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타 그 맛이다" 100년 전 빙수 리뷰를 남긴 그 사람
[최수안 기자]
여름이 오면 나는 꼭 빙수 앞에서 잠깐 멈춘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다. 딸기, 망고, 말차, 흑임자, 복숭아, 수박. 요즘 빙수는 토핑만 골라도 시간이 훌쩍 간다. 거기에 얼음 굵기, 우유 얼음이냐 물 얼음이냐, 연유를 뿌리느냐 마느냐 토핑을 무엇을 할까 고민이다.
올여름엔 우베 빙수가 유행일까? 보라색 참마를 갈아 넣은,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유행하고 입으로 들어오는 그 빙수. 아니면 토마토 빙수일지도 모른다. 달지 않고 새콤한, 어딘가 어른스러운 선택.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우유 빙수. 가장 무난하고 가장 실패 없는 모두가 아는 그 맛. 나는 오늘도 메뉴판 앞에서 망설인다. 그런데 이 망설임,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어름의 어름맛은 아이스크림에 보다도 밀크세-끼에 보다도 써억써억 가라주는 빙수에 잇는 것이다."
잡지 <별건곤> 1929년 8월호(제22호). 파영생(波影生)이라는 필명의 어떤 사람이 쓴 글 '빙수(氷水)'의 첫 문장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원문을 직접 읽을 수 있다.
"빙수에는 빠나나물이나 오렌지물을 처 먹는 이가 잇지만은 어름맛을 정말 고맙게 해주는 것은 샛빨간 딸긔물이다. 사랑하는 이의 보드러운 혀끗맛 가튼 맛을 어름에 채운 맛! 올타 그 맛이다. 그냥 전신이 녹아 아스러지는 것 가티 상긋-하고도 보드럽고도 달큼한 맛이니 어리광부리는 아기처럼 딸긔 탄 어름물에 혀끗을 가만히 담그고 두 눈을 스르르 감는 사람 그가 참말 빙수맛을 향락할 줄 아는 사람이다."
빙수 한 그릇 앞에서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 그는 먼저 감각의 사람이었다. 혀끝의 온도를 언어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백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어떤 음식 에세이보다 선명하다.
파영생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아동문학가 방정환의 필명 중 하나인 파영(波影)에 생(生)을 붙인 것으로 보아, 방정환 본인이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자들은 추정한다. 실제로 같은 잡지 별건곤 39호(1931년)에는 동료가 "방정환씨는 빙수를 어찌 좋아하는지..."라며 그의 빙수 사랑을 증언한 기록이 남아 있다.
경성 빙수집 순례
파영생은 글에서 멈추지 않는다. 친절하게 경성 빙수집 품평까지 이어간다. 지금으로 치면 맛집 리뷰다. 읽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백 년 전 사람이지만 리뷰 문체 만큼은 지금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가 꼽은 최고의 빙수집은 종로 광충교 옆 환대(丸大)상점이다. "경성 안에서 조선 사람의 빙수집 치고 제일 잘 가라주는 집"이라고 했다. '잘 가라준다'는 건 얼음을 곱게 갈아준다는 말이다. 지금 빙수집 리뷰에서도 "얼음 결이 곱다" "눈꽃처럼 부드럽다"고 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 다음은 동네별 빙수집 순례가 이어진다. 효자동 꼭대기와 서대문 밖 모화관 쪽으로 가면 우박 같은 얼음 위에 노랑물·파랑물·빨강물을 나란히 뿌린 색동빙수를 파는 집이 몇 있는데, 이건 "내가 먹는 것 아니라도 가엽서 보이는 짓"이라고 일축한다. 색동빙수, 지금으로 치면 레인보우 빙수 같은 건데, 파영생 눈에는 그냥 눈속임이었다.
삼청동 올라가는 소격동 길 얕으막한 초가집에서 딸기물은 아끼지 않는데 건포도 서너 개를 얹어주는 집은 "실치 않은 짓"이라며 그나마 봐준다. 성의는 인정하지만 건포도는 좀 뜬금없다는 거다.
그러나 봐주지 않는 집들도 있다. 남대문 밖 봉래정과 동대문 빙수집이 딸기물에 맹물을 타서 주는 것, 그리고 적선동 빙수집이 황설탕을 콩알처럼 덩어리진 채로 넣어주는 것에는 "따려주고 십게 미운" 짓이라며 노골적으로 분노한다. 맹물 희석은 사기다. 설탕 덩어리는 불성실이다. 그의 기준은 명확하다.
백 년 전 경성에 이미 빙수 평론가가 있었다. 효자동에서 소격동, 봉래정에서 적선동까지 경성 골목을 누비며 빙수 한 그릇 한 그릇을 평가하던 그 사람. 그리고 그의 기준은 지금과 놀랍도록 같다. 얼음은 곱게 갈려야 하고, 시럽은 진해야 하고, 재료는 성의 있어야 한다. 맹물 타는 건 용납 못 하고, 불필요한 토핑은 의심스럽다. 취향은 시대를 건너뛴다.
광충교에서 광교까지
광충교는 지금의 청계천 광교 일대다. 환대상점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다리는 돌아왔다. 1958년 청계천 복개 공사 때 땅 밑으로 사라졌다가, 2005년 복원 사업으로 원래 자리 근처에 다시 놓인 그 다리. 나는 광화문에서 일한다. 점심시간이면 청계천 옆을 걷다가 빙수를 파는 카페 앞에서 멈추기도 한다. 메뉴판을 본다. 파영생이 딸기물이냐 바나나물이냐 고민하던 그 자리에서, 나는 오늘도 똑같이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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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別乾坤 (별건곤) 『별건곤』 제22호 표지, 1929. 8. 1., (재)현담문고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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