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수험생 "집단소송"…전형료 32억 받고도 부실관리 논란

이찬규 2024. 10. 17.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진행된 수시모집 자연계열 논술시험에서 시험지 유출 논란이 발생했다. 뉴시스

연세대학교 수시 논술 문제 유출과 관련해 수험생들이 논술시험 무효를 청구하는 집단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연세대 측이 수시 전형 과정을 부실하게 감독·관리해 시험 문제가 사전 유출됨에 따라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16일 0시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에선 ‘25수능 연대 수리논술 집단소송방’ 오픈 채팅방이 개설됐다. 이 채팅방에선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는 글이 잇따랐다. 소송의 목표는 자연계열 논술 재시험이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수험생 및 학부모 등 60여명이 소송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12일 2025학년도 연세대 수시 모집 자연계열 논술시험 과정에서 시험지가 예정 시간보다 65분 일찍 배부됐고, 휴대전화 사용을 통제하지 않아 일부 시험 문제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집단소송을 이끄는 사람은 연세대 재학생인 A씨다. 전과(轉科)를 목표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논술시험에 응시한 A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시험에 떨어져도 괜찮지만 연세대 입학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온 수험생들의 모습이 마치 지난해의 나와 같아 총대를 메기로 했다”며 “법무법인 한 곳과 상담을 마쳤고, 늦어도 이번 주 내 변호인 선임 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 소송을 망설이는 수험생을 위해 소송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이도 있다”고 덧붙였다.

소송에 참여한 수험생들은 논술시험 무효 소송과 함께 시급성을 고려해서 시험 결과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도 신청할 계획이다. A씨는 “시험의 공정성이 현저하게 저하됐기에 재시험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합격자 발표가 나오게 되면 상황을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가처분을 신청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오후 연세대는 입학처장 명의로 낸 사과문에서 “입시 공정성을 침해한 객관적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재시험 입장 대신 5가지 재발방지책을 약속했다. 연세대 입학처 캡처


수험생들이 집단소송에 나서는 건 연세대가 ‘재시험은 없다’는 방침을 고수한 데 따른 것이다. 연세대는 전날 오후 입학처장 명의로 낸 사과문에서 “입시 공정성을 침해한 객관적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대신 시험관리 시스템 재점검 및 감독관 교육, 고사장 좌석제 변경, 사전 검토 등의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다만 연세대는 수사 등 외부기관의 객관적 평가로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결론이 나오면 재시험을 치를지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연세대는 시험지 등을 유출한 의혹을 받는 2명을 특정하는 등 6명을 전날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전날 고발했고, 논술시험 공정성 훼손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이날 추가로 수사를 의뢰했다. 또 대학 본부나 입학처와 분리된 진상조사위원회도 발족했다.

연세대는 자연계열 논술시험지를 찍은 사진에 대해 ″사전 유출이 아니다″며 “사진을 찍은 수험생을 특정했고, 사교육 업체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독자 제공


수험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연세대가 재시험에 미온적인 건 대입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날 기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까지는 29일, 연세대 논술 합격자 발표일인 12월 13일까지는 59일 남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재시험이 치러지면 다른 학교의 수시전형과 날짜가 겹치는 등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서울대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은 다음주부터 12월 초까지 매주 주말, 수시면접이 예정돼 있다. 지난 2020년 한국외대의 경우 논술 시험지 지연 배부 문제로 수험생 4명이 밤늦게까지 재시험을 치렀지만, 당일 조치가 이뤄진 바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재시험을 지금 검토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대입 일정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관계자는 “수험생은 전형 날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수시전형을 지원한다”며 “재시험이란 변수가 생기게 된다면 각 대학 입시 전형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재시험으로 수험생들의 당락이 바뀌게 된다면 추가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2013학년도 중앙대와 한국외대 ‘1+3 전형’ 합격자들은 2012년 11월 교육과학기술부가 해당 전형을 폐지해 재수할 위기에 처하자, 같은 해 12월 전형 폐쇄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14년 1·2심 모두 패소했다. 2008년 고려대의 특목고 학생 우대 논란으로 전국진학지도협의회가 전형 중지 가처분을 계획했다가 철회한 바 있다.

연세대 논술 유출 사태로 입학전형료로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감독관 사전교육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6일 삼육대 미술 실기고사 모습. 뉴시스


이번 사태로 대학들이 입학 전형료로 막대한 이익을 얻으면서도 시험 관리·감독엔 소홀하단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입시전형료 수입 상위 20개 대학의 입학 전형료 수입은 모두 681억7000여만원에 달했다. 논술 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진 연세대 신촌캠퍼스는 32억2700만여원이었다. 실기시험 문제 하나가 50분 지연 교부된 단국대는 29억 2300여만원, 시험 보조 자료가 40분 지연 교부된 한성대는 8억2700여만원을 입학 전형료로 벌었다. 특정 고사장 필기구 사용 제한 의혹이 제기된 가톨릭대의 입학전형료 수입은 18억9500여만원이었다.

2025학년도 대입에서 수시모집 비중이 79.6%에 달하는 만큼 감독관 교육 등 수시 전형 감독‧관리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가 올해 감독관 사전교육을 비대면으로 하는 등 대학별 감독관 교육은 대면‧온라인 등 제각각이다. “자세한 건 안내사항 종이를 보라”는 식으로 부실 교육을 진행하는 대학도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대학이 입시 자율성을 갖는 만큼 시험 관리에 큰 책임이 있다”며 “수시 시험 감독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는 “평가자가 대학이 아니라 수험생이 된 시대다. 이제는 기업 채용처럼 수험생들에게 입시 정보를 보다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며 “교육부도 대학 자율성을 보장하는 선에서 대학 입시 전반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