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누렇게 바래고 찢어진 책‧‧‧그 안에 담긴 추억까지 되돌려요

한은정 2021. 4. 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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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책수선'을 운영하는 재영을 만나 책 수선가의 입장에서 책을 보는 방법을 경험하고, 책 수선 과정을 체험해 본 장채원(왼쪽)‧임선민 학생기자가 프레스 기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어렸을 때 즐겨본 동화책, 친구에게 선물 받은 소설책, 부모님이 오래 보관한 전공 서적, 어렵게 구한 좋아하는 아이돌 화보집 등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추억이 가득한 책이 있습니다. 그런 책이 망가졌을 때, 감쪽같이 고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임선민‧장채원 학생기자가 추억이 담긴 책을 들고 ‘재영책수선’을 운영하는 책 수선가 재영을 만났습니다.

종이의 숨을 죽이고 온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종이나 책을 눌러주는 프레스 기계.
재영책수선 작업실에서 책을 수선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과 수선 중에 나온 흔적들을 살펴봤다.

“책 수선은 말 그대로 망가진 책을 다시 튼튼하게 고치는 일이에요. 책뿐 아니라 지도‧포스터 등 종이 수선도 하고, 책도 만들고 종이에 관련된 모든 작업을 합니다.” 재영은 책 수선가의 입장에서 책을 보는 방법을 같이 경험하며 책 수선에 대해 알아보자고 제안했죠. 이날 두 학생기자는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책 중에서 망가진 책 두 권을 들고 왔습니다. 평소 책을 의뢰받으면 먼저 검토하고 진단서를 작성하는데 그 진단 과정이 중요하다고 얘기했죠.

재영책수선의 재영(가운데)이 소중 학생기자단이 가져온 책을 함께 살펴보며 왜 망가졌고 어떻게 고칠지 진단하고 있다.

우선 임선민 학생기자가 즐겨봤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팝업북을 살펴봤습니다. 재영은 의뢰가 들어오면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작업을 3~4번 반복하며 꼼꼼히 확인한다고 말했죠. “일부 페이지가 뜯겨졌고, 헐거워졌어요.”(선민) “팝업북은 여러 종이가 엮여 두께를 이겨내지 못하고 더 쉽게 파손돼요. 여기 다 떨어진 부분을 만져보면 거칠거칠 하거든요. 접착제가 경화됐다고 표현하는데 접착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접착력을 잃고 딱딱하게 굳은 거예요. 이걸 어떻게 수선하면 좋을까요?” 임선민 학생기자가 “실로 엮거나 본드를 다시 붙이거나 할 거 같아요”라고 대답했어요. “맞아요. 기술이 조금 다른 거지 사실 실로 엮고 접착제로 다시 붙이는 게 전부예요.”

책등(책 제목이 쓰인 옆면)의 윗부분 손상도 눈에 띄었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을 때 사람들이 윗부분에 손가락을 걸고 빼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들어오는 딱딱한 하드커버 양장본을 보면 대부분 위만 똑 떨어진 경우가 많죠.” “이건 엄마가 옛날에 샀던 명랑 소설이에요. 변색됐고 얼룩도 많죠.”(선민) 곰팡이와 침수 흔적, 테이프를 붙인 자국과 얼룩이 있고 전체적으로 색이 바래 있었어요. 장채원 학생기자가 “왜 색깔이 변하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자외선 영향이 가장 커요. 보통 책 윗머리가 제일 심한데 책장에 꽂혀있으면 윗부분 노출이 크기 때문이죠. 곰팡이는 습기 때문이고요. 습도 높은 장마철엔 종이가 울기도 하죠. 책을 잘 간수하려면 직사광선‧습도 등을 조심하는 게 좋아요. 저는 작업실을 구할 때 이중창이 있거나 햇빛이 바로 들어오지 않는 곳을 고르죠.”

배면이 낡은 악보집을 전동 제단기에 넣고 단면을 잘라냈더니 순식간에 배면이 깨끗해졌다.

“엄마가 썼던 ‘소나티네’ 악보집을 제가 쓰고 있는데 많이 낡았어요.”(채원) 제본 자체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커버의 코팅지가 벗겨졌고 전체적으로 색이 바래 있었죠. “이런 악보 의뢰가 종종 들어오는데 보통 보면대 위에 올려서 쫙 펼쳐서 보기 때문에 파손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에요.” 책이 열리는 부분 배면이 특히 더러웠는데요. 장채원 학생기자가 “이걸 깨끗하게 만들 수도 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손으로 직접 클리닝 하면 좀 더 꼼꼼하게 작업할 수 있고, 원본의 크기 변화가 없는 대신 시간이 오래 걸려요. 사포질도 하고 약품 처리도 해야 되고 좀 더 번거로워 비용도 비싸지죠. 다음은 기계로 잘라내는 간단한 방법인데 조금 줄어드는 단점이 있어요.” 1mm 정도 줄어드는 게 괜찮다면 기계로 재단해 배면을 깨끗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에 장채원 학생기자가 괜찮다고 얘기했죠. 전동 제단기에 넣고 단면을 자르고 나니 순식간에 배면이 깨끗해졌어요.

마지막 책은 장채원 학생기자가 가지고 온 아버지의 전공 서적, 러시아 문법책이었어요. 헤드밴드(머리띠)와 가름끈(특정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끼워두는 끈)을 갖춘 보편적인 하드커버 양장본이었죠. 헤드밴드와 뒷 페이지가 파손됐지만 제본은 아직 튼튼했죠. “여기에 쓰인 실 제본은 내구성이 가장 좋은 방식이에요. 제작 단가도 제일 비싸죠. 요즘은 떡 제본이라고 해서 본드를 발라 고정하는 무선 제본을 많이 하죠.” 장채원 학생기자의 허락을 받고 책을 살짝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칼을 이용해 헤드밴드를 뜯어 양장커버를 벗겨냈죠. “너무 재밌네요. 책등 안쪽을 보면 옛날 책들은 이면지를 썼어요. 근처 공장에 남아도는 종이나 신문을 썼는데, 간혹 러브레터도 나와요. 지금 여기도 이면지가 보이죠. 책을 일부러 망가뜨려 본 적은 거의 없잖아요. 이런 부분을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요.”

장채원 학생기자가 가져온 아버지의 전공서적 커버를 분리해 책등 부분에 있는 거즈면과 낡은 면지를 확인하고 있다.

커버랑 본문을 분리하자 책등 부분에 구멍이 숭숭 있는 거즈면이 보였습니다. “거즈면이 있는 부분과 책 표지를 열고 맨 처음 만나는 면지 부분으로 책이 튼튼하게 지탱되는 건데요. 면지가 삭아서 부서지기 쉬워진 거죠. 거즈 부분도 실이 삭으면서 약해져 그냥 뚝 떨어지죠. 그래서 거즈와 면지 부분을 교체하고 다시 합체하면 또 새 책처럼 튼튼해질 거예요.” 해체한 김에 직접 책을 보수하는 경험을 해보기로 했어요. 책 수선 과정은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책등 클리닝 작업만 함께했죠. 먼저 책이 잘 고정될 수 있게 프레스에 넣습니다. “책을 지탱해주는 접착제를 지우면 종이가 떨어지겠죠. 그래서 프레스로 최대한 꽉 조여줘야 해요.”

장채원 학생기자
소중 학생기자단이 스페튤라로 접착제를 발라주고 긁어내주는 책등 클리닝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책의 헤드밴드 머리띠에서 나온 종이들(아래 사진). 재영은 수선 중에 나온 책의 흔적들을 보관한다고 말했다.
임선민 학생기자

이후 책등 부분의 종이를 뜯을 수 있을 정도만 손으로 뜯어내 스페튤라로 접착제를 발라줍니다. “넓은 면으로 접착제를 떠서 위에 얹어 빵에 생크림 바르듯이 바르면 돼요. 접착제는 완전히 굳기 전까지는 다른 접착제를 용해시키는 기능이 있어서 책등에 굳어버린 접착제를 녹여줄 거예요.” 접착제를 바르고 조금 기다린 후 한 명은 프레스를 잡고 한 명은 스페튤라로 긁어냈습니다. 종이 펄프가 녹은 것들이 하얗게 나오며 처음보다 많이 헐거워졌죠.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거즈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말린 다음 사포질을 하면 좀 더 맨질맨질해져요. 좀 더 깨끗하게 정돈해 준다는 느낌으로 작업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최대한 얇게 접착제를 발라줬어요. 책이 많이 망가진 상태면 이 과정을 두 번 정도 반복하는데 이 책은 한 번만 하면 충분하다고 했죠. 다 마르면 종이랑 거즈를 새로 덧대주는데, 건조 과정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여기까지 해보기로 했죠. “나머지 작업이 끝나면 커버와 가름끈을 부착해 보내드릴게요.” “아빠 생신이 다가오는데 선물로 드릴래요.”(채연)

재영책수선의 재영

채원 책 수선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다른 전공을 했다가 대학원을 미국으로 갔어요. 북아트랑 페이퍼메이킹을 전공하게 됐는데 당시 지도교수님이 책 수선 일을 해보면 책을 만드는 기술을 빨리 익힐 수 있다고 추천하셨죠. 그때부터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 보존 연구실에 취직해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선민 책 수선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나요.
책이 고쳐지기 전의 상태에 더 흥미를 많이 느끼는 편이거든요. 물론 고쳐진 후 깨끗해지고 의뢰자분이 기뻐하면 뿌듯하기도 한데 기본적으로 망가진 책을 좋아하니까 그거를 많이 볼 수 있고 마음껏 해체해볼 수 있는 게 좋아요.

책등의 표면이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음식 레시피책이 재영의 손을 거쳐 말끔하게 고쳐졌다. ⓒ재영책수선
책등의 표면이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음식 레시피책이 재영의 손을 거쳐 말끔하게 고쳐졌다. ⓒ재영책수선

채원 수선할 수 없는 책도 있나요.
보통은 전후 사진만 보시니까 좋은 의미로 마법 같이 새 책처럼 됐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게 가능한 책이 있고 불가능한 책도 있어요. 책마다 그 책에 맞는 최대한의 처치법이 있거든요. 부서지기 일보 직전의 종이를 새 종이처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예산이 높아지고, 의뢰자분이 생각한 예산이 그 정도가 아니라면 그에 맞춰서 작업할 때도 있어요.

선민 책을 험하게 보는 것을 싫어하시나요.
아주 좋아하고 저도 밑줄 긋고 페이지를 접는 등 책을 험하게 보는 편이에요. 어린 친구들한테는 독서 경험을 좀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권유하곤 하죠. 종종 어릴 때 보던 책을 들고 오시는데 거기에 적힌 낙서를 보고 어릴 때 기억을 하시는 거예요. 그 낙서가 남아 있기에 몇십 년이 지나서도 그 책을 기억하고 내가 이때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봤지 이러면서 좋아하시죠.

채원 e북이 나오고 종이책의 입지가 많이 약해진 요즘, 이 직업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전히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고 금방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처음 작업실을 열 때는 옷 수선, 구두 수선 일상에서 많이 보듯 책도 수선해서 계속 보관할 수 있구나 그 정도 인식만 생겨도 좋을 것 같았죠. 망가진 책 의뢰를 받으면서 느낀 건요. 사실 책 한 권이 그냥 망가졌을 뿐인데 의뢰자분한테는 그 안에 있던 추억이나 기억들이 같이 어수선해진 느낌이었나 봐요. 그래서 정돈된 책을 보고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 옛날 친구가 돌아온 느낌을 받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나는 그냥 책을 고친다고만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기억을 보듬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구나 뒤늦게 깨달았어요.

■ 재영이 알려주는 간단한 책 수선 팁

재영책수선의 재영

테이프보다는 딱풀을 쓰세요.
테이프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책을 상하게 만들어요. 떼고 나면 노란 자국도 남죠. 이걸 산화됐다고 하는데 종이가 산성이 되면서 바스라지죠. 물론 다 상관없고 빨리 고쳐서 보고 싶다면 사용해도 되지만 소중한 책, 오래 보관하고 싶은 책엔 안 붙이는 걸 추천해요. 스테이플러로 찍는 경우, 나중에 빨갛게 녹슬면서 종이도 같이 녹슬죠. 그냥 딱풀을 이용하는 게 좋고, 여건이 된다면 보수용 테이프를 구입해서 사용하세요.

물에 젖었다면 냉동실에 넣으세요.
헤어 드라이기로 말리면 종이가 우글우글 해질 수 있어요. 물에 젖자마자 물기를 대충 제거한 뒤 냉동실에 얼리세요. 수분 입자가 수축하고 팽창하면 과학적인 원리를 통해 책이 조금 펴집니다. 물론 종이 재질과 시간이 지난 정도에 따라 불가능한 경우도 있어요.

곰팡이는 공공도서관 소독 기계로 관리하세요.
책에서 곰팡이를 발견했다면 이미 퍼질 대로 퍼진 거예요. 간단하게 티슈로 닦는 정도로 완벽하게 처리할 수 없죠. 공공도서관에 있는 소독 기계는 사용료가 보통 무료거나 저렴하니까 그걸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이대원(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임선민(서울 명원초 5)·장채원(경기도 이매초 6) 학생기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제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취재를 한다고 해서 설렜죠. 직접 책의 한 부분을 수선해 봤는데, 일부만 수선하는 데도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리더라고요. 책 수선가가 되려면 손재주와 끈기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영님께선 책에 밑줄도 긋고, 생각도 적어보는 것도 책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일 수 있다고 하셨죠. 그게 바로 책에 추억과 기억을 더하는 것이라고요. 색다른 직업에 대해 알게 되고, 책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임선민(서울 명원초 5) 학생기자

책을 어떻게 수선하는지가 가장 궁금했어요. 옷 수선, 신발 수선은 들어봤지만 책 수선이라는 말은 못 들어 봤거든요. 책 수선을 체험해보니,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많은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수선을 의뢰하는 사람들의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책을 소중히 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는 점이 기억에 남아요. 여러분도 의미 있는 책을 수선하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으로 간직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채원(경기도 이매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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