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에게 '신상' 털리며 얻은 정보, 입이 쩍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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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뉴월 폭염 아래 영산강변 나주평야의 끝없는 둑길을 실컷 달렸다. |
| ⓒ 김종성 |
그럼에도 애마 자전거를 대동하고 떠난 건, 영산강변의 기차역인 나주역과 몽탄역이 호기심을 촉발해서다. 나주역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5일장 터였다는 천년 고을 나주 5일장의 정경이 궁금했다. 인터넷 지도를 보다가 발견한 몽탄역은 그 이름 때문에 끌렸다.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영산강가에 자리한 호남선의 기차역인 몽탄역(夢灘驛). 한자를 풀어보면 '꿈 여울' 역이다. 이렇게 서정적인 이름의 기차역이 영산강변에 있다니. 오뉴월 폭염주의보가 겁을 주었지만 달리는 내내 곁에 있어줄 영산강이 있어서인지 별로 두렵지 않았다.
옛 시골장이 떠오르는 나주 5일장
여행 첫날 영산강 길을 따라 전남 담양에서 광주를 지났다. 영산강은 담양에서 광주, 나주, 영암을 지나 목포의 서해바다로 빠져 나가기까지 약 120km를 굽이치며 흐르는 물길이다. 밋밋하게 흘러가던 영산강의 물길은 나주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거대한 에스(S)자 굴곡으로 강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호남평야의 젖줄 영산강 물줄기가 산과 들을 깨우는 것 같았다. 전주와 함께 전라도를 대표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큰 터가 바로 나주다. 전라도라는 명칭은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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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채로운 외관의 나주목사고을시장, 5일장도 열린다. |
| ⓒ 김종성 |
홍어로 유명한 시장이라 여기저기서 오이 썰 듯 삭힌 홍어를 익숙하게 써는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잘 삭힌 홍어라 그런지 냄새도 심하게 안 나고 보기만 해도 쫀득해 보였다. 한 아주머니가 먹어보라며 두어 점 주어 넙죽 먹었다. 삭힌 홍어의 톡 쏘는 감칠맛과 숙성한 고기의 쫄깃함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흔히 홍어는 돼지편육, 묵은 김치와 함께 삼합으로 먹는데, 홍어회를 제대로 맛보려면 홍어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어 맛을 음미하는 것도 좋다.
홍어는 조선시대 때 임금에게도 진상됐다고 한다. 흑산도 홍어는 진상되기 위해 나주 영산포까지 뱃길로 운송됐다. 그런데 날씨가 습하고 더운 여름에는 운반과정에서 홍어가 변질됐다. 영산포 사람들은 처음엔 변질된 홍어를 버렸다가 잘 삭힌 홍어의 맛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산포 홍어의 유래가 된 것. 김치, 막걸리, 젓갈, 홍어까지... 우리는 발효 민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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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기만 해도 톡 쏘는 맛이 느껴지는 홍어회.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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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시골장터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나주 5일장. |
| ⓒ 김종성 |
나주 곰탕의 국물이 다른 지방의 곰탕처럼 뽀얗지 않고 말간 것은 소의 뼈 대신 양지나 사태 등 고기 위주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찬이라고 해야 새큼달큼한 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이지만 곰탕에 이보다 더 잘 맞는 반찬은 없을 듯싶었다. 남도에 와서 안 먹고 그냥 가면 후회한다는 나주의 명물다웠다.
나주시민들로 북적북적한 5일장터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가축장이었다. 철책 우리 안에 덩치 큰 오리와 닭들이 있고,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가 보았다. 어릴 적 외갓집에 놀러갔다가 보았던 시골장터의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손님과 닭과 오리 거래를 마친 주인장 아저씨가 즉석에서 닭과 오리를 잡고 있었다.
오리를 최고의 보양식으로 여기는 전남 지역에서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초여름엔 오리를 즐겨 먹는단다. 펄떡이던 한 생명이 한 순간에 죽고 해체되어 살코기로 변하는 현장. 옛 장터는 다른 동물의 살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이중적인 숙명을 아프게 깨닫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년 시절에 장터에서 겪은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나보다.
영산강 본연의 풍경이 펼쳐지는 '느러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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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강을 유람할 수 있는 영산포 앞 황포돛배. |
| ⓒ 김종성 |
지금은 포구의 흔적이 사라지고 '홍어의 거리' 등이 자리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영산포구는 옛 영산강변의 영화를 크게 누렸던 곳이다. 영산강 물길을 따라 먼 바다에서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고, 사람과 물산들이 영산포구에 모여들었던, 내륙 항구로 호남 최대의 포구였다. 영산강이라는 강 이름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영산포구에서 나온 것이다.
영산강의 명칭은 강 중류에 자리한 나주와 영산포에 의해 생겨났다. 나주는 통일신라 때 금성(錦城)으로 불리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영산강을 금천(錦川), 금강(錦江)이라 했고 나루터는 금강진(錦江津)이라 했다. 고려시대에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영산도(永山島)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나주 남쪽의 강변에 마을을 개척한 후, 그곳을 영산포(榮山浦)로 부르게 되었고, 조선시대 초기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자 강 이름도 영산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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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대강 개발로 어디나 비슷비슷해진 우리의 큰 강.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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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 개발로 많은 나무들이 사라져 이런 나무를 만나면 절로 발길이 멈춰진다. |
| ⓒ 김종성 |
이런 이유로 1970년대 중반에는 4개의 대용량 관계용 댐인 담양댐, 장성댐, 나주댐, 광주댐을 건설했고, 1981년에는 영산강 하굿둑을 완공하였다. 이렇게 물을 가둔 덕에 홍수와 가뭄을 피할 수 있었고 농사도 많이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피해는 컸다. 생태계는 파괴됐고 영산강의 수질은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 특히 영산강 하굿둑이 만들어지면서 숭어와 장어를 비롯해 영산포까지 올라오던 영산포 홍어 등의 특산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에 강을 살리려면 당연히 댐과 하굿둑을 손보는 게 맞겠지만,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현재 강 중류에 승촌보와 죽산보가 추가 건설되고 말았다. 물의 흐름이 더욱 더디게 되니 자연스레 강에 녹조가 생기고 물고기가 수백 마리씩 떼죽음을 당하는 게 일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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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댐들과 함께 영산강 물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죽산보. 더 위로 승촌보가 또 있다.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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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강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느러지들 전망대. |
| ⓒ 김종성 |
나무 그늘이 거의 없는 길을 달려선지 갈증에 자주 시달렸다. 바닥을 드러낸 물통을 채우려 길 가 어느 집에 들렀다. 배는 고파도 참을 수 있지만 목이 마르면 계속 달리기 힘든 게 자전거 여행자. 사람들은 일하러 모두 나가고 축사의 소들만이 순한 눈을 끔벅이며 맞아 주었다. 다행히 작은 시골 교회와 마을회관이 나타나 자전거 여행자의 바짝 마른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특히 마을회관 안에 모여 있던 동네 어르신들은 물외에 꿀맛이 나는 사이다까지 따라 주셨다.
동강면 곡천리에서 잠시 강과 멀어지면서 마을길로 들어서는데 논밭 사이를 지나다보면 곧 옥정리로 넘어가는 언덕이 나온다. 그리 길지 않지만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언덕을 치고 오르면 '느러지들 전망대'다. 영산강 자전거 길에서 유일한 오르막으로 언덕의 경사가 급해 자전거 여행자를 '늘어지게'하는 길이다. 하지만 힘든 만큼 잊지못할 보상이 주어지는 언덕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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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돌이로 굽이쳐 자연스레 흐르는 영산강 느러지들. |
| ⓒ 김종성 |
'영산강 8경중 제2경'으로 꼽힐 만한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영산강의 이름은 지역에 따라 남포강, 목포강, 금강, 사호강, 곡강 등으로 불린다. 나주와 함평의 경계를 흐르던 영산강은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의 느러지에 이르러 곡강(曲江)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전망대 아래 그늘이 있는 넓은 정자가 자전거족으로 꽉 찼다. 확 트인 전망과 강물이 휘돌아나가는 느러지의 절경에 취해 쉬이 발길을 떼기 힘든 곳이다.
'꿈 여울' 마을의 몽탄역, 그림자도 쉬어가는 정자 '식영정'
옥정 마을을 지나 몽탄대교를 건너면서 자전거족 친구들은 무안군으로 넘어가고, 나는 825번 강변국도를 따라 가고팠던 몽탄역으로 향했다. 몽탄대교 너머 무안군의 영산강은 큰 호수처럼 넓었다. 영산강은 몽탄대교를 만나 비로소 강폭이 바다처럼 넓어지면서 몽탄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는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작은 어선들이 강가에 정박한 모습도 정답다.
'꿈 여울'이라는 뜻의 몽탄(夢灘)은 고려의 태조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다. 강 건너 나주에 진을 친 고려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에게 쫓겨 퇴각하던 중 범람한 영산강에 가로막혀 포위당한다. 이때 꿈에 한 노인으로부터 '썰물로 물이 빠진 여울(灘)을 건너라'는 말을 들은 왕건은 영산강을 건너 무안에서 매복하다 쫓아온 견훤군을 대파한다. 왕건이 견훤군을 대파한 곳이 파군천이고 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현재의 파군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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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폭이 넓어지고 어선들이 나타나는 몽탄대교 아래 영산강.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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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탄면 마을 한가운데의 소담한 기차역 몽탄역. |
| ⓒ 김종성 |
기차역을 중심으로 학교, 우체국, '정다운 식당', '마을 미용실' 등이 있는 정겹고 아담한 마을에 도착하니, 목마름은 배고픔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연휴 때라 그런지 서너 개 있는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고 기차역 앞 작은 구멍가게만 문을 열었다. 저녁식사를 빵과 우유로 때우기는 싫어 동네 안쪽 골목까지 뒤지며 식당을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역으로 돌아오는 길, 경로당 겸 마을회관이 눈에 들어왔다.
오는 길에 물과 사이다까지 얻어 마신 경험에 힘입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 배고픈 자전거 여행자에게 마을 인심은 후했다. 밥은 없지만 가게에서 라면 같은 것을 사와서 끓여 먹으라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 주셨다. 라면 2개와 참치 캔 하나, 할머니 한 분이 냉장고에서 꺼내 주신 김치 한 종지. 오랜만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참치 라면 맛을 보게 되었다. 동네 할머니들이 고구마를 삭혀 만들었다는 새큼달큼한 감주까지... 풍족하기 이를데 없는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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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탄마을 할머니들이 손수 만든 잊지못할 고구마술.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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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목 푸조나무, 향나무들로 한껏 운치있는 강변 정자 식영정. |
| ⓒ 김종성 |
오백 살이 넘었다는 장대한 고목 푸조 나무들이 찾아온 여행자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푸조 나무는 갈잎의 키 큰 나무로 주로 남부지방의 들이나 산기슭에 자란다. 마을을 지키는 대표적인 당산나무라는 여러 그루의 고목 푸조 나무와 멋들어진 자태의 향나무들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무척 기뻤다. 둔중하고 두터운 몸체가 나무가 아니라 바윗돌 같았다. 나무들이 지키고 선 식영정 앞으로 강이 거대한 곡선을 한 번 더 그리고 있었다.
영산강변의 아름다운 정자 식영정(息營亭)은 나주임씨가 대대로 살아온 배뫼라는 마을 입구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 승문원(承文院) 우승지(右承旨)를 지낸 한호(閑好) 임연(林煉, 1589~1648)선생이 말년에 여생을 보내려고 지은 정자다. 그의 호인 한호처럼 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취지로 그림자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식영정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정자 바로 옆에 토끼를 키우는 집이 한 채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마을 언덕배기까지 찾아온 여행자가 기특했는지 집에서 만든 식혜라며 한 사발 건네주었다. 가을에도 정자주변 풍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주인장 아저씨. 올 가을 갈대들과 황금들녘으로 가득할 나주평야 사이로 영산강을 또 달려야겠다.
| ○ 편집ㅣ최유진 기자 |
덧붙이는 글 |지난 5월 23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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