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숙제 안 하는 아이? 걱정하지 마세요

이준수 2024. 10. 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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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미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발견하지 못할 뿐

[이준수 기자]

"아버님, 요즘은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길러야 하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를 데리고 나오는 길에 학습지 안내장을 받았다. 옆에는 임시로 차린 부스가 있었다. 학습지 등록을 하면 나눠주는 용도인지 풍선을 비롯해 갖은 상품도 보였다. 나는 학교 선생님인 티를 내지 않으려고 "네, 고맙습니다" 하고 얼른 빠져나왔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 학습지 홍보의 키워드인 것 같았다. 과연 초등학생이 적절한 지도와 안내 없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뇌에서 이성과 고급 사고를 관장하는 부위는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이십 대 초중반까지도 성장을 거듭한다. 전두엽 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진 어른도 '자기주도 학습'이 어려운데 하물며 초등학생은 어떠하랴.

학교 상담주간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고학년 담임을 맡다 보면 학부모님께서 학업과 관련해 고충을 털어놓으신다. 교우관계와 학교 적응이 1순위인 저학년 상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제발 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었으면 자기 공부는 자기가 했으면 좋겠어요. 방청소도 좀 하고."

말씀을 듣다 보면 집에서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어린이라고는 하지만 사적 공간인 집과 공적 공간인 학교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학교에서는 나름 체면을 차리고, 사회생활을 하느라 안 하던 행동을 집에서는 서슴없이 한다. 교실에서와는 달리 게으름도 피우고, 부모님께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학부모님 말씀에 맞장구치면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두 가지 이유가 숨어있었다.

하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가 지도할 수 있는 교과의 범위가 줄어든다. 유치원 무렵까지만 해도 그림책으로 한글을 접하고, 숫자를 가르치는 정도이니 가정 학습이 가능하다. 그러나 학년이 높아지면 교과 내용이 복잡해진다. 초등학교 6학년만 되어도 소수와 분수의 나눗셈이 나온다. 개념은 단순하지만 응용문제로 넘어가면 어른도 순간적으로 헷갈릴 수 있다.

다른 이유는 학생 본인이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사교육을 붙여도 효과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가 목적이든, 학교에서는 배우기 힘든 영역을 배우기 위함이든 사교육 비용은 만만치 않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힘들게 일하고 아이를 위해 학원을 보냈는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속상한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을 하시는 학부모님께 나는 담임 입장에서 경청하고 공감하려 노력한다.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함께 대응해 보겠다는 메시지를 드리는 것이다. 슬쩍 위로도 건넨다. 고학년이라고는 하나 초등학생이므로 혼자서 계획을 짜고 주도면밀하게 공부하기란 상당히 버겁다고. 그러니 지금 서툴지만 애쓰는 아이의 태도가 참 대견하다고 격려를 부탁드린다. 그러면 대부분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 채로 교실 문을 나가신다.

그런데 반전은 있다. 아까는 분위기가 심각해서 말씀 못 드렸지만 아이가 모든 영역에서 자기 주도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령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의 눈을 피해 게임하는 방법은 시키지 않아도 연구를 한다. 6학년 과학에 나오는 산성과 염기성을 구분하는 지시약의 성질은 외우기 힘들어해도 게임 캐릭터 육성 공부는 종합장에 적어가며 외운다. 그러니까 소위 '금지되거나 제한되는 행위'에 관해서는 엄청난 자기 주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심지어 매우 창의적인 발상을 하고, 실행력 또한 대단하다.

알아서 공부하는 자녀? 부모가 교사라도 어렵다
 우리 집 두 아이의 문제집. 가정에서 초등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 이준수
우리 가정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엄마 아빠가 초등교사이니 아이들이 얌전히 책만 보고 알아서 숙제를 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집에서 나는 선생님이 아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며, 아이의 가정통신문을 확인하고 서명하는 아빠다. 아빠는 교육자로서 권위가 별로 없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는 피아노 학원 하나를 다니고, 방과 후로 요리와 컴퓨터 교실을 수강하고 있다. 대신 3학년 2학기 국어 문제집과 수학 연산을 복습 차원에서 공부한다. 작은 아이는 학원 없이 늘봄 교실에 다닌다. 그리고 방문형 학습지로 수학 연산을 익히는 중이다. 그다지 학습량이 많지 않지만 이마저도 매일 작은 소란을 피워야 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6시 30분쯤 저녁 식사를 끝낸다. 그 후에 할 일로 분류되는 것은 양치와 샤워, 문제집이다. 문제집이 다섯 권씩 되면 무리가 가겠지만 우리 집의 학습량은 지나치지 않다. 국어 문제집 두 장, 수학 학습지 3장, 과학 1장 정도다. 어쩌다 집중해서 끝내는 날에는 이십 분도 안 되어 모든 하루치 공부를 끝낸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지식 공부'를 열성적으로 하는 아이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밥 먹고 소파에 엎드려 만화를 읽는 아이를 독려하는 과정부터 저녁 공부는 시작이다. 처음은 부드러운 언어로 살살 달래듯 말을 건넨다. 표정도 온화하다. 그렇지만 나긋나긋한 대화는 아이를 움직이게 만들지 못한다. 계속 만화를 읽는다. 참을 인자를 마음속에 새기며 "기다려주자"를 속으로 되뇐다.

십 분이 흐른 후 다시 한번 양치와 샤워를 하고 공부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아까보다는 약간 상기된 목소리다. 집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흐른다. 아이들은 그제야 슬슬 눈치를 보며 엉덩이를 뗀다. 양치하고 샤워하느라 한 세월이 간다. 또 문제집 한 과목하고 다른 과목으로 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부모의 심정은 쭉 이어서 한 방에 끝내주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위협 아닌 위협을 하며 평화로운 밤을 보낸다. 자기 주도적 학습은 직업 교사를 부모로 둔 가정에서도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른이 규정한 '공부'의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아이들은 놀랄 만한 주도력을 발휘한다.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큰 아이는 십 분 만에 태블릿 PC로 캐릭터를 쑥쑥 그려낸다. 방과 후 컴퓨터 교실에서 배운 인공지능 작곡 서비스로 음악도 넣는다. 그리고는 내 휴대전화를 가져가더니 시네마틱 동영상을 찍는다. 슬로 모션 편집을 해서 동생이랑 깔깔 거리며 논다. 그런 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무렵에는 도스에 설치된 타자연습이나 하고 있었는데 격세지감이 들었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허용하는 범위가 굉장히 좁다는 사실을. 어른은 대학입시나 노동 시장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에 한해서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허용한다.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서 시골에서 소박하게 농사지으며 살고 싶으니 특별한 업적을 세우고 싶지 않다고 고백하면 몹시 걱정을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건만 학위취득이나 직업 시장에서 소득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 보호자가 추구하는 아이의 '자기 주도적 학습'에는 세속적 성공이라는 목표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아이가 반항 없이 잘 따라와 주면 더욱 좋고.

'자기 주도적 학습'의 틀을 벗어나면 보이는 것
 자유시간에는 자기 주도성이 넘친다. 바다에서 주워 온 돌멩이에 그림을 그려 상황극을 하며 논다.
ⓒ 이준수
아이가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되, 사춘기 안 겪고 어른 말 잘 듣는 '순둥이'가 되기 바라는 마음은 모순적이다. 자기 주도적이라는 표현에는 부모나 교사가 짜 놓은 판에서 노력하는 것을 뛰어넘는 무엇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이나 돈이라는 기준만 없으면 자기주도학습에 해당될 수 있는 것들은 무척 다양하다. 사람은 저마다 흥미와 취향이 있고 그 부분에 관해서는 자기 주도성이 십분 발휘된다.

그럼에도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가 가시적 성취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아이는 언젠가 성인이 되고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한국은 직업에 따른 소득 격차가 크고, 복지 제도 또한 촘촘하지 않다. 개인이 성과를 내고 인생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그러니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격차가 현격하게 드러나는 현실에서 마냥 세속적 성취를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저녁 숙제를 끝낸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둘째가 지난 주말에 바닷가에서 주워온 돌에 마카로 그림을 그려 고양이를 만들었다. 그러자 첫째는 클레이와 글루건으로 공룡을 뚝딱 제작했다. 둘이서 역할극을 하는데 연습장에 즉석으로 배경을 표시해 가며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상 완벽한 자기 주도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제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자매끼리 상호작용하며 꽤 괜찮은 공작 기술을 보여주었다. 아마 이런 방식으로 숱하게 놀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장면을 '놀이'라고만 여겼지, '학습'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DIY 인형놀이는 아빠가 승인한 '자기 주도적 학습'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일면 부끄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우리 아이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허용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의 테두리가 몹시 좁다는 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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