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불황' 심상치 않은 징조들

명순영 2022. 9. 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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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통신사도 물류 기업도 '침체 경고'
시나리오 경영·자동화·M&A 기억하라

글로벌 통신 기업 A사의 한국지사는 올해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다. 인력을 대규모로 줄인 데다, 사무실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조만간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외국계 기업은 실적이 추락하면 차디찬 구조조정에 나선다. 그러나 딱히 한국지사에서의 성과가 낮았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기대 이상 성적표를 거뒀다. 본사가 비용 절감에 나선 이유는 ‘당장의 실적 하락’이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기업이 향후 실적 부진을 예견하면 통신 등의 인프라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가 깊은 A사는 과거 사례를 통해 이 같은 일관성 있는 움직임을 학습했다. A사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뼈아픈 일이지만 A사의 경기에 대한 ‘감(感)’은 크게 틀린 적이 없었다”며 “글로벌 경기 침체를 염두에 두고 경영 전략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고자 전 세계 금융당국이 풀었던 천문학적인 돈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설상가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망이 무너지며 인플레이션은 한층 더 심해졌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이 금리를 크게 올리기 시작하며 전 세계 자본 시장도 휘청이고 경기는 불안해졌다.

일각에서는 금리를 조금만 올리면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고 경기 침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연착륙 기대감은 쏙 들어가고 불황을 우려하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물류 꿰뚫는 페덱스 CEO

▷“운송량 줄어 침체 예상”

세계 실물 경기를 빠르게 반영하는 물류 업체 페덱스의 최고경영자(CEO) 라즈수브라마니암도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그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분야에서 운송량이 매주 줄어들고 있다”며 “올해 초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폐쇄된 중국 공장이 다시 문을 열면 운송량이 늘어날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줄었다”고 말했다.

‘R의 공포’를 예고하는 국내 산업 사례도 적지 않다. 국내 4대 화학사(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의 2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이 10조1306억원으로 1분기 말 대비 약 13% 증가했다.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공장 가동률 축소도 재고 증가를 막지 못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수요 부진이 예상보다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당분간 시황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해 투자 철회를 결정한 기업도 등장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3월 발표한 1600억원의 질산 유도품 DNT 시설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DNT는 가구 내장재와 자동차 시트 등 폴리우레탄 제조에 쓰이는 TDI의 원료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으로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전 뉴욕대 교수는 “미국 증시의 주가가 지금보다 40% 더 폭락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그는 지난 9월 20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가 2023년까지 ‘길고 추한 경기 침체(Long and Ugly Recession)’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1970년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인플레이션)과 세계 금융위기 때와 같은 대규모 부채 문제가 겹쳐 나타나기 때문에 짧고 얕은 침체가 아닌 길고 추한 경기 침체가 된다는 주장이다. 루비니는 2007~2008년 미국 주택 시장 버블과 붕괴를 예측해 유명해졌다. 그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 없이 Fed가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 ”이라고도 했다.

세계은행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인 통화 정책 긴축 기조로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 중국, 유로존이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며 “내년 글로벌 경제는 자그마한 타격만 입어도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침체기를 준비하는 기업 전략으로 베인앤드컴퍼니의 ‘승리하는 기업을 위한 플레이북’ 보고서를 주목해볼 만하다. 전례 없는 침체를 예고한 베인앤드컴퍼니는 “기업은 임시 방편식 비용 절감(Burn-The-Furniture Approach)으로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오해한다”며 “R&D 중단, 인재 유치나 M&A 전략 연기, 마케팅 비용 삭감 등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베인앤드컴퍼니가 제시한 제1의 원칙은 시나리오 경영이다. 침체기에는 비핵심 제품을 줄이고 핵심 강점에 집중하는 방어 전략(Play Defence)이 적합한지, 시장을 주도하고 성장력을 키우는 공격 본능(Play Offense)을 발휘할 때인지 시나리오를 짜서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이 밖에 새로운 가격 책정과 포트폴리오의 정교화, 유연한 공급망, 자동화 설비 확대, 지속적인 고객 관계 구축, 적극적인 M&A 등을 주문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7호 (2022.09.28~2022.10.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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