어났다. 우아함과 열정, 매력과 온기가 느껴지는 앱솔루 오 드 퍼퓸, 100ml 36만원, Trudon.

Q : 아주 짙은 잔향을 남길 멜로가 기대되는군요. 남은 한 해, 천우희는 어디로 달려갈까요

A : 〈마이 유스〉 대본에 그렇게 적어뒀어요. ‘2024년, 2025년의 나’라고요. 제 모습이 담길 이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싶고 그 안의 일상 또한 즐겁게 영위하고 싶습니다. 재밌고 새로운 것들, 마음이 동하는 것이 있으면 곧바로 시도하고 만끽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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