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야·생·화] 잘 자란 이정후, 열 프로 선수 안 부럽다

배영은 2021. 6. 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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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연합뉴스]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홍원기 감독은 외야수 이정후(23)가 슬럼프를 겪어도 "걱정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실력도, 자세도 흠잡을 데 없는 선수다. 조용히 기다리면 알아서 회복한다"고 단언했다. 오랜 신뢰가 뒷받침된 확신이다.

이정후는 야구를 잘한다. 데뷔 5년 차에 벌써 세 번째 태극마크를 달고 도쿄올림픽에 간다. 그의 아버지는 '바람의 아들'로 유명한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다. 남다른 유전자를 타고났다. 스스로 그 재능을 살리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다.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리그 최고 외야수 중 한 명이 됐다.

실력만 대단한 게 아니다. 이정후는 내면도 완벽한 '프로'다. 그라운드 안에서처럼 밖에서도 시야가 넓다. 자신감이 넘치지만 자만하지 않는다.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거침없는 소신 발언도 한다. 올림픽 최종 엔트리 발표 후 인터뷰에서 그랬다.

이정후는 태극마크의 부담감을 묻자 "국가대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올림픽에서 잘하면, 야구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새롭게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어린 친구들이 나를 보며 야구를 시작하겠다는 꿈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부담감보다는 잘하고 싶은 의욕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국은 야구가 마지막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다. 아시아 최강국 일본 최정예 대표팀을 두 차례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전까지 침체기에 빠져 있던 한국 야구는 올림픽 금메달을 기점으로 양적·질적 성장을 이뤘다. 최근 KBO리그에서 활약하는 젊은 선수들은 대부분 그 시기를 전후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래서 '베이징 키즈'라 불린다.

13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이정후는 베이징 키즈의 선두주자다. 올림픽 야구의 의미와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요즘 어린 친구들은 야구보다 e-스포츠를 더 좋아한다더라. 최근 야구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는데,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인기를) 되살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야구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모든 선수가 저런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감탄했다.

이정후는 악성 댓글(악플)에 당당하게 일침도 놓았다. 최근 구단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중요할 때 못 치거나 실수를 하면, 누구보다 선수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아쉬워한다. 일부 팬은 욕설 메시지를 통해 자극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무분별한 악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정후는 또 "논리적인 비판을 보면 나도 감사한 마음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야구선수에게도 야구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일 뿐이다. 과도한 욕설은 해롭기만 하니 자제해 달라"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의 실수 하나에 도가 지나친 비난을 퍼붓는 '악플러'들에게 앞장서 쓴소리를 한 거다.

이정후라서 할 수 있는 얘기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선수가 됐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잘할' 자신이 있는 선수. 그는 과거 한 야구팬이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하며 악담을 하자 이런 댓글로 응수했다. "혹시 '이종범의 아들'로 태어나서 야구를 해본 적이 있나. 난 그 부담감도 극복하고, 인내하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이 코치는 나중에 그 댓글을 보고 "정후가 이제 진짜 어른이 됐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스물셋의 프로 5년 차 선수 이정후는 이 중요한 명제를 깨달은 지 오래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의 명성과 영향력을 '야구를 위해' 쓰겠다"고 다짐할 줄 아는, 값진 선수다. 그러면서 올바른 표현으로 '할 말은 하는' 지혜까지 갖췄다.

이정후는 모두의 기대보다 더 그릇이 큰 선수로 자랐다. '바람의 아들'은 야구만 잘한 게 아니라 아들도 참 잘 키웠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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