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원’이 북한?…세계적 학술지 오류에 국내논문 ‘강제 철회’

박진호 2026. 5. 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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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ㆍ과학 분야 세계 최대 학술 전문 출판사인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 [사진 홈페이지 캡처]


오류 인정했지만 시스템 복구 불가


강원대 소속 A교수는 지난 1월 초 항염증 관련 논문을 세계적으로 공신력 높은 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투고했다. 생물·물리·화학·의학 등 자연 과학 분야 전반을 모두 다루는 사이언티픽 리포트는 의학·과학 분야 세계 최대 학술 전문 출판사인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에서 출간하는 저널이다.

하지만 지난 2월 말 최종 승인 전 단계에서 논문이 강제 철회됐다는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논문 저자 중 ‘UN 제재 명단’과 일치하는 저자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통상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면 초기 검토, 외부 심사, 수정, 최종 승인, 제작, 출판 순서로 진행된다.

A교수는 사이언티픽 리포트 출간을 담당하는 스프링거 네이처에 “모든 저자가 대한민국 국적이며 제재 대상 국가, 기관, 개인과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어 “이번 결정은 이름 유사성이나 데이터베이스 불일치 같은 행정적 오류일 수 있다”며 “어떤 저자가 경고를 유발했는지 등의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했다.

이런 사실을 접한 대학 측도 스프링거 네이처에 해당 사안을 공식적으로 문의했다. 스프링거 네이처 측은 자체 조사를 통해 시스템의 자동 필터링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

‘Kangwon(강원)’의 표기가 북한의 행정구역명인 ‘Kangwon Province(강원도)’와 시스템상에서 동일하게 인식되면서 발생한 오류였다고 설명했다.

피해를 본 건 A교수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초 스프링거 네이처에서 출간하는 한 저널에 논문을 투고 한 B교수 역시 같은 일을 겪었다. 수정본 제출까지 완료한 논문이 2월 말 강제 철회됐다.

B교수는 “그동안 수많은 논문을 투고했는데 단 한 번도 이런 오류가 있었던 적은 없다”며 “학술지에 투고하는 연구자들은 취업이나 연구 성과 등 긴박한 일정을 안고 있는 만큼 이런 일이 또다시 발생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의학ㆍ과학 분야 세계 최대 학술 전문 출판사인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 [사진 홈페이지 캡처]


논문 재투고로 심사 과정 다시 밟아


더 큰 문제는 스프링거 네이처 측의 후속 대응이었다. 해당 오류를 인지한 뒤에도 시스템을 복구하지 않고 “철회된 기록은 시스템상 복구할 수 없다”며 저자들에게 재투고를 강요했다.

논문 투고의 경우 초기 검토, 외부 심사, 수정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는 데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재투고는 이미 수개월에 걸친 심사와 수정 과정을 거친 연구자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뜻이어서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셈이다.

지난 3월 논문을 재투고한 A교수는 “스프링거 네이처에서 대학에 보낸 공식 사과문을 통해 ‘귀 기관의 영향을 받은 저자들과 긴밀히 협력해 그들의 논문이 추가적인 부담을 최소화한 상태로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처음부터 다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글로벌 대형 출판사가 시스템의 무능을 개인 연구자의 에너지 소모로 전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스프링거 네이처 관계자는 “이번 오류와 관련해 해당 대학에 공식적으로 사과 레터를 보냈고, 모든 저자에게 각각 안내한 뒤 한 단계 한 단계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며 “(스프링거 네이처는) 여러 나라의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처럼 빠르게 일 처리가 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사태를 국제 제재 검토라는 민감한 절차를 자동화 시스템에 과도하게 의존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또 시스템 오류가 발견된 뒤에도 이를 바로잡을 ‘사람의 판단’이 부재하거나 늦게 작동해 피해를 키웠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학계 안팎에서는 글로벌 학술 출판 플랫폼의 투명성을 높이고 연구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글로벌 출판사가 공공성을 지닌 학술 데이터를 다루면서도 정작 관리 시스템은 수익성 위주의 효율성만 추구하는 것 아니냐”며 “국내 연구자들이 부당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연구재단 차원의 공식 대응과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스프링거 네이처의 저널은 네이처 포트폴리오(Nature Portfolio), 스프링거(Springer), BMC(BioMed Central), 팔그레이브맥밀란(Palgrave Macmillan) 등이 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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