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전문가들이 선정한 ESG 베스트

류지민·반진욱·박지영 2021. 1. 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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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 기업의 ESG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ESG 평가의 기초가 되는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만 놓고 봐도 미국 S&P500 기업 중 90%가 보고서를 발간하는 것과 달리 국내는 발간 기업이 100여개에 불과하다. 매경이코노미가 국내 ESG 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국내 기업의 ESG 수준은 10점 만점에 4.7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 선진국 기업 역시 ESG 경영의 역사가 길지 않고, 일부 분야에서는 국내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정부의 꾸준한 정책과 투자가 어우러진다면 국내 기업의 ESG 수준도 빠르게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국내에서도 차별화된 ESG 경영 모델을 만들어가는 기업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도 유니레버나 파타고니아, 노보노디스크와 같은 글로벌 ESG 스타 기업의 등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직은 많은 기업이 돈과 시간을 들여 ESG 투자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ESG 활동이 재무적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아질수록 확실한 유인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영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ESG에 대한 국내 경영자 의식 수준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제도적,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기업이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 공급에 더해 기후 환경 리스크, 인권, 안전 등 환경 성과와 사회가치를 추구하는 등의 주요 지표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기업 지속 가능 경영과 성장에 과거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ESG라는 피해 갈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발 앞서 국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전문가 20인이 선정한 분야별 ESG 알짜 기업은 어디일까.

‘쓰레기 산’ 문제를 해결한 쌍용양회의 폐기물 재활용 공정은 대표적인 ‘환경’ 경영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쌍용양회 제공>

1.Environment(환경)

▶‘친환경’ 트렌드, 기업 생존 좌우

친환경은 최근 전 세계 기업이 가장 신경 쓰는 화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소 배출 규제 등 환경 이슈가 파급하는 경제적 가치가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1위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지난 6월 핵심 사업이었던 석유화학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향후 10년간 500억달러를 투자해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ESG가 단순한 자금 조달 문제에서 벗어나 기업 생존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이슈가 된 셈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패러다임 전환에 잘 대응하는 국내 기업으로 쌍용양회가 꼽힌다. 쌍용양회는 친환경 생산 공정에 대한 연구와 친환경 생산 기술을 위한 조직을 별도로 두고 10년 전부터 관련 특허를 출원해왔다. 생산 공정에 폐기물 재활용을 늘리기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함께 진행했다. 지난해 3월 CNN에 보도돼 국제적 망신을 당했던 경북 의성군의 ‘쓰레기 산’ 사태를 해결한 것은 이 같은 노력의 성과다.

경북 의성군 단밀면 농촌마을에는 폐플라스틱·폐고무·폐목재 등 19만2000t에 달하는 폐기물이 축구장 2배가 넘는 면적에, 3층 건물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한 폐기물 재활용업자가 2016년부터 허용보관량의 200배에 가까운 폐기물을 무단 방치하면서 만들어진 산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명래 환경부 장관까지 나서 처리를 약속했지만 전국 소각·매립시설이 포화 상태에 달했고, 코로나19 여파로 쓰레기 해외 반출까지 막히면서 사태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이때 고통받던 주민들을 구한 것이 바로 쌍용양회다. 올해 830억원을 들여 연간 50만t 폐합성수지를 재활용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한 것이 톡톡히 역할을 했다. 섭씨 850도로 연소되는 소각로와 달리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는 마그마의 2배인 2000도의 초고온에서 폐기물을 녹이기 때문에 유해물질 배출이 거의 없다. 폐플라스틱뿐 아니라 폐타이어, 하수슬러지 등도 시멘트의 제조 원료로 쓰인다. 이에 시멘트산업을 ‘정맥산업’이라 부르기도 한다. 폐자원을 재활용하는 효과가 더러워진 피를 맑게 해주는 정맥과 같다는 의미다.

삼성물산도 친환경 트렌드에 맞춰 극적인 체질 변화를 시도 중이다. 지난 10월 말 삼성물산은 신규 석탄 관련 사업과 투자를 전면 중단하고 ESG 중심 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발전 사업은 향후 LNG와 신재생에너지가 주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사 부문에서 이뤄지는 연간 550만t 규모 석탄 트레이딩도 점진적으로 중단할 방침이다. 석탄 트레이딩 관련 매출은 전체 상사 매출의 3% 수준인 연간 4000억원 규모다. 당장 눈앞의 매출을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그린에너지 전문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21년부터는 국내에서 민간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하는 PPA제도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RE100 이슈로 재생에너지로 만든 제품을 고객사에 공급해야 하는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을 통해 국내 재생에너지 투자에 나설 것”이라며 “바이오에 이어 지속 가능한 추가 성장동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풀무원은 단순히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뿐 아니라 주력 사업을 통해 어떻게 친환경에 일조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업으로 꼽힌다. 풀무원은 기업 탄생 토양 자체가 ESG다. ‘유기농’이라는 말이 생소한 1980년대부터 자연과 생명 가치를 우선시했다.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는 지속 가능한 식문화에 부합하는 제품 포트폴리오 구축이다.

풀무원은 제품 제조 전 과정과 폐기 단계에 ‘환경을 생각하는 포장 3R 원칙’을 적용했다. 플라스틱 포장재 줄이기,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 도입, 화학물질이 남지 않는 수성잉크 사용 등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여왔다. 국산 연두부, 나또 제품 용기에 탄산칼슘을 혼합해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을 30% 이상 줄였다. 풀무원샘물 생수병과 아임리얼쥬스, 드레싱 소스 등 페트병을 활용하는 제품 겉면에 ‘수분리 라벨’을 붙여 재활용이 쉽도록 했다. 대외적으로도 ESG 경영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다우존스 지속경영지수(DJSI) 평가에서 식품산업 부문 116개 글로벌 기업 중 6위에 올랐다.

신한금융지주는 금융권이 어떻게 친환경 트렌드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50년까지 그룹 내부와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제로카본 드라이브를 통해 탄소 배출 관련 기업에 투자하거나 대출하지 않을 뿐 아니라, 30년 내 해당 기업 투자와 대출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은 각국 중앙은행 간 협력체인 BIS가 올 초 ‘그린스완’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과 궤를 같이 한다. BIS는 2020년 1월 기후변화와 같은 자연 재해로 인한 금융위기를 그린스완으로 규정했다.

실제 기후변화는 이미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사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집중호우나 산사태 등으로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높아진다. 이는 보험사 건정성 악화로 이어진다. 은행은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이어진다면 농산물 피해가 커지고, 이에 따라 농식품업체에 내준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식이다.

KT&G는 10년이 넘는 장기 사회 공헌 활동 경험 덕분에 ‘사회 책임 경영’ 전문성이 다른 기업보다 높다. <KT&G 제공>

2.Social(사회)

▶사회적 가치 내재화가 장기 성장 결정

기업의 사회적 가치 영역은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분야다. 이 때문에 환경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내재화시켰는지와 외부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ESG 우량 기업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법무법인 지평 임성택 대표변호사는 “ESG 전담 조직 유무나 정기 보고서 발견 여부, 소수자 고용 비율 등 정량적 지표를 통해 사회 책임 경영을 위한 시스템을 갖췄는지 살펴보면 일회성이나 단순 이미지 포장에만 급급한 기업을 골라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사회 책임 경영에 가장 앞선 행보를 보이는 곳은 SK그룹이다. 1970년대부터 사회 공헌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사례를 만들어왔고, 2010년부터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 2018년 정관 변경, DBL(더블보텀라인) 경영, 2020년 ESG 경영 천명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친환경 경영을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이 뚜렷하다는 평가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SK는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론을 개발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무엇보다 ESG를 그룹 전체의 성장 스토리 속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기는 ‘전사적 인권 보호’에 중점을 둔 경영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법무·인사·감사팀 등 전 사적 협업을 통해 직원 인권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장기근속자 비율이 높은 것은 그 덕분이다. 삼성전기는 또 세계 20여개국 250개 협력사와 현지 완결형 구매 정책을 추진 중이다. 원자재를 공급하는 현지 국가 발전과 사회 공헌이 목적이다. 윤리 경영을 위반한 협력사와 거래를 중단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등 사회적 책임 준수를 위한 각종 장치를 마련한 것도 눈에 띈다.

KT&G는 역설적인 사례로 눈길을 끈다. 본래 KT&G는 ESG와는 가장 동떨어진 기업으로 인식됐다. ESG 투자자들이 기피하는 ‘죄악주’ 산업인 담배가 주력 상품이기 때문이다. 세계 2위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담배 판매를 이유로 KT&G를 투자 제한 기업 목록에 올렸다. 그러나 담배를 파는 ‘해악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추진해왔던 사회 공헌 활동이 오히려 사회 책임 경영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실제 KT&G 사회 공헌 사업은 10년 이상 진행돼온 것이 대부분이다. 다른 기업보다 오랜 시간을 들인 만큼 사회 공헌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자 금액 규모도 상당하다. 2019년 기준 사회 공헌 목적으로 매출액 3.4%에 달하는 101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200대 기업 매출액 대비 사회 공헌 비율 평균치(0.2%)의 15배가 넘는다. 사회 공헌 성과를 따로 분석하는 ‘S리포트’도 2018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본부장은 “고용·근로 조건, 협력사와 공정거래, 소비자와의 소통 활동 등 사회 책임 경영 전 영역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기업으로 꼽힌다. 현재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인 코로나19 극복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유다.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ESG그룹 대표변호사는 “기업의 존재 이유, 즉 ‘미션’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치료제를 개발하는 셀트리온의 역할은 재무적 가치와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3.Governance(지배구조)

▶소유와 경영 분리·이사회 강화 노력

글로벌 ESG 평가기관에서 국내 기업이 가장 많이 지적받는 부분은 지배구조 분야다. 대체로 경영의 투명성이나 보고 체계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한다.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노사관계나 기업 윤리 영역이 글로벌 표준 이하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는 ‘재벌’이라는 한국의 독특한 기업 형태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소유와 경영 분리나 주주친화정책 등 지배구조 개선에 신경 쓰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고 있다.

현대차는 정의선 회장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기 시작한 이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사회 내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한다. 또한 주주권익 보호 담당 사외이사를 지정해 기업지배구조 헌장 도입하는 등 현재 국내에서 가장 개선된 이사회 체제를 갖췄다는 평가다. 2006년 현대글로비스 비자금 사건, 2011년 현대건설 인수, 2014년 한전부지 매입 그리고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무산까지 이어져온 불투명한 경영 관행에 비춰보면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네이버의 이사회 변천사는 스타트업이 대기업으로, 나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단계의 표본을 보여준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경영 전면에 있던 창업자는 점차 뒤로 물러나고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 경영이 정착됐다. 이해진 창업자 뒤를 이어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을 이사회 의장에 발탁한 것도 의외였다. 그는 네이버 창사 이래 첫 외부 출신 의사회 의장이었다. 변 의장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장과 보상위원장을 겸하며 창업자 입김이 이사회에 작용할 수 있는 통로가 공식적으로 차단됐다. 소유와 경영 분리가 제도적으로 완성된 셈이다.

SK텔레콤 역시 사외이사 중심의 독립적 의사 결정 체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특히 주주친화정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2020년 3월 업계 최초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데 이어 PC나 모바일을 통해 주주총회 현장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소통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도 제공했다. 이에 더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은행권에서는 SC제일은행이 주목받는다. 특유의 역동적인 이사회 문화가 차별화된 강점으로 꼽힌다.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은 SC제일은행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SC제일은행 이사회는 은행장 선임·해임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이사회 내 각종 위원회에서 은행장을 배제하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최대한 부여했다. 이사회 견제 기능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사외이사 4명의 전문 분야를 각각 경제·통계, 회계, 언론·홍보, 인사·전략 등으로 세분화한 점이 돋보인다. 지난 2018년에는 사외이사 교체를 통해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중을 줄이고 여성 비중을 높이기도 했다.

윤진수 본부장은 “이사회 내 토론 문화가 활성화돼 있고 사외이사가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도 이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행장 관리 아래 차기 CEO를 육성하는 등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견인하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강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키이스 리 세계자연기금(WWF) 아시아 지속 가능 금융 총괄

지속 가능성과 수익성은 양립 가능한 조건

환경 분야 비영리기구인 세계자연기금은 최근 국내 5개 은행의 ESG 수준을 평가해 결과를 발표했다. 비영리기구인 세계자연기금이 은행의 ESG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금융 부문은 세계자연기금에서 10년 이상 공들여온 분야다. 은행 ESG 경영은 왜 중요할까. 이번 ESG 평가를 총괄한 키이스 리 박사에게 그 의미에 대해 물었다.

Q. ESG에서 은행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A 기업에 재원을 제공하는 것이 은행이다. 이를 활용해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압박하는 등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은행이 단순히 어떤 기업에 대출을 해줄지 말지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를 바란다. 앞으로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더 개선될 여지가 있는 기업이 있다면 함께 성장하는 식이다. 은행은 지금은 충분하지 않지만 이후 지속 가능성 점수가 높아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일단 돈을 빌려줄 테니 1~2년 안에 일정 ESG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제안하는 식이다. 해외에서는 기업이 지속 가능성을 개선할 때마다 이자율이 바뀌는 그린 금융 상품이 많이 나온다. ESG 경영을 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셈이다.

Q. 은행 입장에서는 어떤 이점이 있나.

A 환경문제는 여러 가지 리스크를 만들고, 이는 기업이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제 가솔린이나 디젤차만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는 전기차 기술을 가진 회사만큼 경쟁력이 있지 않다. 음료수 생산업체도 한 사례다. 음료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의 질과 양에 영향을 받는다. 기후변화가 더 극심해져 가뭄이 심해지거나 물이 오염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만약 이런 회사가 많아진다면 은행 입장에서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은행이 기업의 ESG 역량을 고려하는 것이 안정적인 자금 회수로 이어질 수 있다.

Q. ESG에 집중하다 수익성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 사실 은행 입장에서는 어떤 회사든 파산 위험이 있다. 100% 리스크가 없는 회사는 없다. 기업 재무 상태와 함께 ESG 역량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그 회사가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지를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전기차 회사는 재무 성과와 수익성이 지속 가능성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수익성과 친환경이 교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깨끗한 공기, 물 그리고 자연 재해로부터의 보호 등이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기업과 사회가 생태계에 의지하는 상품이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이런 지구 생태계 상품·서비스에 전 세계 GDP 절반에 달하는 44조달러가 달려 있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자연이 망가지면 이 44조달러가 사라진다.

인터뷰 | 정경선 HGI 의장

성장 잠재력 크고 리스크는 적은 ‘ESG 투자’

정경선 HGI 의장은 2012년 비영리단체인 ‘루트임팩트’를, 2014년에는 임팩트투자사 ‘HGI’를 설립했다. 현재 HGI는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소셜벤처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Q.‘ESG가 돈이다’라는 말이 회자된다.

A 맞는 말이다. ‘ESG가 돈이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ESG에 속하는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사업, 보다 저렴한 의료 보건, 포용적 금융 등의 산업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ESG에 적극적으로 신경 쓰지 않을 경우에 정부 규제나 고객들의 외면, 투자자 회피 등 각종 리스크로 인해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투자 시 성장 잠재력은 크고, 리스크가 적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ESG = 돈’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Q.투자할 때 사회·환경적 성과를 추구한다는 발상이 다소 낯설다.

A ESG 투자는 재무·경제적 성과와 별개로 사회·환경적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환경적 성과가 장기적인 재무·경제적 성과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 가깝다. 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기업이 사업하며 발생시킨 사회·환경적 영향에 대해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기후변화가 나타나고 소비자 인식이 바뀌면서 사회·환경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 회사는 도태될 수 밖에 없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Q.국내 기업의 ESG 경영이 개선해야 할 점은.

A ESG는 기업 경영에 추가적으로 해야 하는 활동이 아니라 주력 사업에 긴밀하게 녹여내야 하는 요소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이 어떤 사회·환경적 영향을 미치고 관련된 거시 트렌드는 어떤 것이 있으며, 기후변화 등 다양한 미래 상황에서 어떤 영향을 받게될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또 그 결과를 사업 방향성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ESG를 사회 공헌 정도로 인식하고 전략부서나 사업부서가 아닌 별도 부서에 위임해 보고서를 내는 수준에서 구색 맞추기 정도로 보는 경향이 많다. 다행인 것은 최근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민감한 젊은 경영인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문제점이 점차 해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설문에 도움주신 분들(가나다순, 총 20명) 강봉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 강지호 한국거래소 ESG팀장, 고숭철 NH-Amundi 자산운용 주식운용부문 총괄, 김동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 김상호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김준섭 KB증권 애널리스트,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ESG그룹 대표변호사,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신지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오준환 사회적가치연구원 v-lab 실장,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본부장, 은기환 한화자산운용 펀드매니저, 이동석 삼정KPMG ESG전담팀 리더, 이선경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 이옥수 딜로이트안진 리스크자문본부 이사, 이호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이희수 미래에셋대우 IR매니저,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류지민·반진욱·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1호 (2021.01.06~2021.0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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