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만 정답은 아니다, 북한 출신 여성 복서가 준 깨달음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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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파이터> 포스터 |
| ⓒ 인디스토리 |
어디서 이런 '괴물 신인'을 찾은 걸까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었다던 14년 차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훑으며 생각에 잠겼다. 날카로운 눈매, 앙다문 입술,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단단하다. 이를 방증하듯 임성미 배우는 <파이터>를 통해 2020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거머쥐며 단숨에 날아올랐다.
윤재호 감독은 전작 <뷰티풀 데이즈>를 통해 탈북 여성과 중국에서 온 아들의 관계를 다룬 바 있다. 이번에도 북한 출신 여성 복싱 선수란 낯선 소재를 끌어왔다. 분단으로 망가져버 린 가족의 모습은 여러모로 <뷰티풀 데이즈>와 닮았으면서도 좀 더 확장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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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파이터> 스틸 |
| ⓒ 인디스토리 |
군인 출신이었던 진아(임성미)는 다섯 달 전 홀로 한국에 왔다. 모든 면에서 아직 서툴지만 방을 얻어 새 출발 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무엇보다 중국에 발이 묶인 아버지를 데려오기 위해 돈 벌기에 바쁘다. 식당 일로는 성에 안 차 근처 복싱장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코치 태수(백서빈)를 만나게 된다. 태수는 과거 관장(오광록)이 방황했던 자신을 붙잡아 준 것처럼 진아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그동안의 냉대와 차별 때문이었을까. 진아는 날 선 경계심을 한껏 세우지만 그 속에서 아이 같은 순수함을 포착한 태수는 조금씩 그를 향한 마음을 키워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복싱에 매료된 진아는 청소 일이 끝나고 혼자 복싱을 하다 관장의 눈에 띈다. 복싱에 소질이 있음을 알아챈 관장은 진아를 체육관 에이스의 스파링 상대로 링 위에 오르게 한다. 하지만 제대로 복싱을 배운 적 없는 진아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가 나가떨어지고, 분을 삭이지 못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복싱은 상대와의 싸움이 아닌 나와의 싸움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링의 좁은 공간에서도 버티지 못한다면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리란 것을 경험으로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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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파이터> 스틸 |
| ⓒ 인디스토리 |
영화는 프로 복서로 성공하는 게 목적이 아닌,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오히려 링 위가 차라리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링 아래에는 파고드는 한기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고난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 속 복싱은 각박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빗댄 서글픈 은유다. 그래서 흔히 스포츠 영화에서 기대하는 박진감 넘치는 인생역전, 폭발적인 카타르시스 순간에 분량을 할애하지 않는다. 잔혹할 만큼, 숱한 경기에 이기지 못하는 진아처럼 우리의 삶도 승리만이 정답은 아니란 말이다.
진아는 가까스로 한국에 왔지만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워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스텝이 꼬여 넘어지면 어떠랴, 그는 대수롭지 않게 인생을 향해 부딪히기 위해 달려간다. 어제보다 오늘, 분명 앞으로 나아간 작은 족적만 있으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탈북인이라는 차별과 냉대에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까지 더해야 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힘들지만, 진아는 코치와 관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동력을 얻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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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파이터> 스틸 |
| ⓒ 인디스토리 |
영화 오프닝에 쓰인 시인 '토마스 머튼'의 글귀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운명이다. 혼자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삶의 의미는 다른 이들과 함께할 때 찾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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