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또 다른 단계 접어들었다"…레바논 지상전 임박했나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 일대를 향해 탄도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 북부 국경을 향한 로켓 공격에서 나아가 이스라엘 본토 중심부를 향해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으로 지상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외신들은 “새로운 국면에 전쟁이 접어들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24일(현지시간) 오전 6시 30분 텔아비브 인근의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본부를 향해 탄도 미사일 한 발을 발사했다. 모사드는 지난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 등 수천 대를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시켜 수천 명 사상자를 내게 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헤즈볼라 측은 미사일 발사 직후 “이곳은 헤즈볼라 지도자 암살, 삐삐·무전기 폭발을 담당한 본부”라며 보복 차원의 공습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날 공습을 두고 CNN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의 탄도 미사일은 이스라엘 방공망 ‘다윗의 돌팔매’(David’s Sling)에 의해 격추됐다. 다윗의 돌팔매는 단거리 공격에 대비하는 아이언돔과 달리, 중·장거리 공격을 막는 방공망이다. 탄도 미사일을 저지한 이스라엘은 이 미사일이 발사된 레바논의 공군기지를 공습했다고 밝혔다.
헤즈볼라는 300발 이상의 로켓도 이스라엘 북부를 향해 발사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발사한 로켓 대부분을 요격했다. 친이란 이라크 민병대가 이스라엘 동부를 향해 날린 드론도 사막으로 추락했다.
레바논 일대를 사흘째 공습 중인 이스라엘은 공습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과 레바논 관영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국경에서 가까운 레바논 남부뿐 아니라 수도 베이르트 남부 연안, 동부 베카 계곡으로 공습 지역을 넓혔다. 또한 헤즈볼라의 활동지 중 한 곳인 시리아 서부 항구도시 타르투스를 향해서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스라엘 측은 공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의 전쟁은 레바논 주민들과 전쟁이 아닌 헤즈볼라와 전쟁”이라며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군 역시 피란길에 오른 레바논인들에게 “아직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말라”며 공습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지상전 강력히 준비 중"
이스라엘방위군(IDF)은 레바논에 대한 지상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추고 있다. 25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전날 오리 고딘 북부사령관은 "(우리는) 또 다른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지상) 작전으로 (레바논에) 진입할 수 있도록 매우 강력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레바논 침공'을 거론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헤즈볼라에 대한 공세 이후 이스라엘에선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다. 이스라엘 여론조사업체 라자르의 지난 19일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르당의 지지율은 24%로 1위를 기록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0월 하마스 습격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못 했다는 평가를 받고 지지율이 폭락했다가, 최근 하마스와 헤즈볼라 요인암살, 삐삐 동시 폭발 사건을 통해 반등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반면 헤즈볼라는 효과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삐삐 폭발 사건으로 내부 통신망이 붕괴하고, 잇따른 암살과 공습으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휘하의 지도부 8명 가운데 6명이 살해돼 지도부가 와해한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사일·로켓 부대 사령관 이브라힘 무함마드 쿠바이시의 사망으로 헤즈볼라의 반격이 원활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이스라엘과 서방 당국자를 인용해 헤즈볼라가 최근 이란에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공격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란은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참석 중이란 점을 들어 "현재는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답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란의 물밑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악시오스는 후티 반군이 사거리 300㎞ 초음속 대함미사일 수십기를 러시아에서 넘겨받을 수 있도록 이란이 중재 중이라며, 거래가 성사될 경우 홍해의 미국 등 함대가 위협을 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이처럼 중동 분쟁이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별다른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적했다. 국제 씽크탱크인 위기그룹의 마이클 와이드 한나 국장은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 축소나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등을 압박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임박한 대선 때문에 이를 사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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