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혁신'이 가져온 끔찍한 현실

윤태범 2024. 10. 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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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의 직필] 여성가족부 폐지, R&D 예산 삭감, 의대 2천명 증원... 감응이 사라진 권력, 한계 뚜렷

[윤태범]

예전의 정부혁신은 주로 정부 조직, 인력과 재정, 의사결정 등 정부 운영체계의 혁신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공기업으로, 규제정책으로, IT 시스템으로, 공공서비스로,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로, 그리고 국민의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으로 정부혁신의 넓이와 깊이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장되었다. 바람직한 변화의 흐름이다.

이런 흐름을 상징하는 예로서 문재인 정부의 혁신을 들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정부혁신 전략을 제시하였다. 사회적 가치의 핵심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니, 곧 정부혁신의 방향과 전략, 과제가 국민 중심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물론 문재인 정부 하에서 사회적 가치 지향적 정부혁신이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충분히 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크게 남아있다. 정부가 바뀌어 사회적 가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런 방향성과 전략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사회적 가치의 핵심은 국민이며, 정부가 바뀌어도 국민은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혁신의 처음에서 끝까지의 전 과정에는 항상 국민이 있다.

매년 이른 봄이면 정부는 공기업을 대상으로 경영실적을 평가한다. 평가의 한 부분으로 공기업의 고객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하고, 그 결과는 평가에 반영되어 성과급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기업 평가에 고객만족도 조사를 반영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그러면 정부는 어떠한가. 정부에 대한 신뢰도나 만족도 등에 대한 평가가 언론사나 연구기관들에 의해서 수 없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보도된다. 참고할 것들이 꽤 많다. 그런데 이들이 정부 내로 그다지 수용되지 않는 것 같다. 조사 결과를 반영해 정책이 수정되었다거나 혹은 공무원의 성과급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국민의 이해 부족을 탓 하는 정부
▲ ▲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여성가족부
ⓒ 연합뉴스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여론조사가 부정확해 믿을게 못 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여론조사 결과 자체를 수용하지 않는 경우이다. 어떤 이유이든 조사 결과를 정부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정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정부 스스로는 자신을 거울에 비추길 꺼리니, 대신 언론과 국민이 거울을 비추어준다. 여론조사 결과를 부정하거나 외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할 일이다. 정부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부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낮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정부는 그 이유를 정부가 아닌 국민에서 찾으려 한다. 국민이 정부가 하는 일이나 성과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국민의 인식과 이해의 부족을 탓한다. 그러면서 내놓는 대응책은 대개 국민에 대한 홍보의 강화이다. 국민은 모르고 틀리며, 정부는 잘하고 있느니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정부의 마음이 여전하다.

일상적인 정책도 문제지만, 이런 현상은 정부가 강조해 추진하는 혁신분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동, 의료, 교육, 연구개발 등이 대표적 예이다. 위정자는 이 분야들의 문제를 날 선 용어로 지적하고,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반복해 표명하였다. 정부는 그에 발맞추어 혁신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였다. 그런데 정작 혁신의 성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되는 국민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차갑다. 정부의 혁신적 정책들로 갈등은 커지고 문제는 확산되었다. 해결의 기미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정부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국민의 생각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거기서 혁신의 방향과 정책이 적절한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 국민은 언제나 옳지 않은가.

국민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 없으면 제대로 된 정부의 혁신은 요원하다. 아무리 혁신을 말하고 혁신정책을 강조해도 그것은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다. 혁신의 이름이 붙은 문서를 만들고, 발표하고, 추진해도 국민은 곁눈질조차 주지 않는다.

권력의 언어가 되는 순간, 현장 정책은 왜곡된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집단 휴진에 돌입한 6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 산하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이정민
최근 <경향신문>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은 집권 2년 동안 공식적으로 '자유'라는 단어를 1000번 이상 사용했다고 한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지난 4월 한 달에만 공식 메시지에서 '자유'를 184회 사용했다고 한다. 자유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들이 이 자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자유의 의미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전히 언론들은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해석하고 있다.

이 자유는 정부의 각종 혁신 정책을 위한 중요한 기준 혹은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금년도 정부혁신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4대 혁신원칙으로 현장, 협업, 행동, 해결을 제시하였다. 혁신의 원칙으로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공식적인 혁신의 원칙보다 대통령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자유가 실질적인 원칙으로 작용할 것이다.

권력의 언어는 평범하지 않다. 일상적인 대화의 언어조차도 일상적이지 않다. 하물며 개혁을 강조하며 사용되는 언어는 그 자체로서 권력이 된다. 권력의 언어는 혁신의 언어가 되어 합리적 논쟁의 과정이 없이 현장에 그대로 적용된다. 특정한 단어가 권력의 언어가 되는 순간 그것의 본뜻은 사라지고 현장의 정책은 왜곡된다.

여성가족부가 폐지 대상이 된 지 벌써 두 해를 넘어섰다. 언제 사라질지 예측할 수 없는 여성가족부의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은 부패의 온상으로 낙인 되었고, 예산은 대폭 삭감되어 연구실의 젊은 연구자들의 미래조차 불투명해졌다.

의료개혁을 명분으로 발표된 의대 학생의 급격한 증원은 병원의 진료체계를 무너뜨리고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전국을 헤매고 있다. 100년 만에 간신히 광복된 조국의 땅으로 돌아온 독립군의 흉상은 육사에서 철거의 논쟁에 휘말렸다. 이 모든 것들이 혁신의 이름으로 발생하였다. 정부 조직이 멈추고,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이 중단되고, 환자가 전국을 헤매고, 독립운동가의 명예는 손상되었다. 혁신이라는 외양을 걸쳤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이다.
 9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권력의 언어는 여러 정부기관의 정체성과 핵심기능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의 권익과 분리되었고, 감사원의 독립성은 뒤로 숨어 버렸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들은 사라지고 독임제 조직이 되었다. 위원회 형태의 정부조직이 설치된 이유는 조직운영의 독립성과 정책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 조직에서 독립성과 공정성은 사라졌고, 위원회는 사실상 독임제 조직이 되었다. 이 또한 그들이 말하는 혁신의 결과이다.

권력의 가치는 휘두름이 아닌 감응에 있다. 감응은 말이 없어도 소통되며,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며, 재촉하지 않아도 앞으로 가며,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인다. 강한 언어를 쓰지 않아도 능히 힘을 발휘한다. 감응이 있는 권력의 언어는 아무리 작게 해도 높은 담을 넘어가고, 감응이 없는 권력의 언어는 아무리 크게 외쳐도 한 자도 안 되는 낮은 담조차 넘어가지 못한다. 감응이 무엇인지 궁금하면 무주읍 내의 등나무 운동장에 가보면 된다.

권력의 언어는 말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감응이 있는 권력을 제대로 누리려면 권력의 언어를 줄이고 대신 사람들의 말문이 열리도록 해야 한다. 사람을 부르는 혁신, 말문을 열게 하는 혁신이어야 한다. 권력의 언어가 줄어든 곳에 국민의 생각이, 기다리던 해답이 가득 채워질 것이다. 권력의 언어 대신 국민의 언어와 생각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국민 곁으로 다가갈 수 있다. 말문이 트인 곳이 혁신의 진짜 시작점이 된다. 말문이 열린 곳에서 제대로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감응의 혁신이 가능해진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 윤태범
* 필자 소개 : 윤태범은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행정학회 회장, 한국정책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서울시 감사위원,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을 역임하였다. 참여정부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행정개혁 전문위원,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획위원회 국정과제지원단장,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 정부혁신과 공공개혁과 관련된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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