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비빔밥

화합과 공존을 상징하는 비빔밥은 정치권 단골 메뉴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막바지에 이명박·박근혜·원희룡·홍준표 후보는 비빔밥 오찬회동을 가졌다.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친이-친박으로 당이 극심하게 나뉘자 강재섭 당 대표가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2016년 20대 총선 5일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긴급 선거대책위원회를 열고 회의 석상에서 비빔밥을 먹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공천과정에서 드러난 친박·비박 계파 갈등의 부끄러움을 반성하고 화합된 모습으로 국민에게 투표를 호소하는 의미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여야 원내대표 청와대 오찬회동 메뉴로 비빔밥을 내놓았다. 2018년에는 각 당 상징색으로 만든 오색 비빔밥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바른미래당의 상징인 민트색 나물을 준비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장 최근 있었던 지난달 26일 5당 대표 회동 메뉴 역시 비빔밥이었다.
최연소 보수당 대표가 된 이준석 대표는 ‘비빔밥론’을 취임 첫 메시지로 제시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존입니다. 비빔밥이 가장 먹음직스러운 상태는 때로는 10가지가 넘는 고명이 각각의 먹는 느낌과 맛, 색채를 유지하면서 밥 위에 얹혀있을 때입니다. 비빔밥 재료를 모두 갈아서 먹는 느낌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정치사에 새로울 것 없는 이 비빔밥론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최근 여의도에서 당내 비빔밥 정신을 외치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2위에 그친 나경원 후보는 용광로 정당을 강조했다. 모든 것을 녹이는 용광로는 비빔밥 같은 공존보다는 융합과 섞임에 방점이 찍혀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출발부터 ‘원팀’을 강조해왔다. 앞서 당 대표가 된 송영길 대표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원팀으로 대선 승리하겠다”고 외쳤다. 청년 정치인이 야당보다 훨씬 더 많은 여당에서 이렇다 할 눈에 띄는 인물도, 발언도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런 당의 기조와 무관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민주당 초선의원 68명과의 만남에서도 “내부적으로 단합하고 외연을 확장할 때 지지가 만들어진다”며 원팀 정신을 재차 강조했다.
재료를 맛깔나게 하는 고추장이 되겠다는 30대 당수 이준석. 과연 그가 외치는 비빔밥론은 여의도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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