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마니아들 특히 MTB 라이더들 사이에서 GT는 가장 미국적인 자전거 메이커로 통한다. 자동차 브랜드로 비유하자면 마치 지프(Jeep)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GT는 1972년 미국에서 창립되어 미국을 상징하는 자전거 문화인 BMX, MTB와 함께 성장해왔고 중성적인 브랜드컬러를 내세우기보다 여전히 오프로더의 이미지를 강하게 유지하는 강렬한 개성을 지닌 자전거 메이커다.
이왕 자동차로 비교했으니 지프의 상징적인 모델 랭글러(WRANGLER)에 비견할만한 자전거를 고른다면 필자는 GT 자스카(ZASKAR)를 선택하겠다. 자스카는 1991년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계보를 이어 내려오는 GT를 대표하는 하드테일 MTB다. 1990년대 최강의 MTB 팀 중 하나인 GT 레이싱의 주력모델이었을 뿐 아니라 특유의 강인함으로 도전과 모험을 꿈꾸는 수많은 라이더들에게 사랑받아왔다.
BMX 레이싱이 낳은 MTB의 명가
: GT의 창립자 개리 터너(GaryTurner)와 리치 롱(Rich Long)
GT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창립자인 개리 터너(Gary Turner)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차고에서 만든 BMX가 그 시작이었다. 개리 터너의 BMX는 뛰어난 성능과 품질로 이름을 알리며 대량생산을 하게 되고, 개리 터너의 이름을 딴 'GT'라는 자전거 메이커로 성장해 미국과 유럽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 BMX의 인기는 조금씩 식어갔지만, GT는 MTB가 BMX 이상의 큰 인기를 얻을 것이라 예상했고 그 예측은 정확히 적중한다. GT와 함께 BMX의 명가로 불리던 자전거 메이커들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GT는 MTB 명가로 새로운 명성을 얻으며 자리를 잡았다. 특히 GT는 1990년대 최고의 MTB를 만들어내는 메이커 중 하나이기도 했다.
: GT의 1991년 MTB 카탈로그
1980년대부터 GT는 다양한 MTB 모델을 선보여 왔다. 1980년대 후반까지의 GT의 MTB 프레임들은 크롬몰리 스틸 소재로 만들었는데 애버런체 팀(AVALANCHE TEAM), 사이클론(PSYCLONE) 등의 모델이 GT의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1991년 당시의 최첨단 소재였던 알루미늄 그리고 티타늄을 사용한 경량 레이스 MTB인 자스카(ZASKAR) 그리고 시짱(XIZANG)을 선보인다. 자스카와 시짱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GT를 상징하는 양대 플래그십이었는데 참고로 자스카는 히말라야 북서부의 산악지대를 의미하며, 시짱은 히말라야와 접한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西藏, 서장자치구)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 1993 GT Zaskar LE
GT의 하드테일 MTB 프레임들은 1980년대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하드테일 MTB 프레임은 삼각형 두 개가 붙은 ‘다이아몬드’를 기본으로 하지만, GT의 프레임은 삼각형 세 개로 이루어진 ‘트리플 트라이앵글’이 기본 디자인이다. 트리플 트라이앵글 프레임은 다이아몬드 프레임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지만, 시트스테이가 다운튜브와 거의 평행을 이루고 탑튜브와 시트튜브 두 군데와 맞닿아 있는 점이 다르다.
: 90년대 놀라운 라이딩 스킬로 전 세계 MTB 라이더를 열광시켰던 '한스 레이'와 GT 자스카
금속 튜빙을 용접해 만들던 시절, GT 트리플 트라이앵글 프레임은 비틀림에 강하게 저항하는 높은 강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며, 특히 자스카는 크로스컨트리 레이스 뿐 아니라 트라이얼 등에 사용될 만큼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심지어 90년대 초반 월드컵 다운힐, 슬라럼 레이스에서 활약하기도 했으니 이 터프함은 전설이라 불릴 만하다.
: 2009 GT Zaskar Carbon
최근에는 카본 프레임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며 자스카 역시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여 카본 프레임을 출시한다. GT의 상징인 트리플 트라이앵글과 단단함을 중시하는 기본 콘셉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 GT는 크로스컨트리용 하드테일보다 풀서스펜션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월드챔피언십과 같은 XC 레이스에서 자스카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지며 사람들의 관심 역시 조금씩 멀어지는 듯 했다.
탄생 25주년, 다시 태어난 자스카
그러나 GT는 자스카를 잊지 않았다. 올해는 자스카의 탄생 2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GT는 25주년을 기념하기위한 새로운 자스카를 선보이며 부활을 선언했다. 25주년을 맞이한 신형 자스카는 유럽산 브랜드의 XC 하드테일 MTB와는 다른 분위기다. 왠지 트레일에서 올마운틴까지 소화해낼 수 있을 듯한 터프가이가 아닐까 예상하게 된다.
GT는 2015 유로바이크에서 자스카의 탄생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아주 특별한 프레임을 선보였다. 바로 자스카 25주년 기념 프레임이다. 단 100대가 생산되고 생산 넘버가 각인된 이 프레임은 무척 아름답고 현대적이면서도 클래식하다.
다운튜브의 ZASKAR 로고는 단순한 페인팅이 아닌 알루미늄의 금속 질감을 살렸다. 각지고 날카로운 최근 자스카의 로고 대신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25년 전의 로고를 넣었고, 헤드튜브의 배지 그리고 다운튜브 하단에는 2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엠블럼이 들어간다.
체인스테이 안쪽에 새겨진 날개문양 역시 BMX 레이싱 시절부터 있었던 GT 로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날개문양은 이전부터 GT의 여러 레이싱바이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인데 보는 각도에 따라, 특히 자전거를 뒤쪽에서 바라볼 때 양 옆으로 펼쳐지는 듯한 멋진 연출을 보여준다. 자스카 25주년 프레임은 이 문양 역시 페인팅이 아닌 금속 질감으로 처리해 보는 각도에 따라 아름답게 빛난다.
새로운 자스카의 테마
라이드매거진에 도착한 자스카는 GT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과 다른 한국전용 사양 모델이다. 자스카 LTD 카본 프레임에 폭스 32 에볼루션 포크와 시마노 XT 2×11단을 그룹세트를 장착해 국내 라이더들이 선호하는 사양과 가격대를 맞췄다.
일반적으로 하드테일 MTB, 특히 메이커를 상징하는 플래그십은 레이스에 초점을 맞춰 개발한 모델인 경우가 많다. ‘레이스에서 1등을 한 자전거가 바로 이 자전거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자전거 메이커의 바람일 것이 분명하지만, 이번에 GT는 자스카의 테마로 모험과 라이딩의 재미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유로바이크에서 GT는 자스카 25주년을 상징하는 인물로 ‘한스 레이(Hans Rey)’를 초대했다. 한스 레이는 트라이얼 월드챔피언 출신의 라이더로 프리라이드(Freeride) 장르의 개척자이자 산악주행에 트라이얼 기법을 적용한 독특한 라이딩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자전거 모험 여행으로 더욱 유명하다.
과거 자스카는 한스 레이의 애마로 수많은 모험에 함께했다. GT가 자스카를 상징하는 인물로 한스 레이를 선택한 것은 새로운 자스카의 테마가 미지의 땅을 밟고 새로운 길을 달리는 기쁨을 누리는 파이오니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스카의 테마는 단순히 상징적인 것만이 아닌, 프레임의 설계에서도 드러난다. 프레임의 탑튜브 길이와 앞뒤 바퀴간 거리인 휠베이스가 긴 편이다. 이러한 디자인은 자전거에 높은 안정감을 부여해준다.
일반적으로 XC 레이스 하드테일의 헤드튜브 각도가 71도 전후인데 반해 GT 자스카의 헤드튜브 각도는 69.5도로 살짝 누운 편으로 이 또한 자전거의 안정감을 높여주는 요소 중 하나다. 반면 스템의 길이는 짧고 핸들바의 폭은 넓다. 핸들링의 민첩함을 보완하고 자전거를 쉽게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존의 레이스용 하드테일과 비교했을 때 복잡하게 이어지는 코너를 빠르고 민첩하게 공략하기보다는 거친 내리막길을 과감하게 질주하는데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길이 거칠면 거칠수록 자스카는 진가를 드러내며 더 재미있는 라이딩이 가능할 것이다. GT의 공식적인 설명에 따르면 자스카는 ‘보다 공격적인 뉴 스쿨(New school, 올드 스쿨의 반대의미로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를 의미) 지오메트리’를 적용했다고 한다.
프레임의 소재는 카본, GT는 프레임에 가해지는 힘에 따라 카본소재의 배합과 적층을 최적화했다는 의미의 Force Optimized Carbon(F.O.C.)라는 기술을 적용했다. 흔히 카본소재의 특징에 대해 ‘철보다 가볍고 강하다’와 같이 단편적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돌처럼 단단하게도 낚싯대처럼 유연하게도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카본이다.
헤드튜브나 바텀브래킷은 단단하게, 충격과 진동을 흡수하는 시트스테이는 부드럽게 만들어 전체적인 성능을 최적화 할 수도 있다. F.O.C.을 적용한 자스카의 프레임은 단단함과 유연함을 모두 갖추고 높은 강성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가볍게 만들어 산악 주행성능을 극대화 했다.
휠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27.5인치를 사용한다. 앞/뒤 15mm/12mm 액슬을 적용한 시마노 XT 허브 그리고 알렉스 림의 알루미늄 림을 이용해 조립한 휠이다. 자스카의 프레임은 컨버전 방식이 아닌 액슬 타입 휠세트 전용이며, 12×142mm액슬이 프레임 일체형으로 성형된 카본 드롭아웃을 관통하는 구조로 가벼우면서도 높은 강성을 낼 수 있게 디자인 되었다.
디스크브레이크가 장착되는 마운트도 견고하고 간결한 설계가 돋보인다. 카본 프레임에 너트를 매립한 것이 아닌, 나사산이 새겨진 플러그를 측면에서 삽입해 브레이크 볼트를 고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프레임에 가해지는 피로를 줄일 수 있고, 강한 토크로 나사산이 망가지더라도 부품 교체를 통해 손쉽게 수리할 수 있다.
브레이크호스와 변속케이블은 프레임 내부가 아닌 다운튜브 하단 외부에 고정되는 방식이다. 프레임 내부를 통과하는 방식이 최근의 유행이지만, 정비의 편의성을 생각하면 케이블과 호스가 밖으로 노출된 것이 더 편하다.
외부로 노출된 대신 클램프를 이용해 선을 깔끔하고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텔레스코픽 시트포스트를 사용할 경우, 리모트 레버의 케이블이 BB셸 뒤쪽을 통과해 시트튜브 안으로 깔끔하게 삽입될 수 있도록 게이트를 만들어놓은 디테일이 돋보인다.
시승
약 2주간의 시승기간 동안 자스카 카본 LTD와 다양한 트레일을 달렸다. 사실 자스카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타본 것은 26인치의 알루미늄 프레임 모델이었기에 이전 세대 모델로부터의 변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없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동안 GT 자스카 시리즈의 이미지는 단단한 자전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필자가 시승한 자스카 카본 LTD는 그동안 필자가 타왔던 GT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단단함보다는 유연함 그리고 부드럽고 편안한 승차감이 첫인상이었다는 것에 다소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단순히 알루미늄이 카본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최근 시승했던 다른 메이커의 플래그십 카본 하드테일과 비교해도 자스카 카본 LTD 프레임은 색다른 느낌이다. 부품 구성을 보면 카본 프레임과 알루미늄 휠, 알루미늄 시트포스트의 조합이다. 타이어의 공기압도 높게 세팅했으니 이 독특한 승차감은 프레임의 특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어비를 높이며 댄싱을 시도하면 앞으로 튀어나가는 펀치력이 제법 경쾌하고 낭창거리는 느낌은 없는데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이 적다. 폭 600mm, 20mm 라이저 바 장착과 함께 핸들의 포지션은 제법 높은 편이다. 덕분에 상체를 앞으로 숙이지 않아 제법 편안한 자세가 나온다. 그동안 시승했던 레이스용 하드테일들과 전혀 다른 인상이다.
하지만 이 편안함은 자스카의 가면이다. 날뛰기 시작할 때 자스카의 정체가 드러난다. 아마 하드테일 라이더라면 ‘내리막질’을 할 때 미친 듯 널뛰는 뒷바퀴를 눌러가며 달렸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스카 카본 LTD의 묘한 승차감의 정체는 느긋하고 편안한 라이딩을 위한 것이 아닌, 내리막길에서 쏜살같이 질주하기 위함이다. 분명 뒷바퀴의 충격이 느껴지지만 ‘탕탕거리며’ 울리는 느낌이 아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르기 직전까지 최대한 노면을 붙잡고 접지력을 유지하는 안정감이 더욱 과감하게 속도를 내도록 부추긴다.
너무나 예상과도 다른 느낌이 필자만의 착각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코스에서 두 명의 라이더와 자전거를 바꿔 달려보기도 했다. 놀랍게도 평가는 비슷하다. 아주 다루기 쉬우며 유연하고 빠르다. 프레임 소재의 특성과 독특한 지오메트리가 결합된 결과일 것이다.
내리막길이 빠른 대신 오르막에서는 익숙해지기까지 약간 요령이 필요하다. 안정감이 높아 완만하고 긴 오르막은 무척 편안하지만, 핸들이 높아 가파른 경사에서 슬쩍슬쩍 바퀴가 들리려는 것을 막기 위해 앞을 눌러줘야 한다. 성능 밸런스를 숫자로 평가한다면 내리막이 6에 오르막이 4라고나 할까, 딱히 아쉽다기보다는 자스카의 개성으로 봐야 할 부분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5대5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분명 재미가 줄어들 테니까.
MTB 특히 하드테일 마니아라면 자스카 카본 LTD는 타볼만한 자전거다. 평범 노멀 보통을 중시하는 라이더라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개성이 강한만큼 주인을 제법 가릴듯하다. 하지만 때때로 시승을 하다보면 스펙시트에는 담을 수 없는 무언가에 마음이 흔들리는 자전거를 만나기도 하는데, 필자에게는 이번 GT 자스카가 바로 그런 모델이었다. 오래간만에 뜨거운 연애를 한 기분이다.
GT 자스카 카본 LTD XT 제원
프레임 : GT 자스카 카본 LTD
포크 : 폭스 32 퍼포먼스 플로트 27.5 100mm, 15mm 스루액슬
크랭크 : 시마노 XT FC-M8000 38X28T, S(170mm), M(175mm)
시프터 : 시마노 XT SL-M8000
앞 디레일러 : 시마노 XT FD-M8025-H, 2X11, 34.9mm
뒤 디레일러 : 시마노 XT RD-M8000 SGS
카세트 : 시마노 XT CS-M8000, 11-40T 11단
체인 : 시마노 XT CN-HG700-11
브레이크 : 시마노 XT BL-M8000
로터 : 시마노 XT SM-RT81 S 160mm
타이어 : 컨티넨탈 X-KING 퍼포먼스 27.5×2.2
허브 : 시마노 XT HB-M8010 15QR/FH-M8010 12×142mm, 32홀 센터락
스템 : 트루바티브 스타일로 T20, 31.8mm, S(60mm), M(75mm)
핸들바 : 트루바티브 스타일로 T20, 31.8mm, 600mm, 20mm 라이즈
안장 : S-TRACE 다이아몬드
시트포스트 : 트루바티브 스타일로 T20, 31.6mm, 350mm
사이즈 : XS, S, M, L
색상 : 로/네온 옐로우
가격 : 339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