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성은 1970년대 히트곡 '아쉬움', '먼 훗날'로 사랑받았던 가수이자, 한때 인기 코미디언으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웃음을 주던 그의 이면에는 오랜 시간 감춰온 비극적인 개인사가 있었다.
19살이던 시절, 당대 최고의 매니저로 불리던 타미김과 만나 사실혼 관계를 이어갔다.

김미성은 “같이 살면서도 노래는 못 하게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가수의 꿈을 꺾으려 했고, 결국 “노래 안 시켜주면 헤어지자”고 말하며 집을 나갔다.

그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김미성은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 “아이 낳고 사는데 무슨 호적이 필요하냐는 말에 그냥 넘어갔다”고 했다.

당시 김미성의 나이 19살이었으며, 아들이 공개되었을 때의 파장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살았지만, 김미성은 끝내 자신을 ‘엄마’라 부르게 하지 못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해
“나는 엄마가 아니라 이모야”라고 말했고, 아이는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아들의 이름은 고모의 호적에 올랐고, 이들의 관계는 오랜 세월 감춰졌다.
하지만 타미김이 세상을 떠난 장례식장에서 비로소 드러났고, 언론에 보도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효자였던 아들

노래로 다시 주목을 받던 시기, 김미성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사건에 휘말린다.
매니저가 두 명의 아이 엄마를 차로 친 것이다.
모든 재산을 합의금으로 쓴 뒤, 방송 출연은 뜸해졌고, 일본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일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비자 없이 체류하며 공원을 전전했고, 화장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했다.
“배고플 때 우유 하나 사서 며칠을 버텼다”고 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결국 자진 신고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당시 가지고 온 전 재산은 4만 엔, 우리 돈 45만 원이 전부였다.
그렇게 돌아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결국, ‘엄마’라 부르게 하지 못했던 아들이었다.
아들에겐 엄마는 엄마일 뿐이었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미성의 아들은 느닷없는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미성은 “엄마라고 부르게 한 적도 거의 없고,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도 잘 모른다”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라는 이름, 아내라는 이름으로 남긴 점이 하나도 없다”며 지난 세월을 후회했다.

납골당을 찾아간 김미성은 “혁아, 이모 왔다”는 말로 아들을 불렀다. 그 말엔 후회와 미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들의 엄마로서 돌아가고 싶다”는 말처럼, 그는 이제야 뒤늦은 마음을 꺼내 보이고 있다.
애석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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