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100%"라더니 짜고쳤다? 코린이 울리는 코인 리딩방

윤상언 2021. 4.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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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가인 5만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둔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전광판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돼고 있다. 뉴스1

중소기업 회사원 A씨(30)는 최근 암호화폐 투자를 하다 손실을 봤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 매수·매도 시점을 알려주는 '리딩방'을 믿은 게 낭패였다. 운영자들이 알트코인 종목을 추천해 호기심에 매수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몇 시간만에 50만원을 잃었다.

A씨가 해당 코인을 추천해준 운영자들에게 항의했지만, 이들은 “매수와 매도는 개인의 선택”이라며 발을 뺐다. A씨는“손실은 크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암호화폐 광풍이 불면서 특정 코인을 정해 주식처럼 매수ㆍ매도 가격과 시점을 정해주는 ‘코인 리딩방’이 생겨나고 있다. '주식 리딩방'이 '코인 리딩방'으로 넘어오는 모양새다. 고액의 가입비를 요구하는 사례나 시세 조종으로 의심되는 불분명한 정보들이 공유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나 감독 기관도 정해지지 않은 탓에 투자자가 피해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료 채팅방서 유료 가입 유도…손실 '나 몰라라'

28일 오후 한 비트코인 리딩방에서 암호화폐 투자 관련 홍보글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스크린샷 캡쳐

코인 리딩방 업체들은 주로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 SNS 단체 채팅방을 통해서 고객을 모집한다. ‘하루 100% 수익을 보장한다’라거나 ‘불법일 시 전액 환불’이라는 문구로 홍보가 이뤄진다. 실제로 일부 대형 포털사이트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SNS에도 ‘수익이 인증된 리딩방’이라는 홍보 글과 함께 채팅방 주소가 게재돼있다.

리딩방 운영자는 주기적으로 추천하는 암호화폐에 관한 정보를 올리거나 특정 암호화폐를 지정해 매수ㆍ매도 가격을 올린다. 채팅방 참여자들은 해당 암호화폐가 특정 가격대에 다다랐을 때 단체로 매수하거나 매도한다. 투자 전문가를 자처한 운영자들이 특정 암호화폐에 관한 분석을 올리기도 한다. 거래소의 매매 차트를 올린 뒤 가격의 흐름을 예상해 매수ㆍ매도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일부 유료 회원방에서는 시세 조작 행위도 빈번히 이뤄진다. 무료 리딩방에 추천 코인을 알리기 전 일부 유료회원에게 해당 종목을 먼저 알려 매수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유료 회원이 시세차익을 노리고 저가에 해당 암호화폐를 매입한 뒤 무료 회원 등의 매수세가 유입되서 가격이 오르면 팔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업체들은 무료 리딩방 운용자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수익이 보장되는 종목을 자세히 알려준다”며 별도의 유료 회원제로 운영되는 리딩방 가입을 유도한다.

문제는 운영자들이 추천한 코인에서 손실이 발생했을 때다. 운영자들은 “시장 상황이 암호화폐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라거나 “조금 더 기다리면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피해자들의 항의에는 “매수와 매도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손실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받을 수 없다.


법 규정·감독기관 전무...자구책 찾는 거래소

암호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5만 달러를 돌파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전광판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코인 리딩방'으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을 규제할 법적 근거와 감독 기관은 찾아볼 수 없다. 암호화폐는 주식 투자와 달리 종목 추천 등을 대가로 돈을 받아도 금융위원회에 유사투자자문업으로 신고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리딩방을 운영하는 업체의 규모조차 파악이 힘든 상황이다.

허위 정보를 흘려 시세를 조작해도 처벌할 근거가 부족하다. 대부분 암호화폐는 주식과 달리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서희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이른바 ‘알트코인’은 자본시장법 적용대상이 아니다”라며 “시세조작 등의 행위는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겠지만, 소비자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거래소가 자구책을 만들고 있다.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자체적인 신고 창구를 만드는 것이다.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는 지난 27일 전담 신고 통로를 개설했다. 유튜브 등의 방송이나 SNS를 통해 선행매매와 시세조작을 하는 이용자를 가려내고 이들의 거래소 이용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업비트 관계자는 “특정 암호화폐의 매수를 부추겨 부당 이득을 취한다는 제보가 많아지면서 별도의 신고 통로를 마련했다”며 “부당행위를 하는 이용자가 확인될 경우 이용제한 조치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투자자 피해 줄이기 위한 제도 정비해야”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의 산업이 급성장한 만큼, 빠른 시일 안에 투자자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 관련 시세 조종 등을 미리 적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투자자들의 피해 신고와 처벌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서희 변호사는 “암호화폐 시장이 단시간에 빠르게 성장한 탓에 관련 제도가 미비한 것은 사실”이라며 “암호화폐 리딩방 등의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입법과 동시에 관련 산업이 과도하게 매몰되지 않도록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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