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미샤, 적자에 휘청이는 3300원 신화

'미샤' 화장품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 에이블씨엔씨가 올해 3분기 132억 원(연결기준)의 영업손실을 내며 전년 동기 대비 적자로 전환했다. 마찬가지로 적자였던 1,2분기의 부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매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12.1% 감소한 731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한때 6만 원을 호가하던 주가는 현재 1만 2400 원이 됐다. 한때 '로드숍 화장품' 시장의 포문을 열며 비상했던 미샤가 빛을 잃고 추락하는 모양새다.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반전을 노리고 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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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미샤는 2005년 자사 흥행 비결을 설명한 책을 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성장세가 빨랐다는 의미다.)

화장품 유통시장 변혁 일으킨 주역... 3300원 파격가로 판 뒤바꿔

미샤의 시작은 2000년, '뷰티넷'이었다. 미샤 브랜드 운영사 에이블씨앤씨를 만든 이는 서영필 전 회장으로, 섬유유연제로 유명한 피죤의 연구원 출신이다. 생활화학제품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그는 화장품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가 보기엔 화장품 시장은 지나친 마케팅비와 가격 책정이 불투명한 유통 구조 때문에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시장이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틈새를 노리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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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 브랜드를 만든 서영필 에이블씨앤씨 전 회장. 사진은 2004년 동아일보 인터뷰 사진)

그는 온라인 쇼핑몰로 사업을 시작했다. 온라인 업체 뷰티넷은 '3300 원' 화장품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정책으로 화제를 모았다. 온라인쇼핑몰로 이름을 알린 뷰티넷은 2002년 미샤로 오프라인에 등장한다. 단독 브랜드숍 형태였다. 여러 브랜드를 한 매장에서 판매하는 종합 판매가 일반적이었던 유통환경에서 미샤의 등장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화장품 거품 가격을 새로운 유통구조를 통해 깨겠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브랜드 화장품은 고가라는 상식을 깬 미샤에 젊은 층이 폭발적으로 몰렸다. 출범 2년 만인 2004년 200개 매장을 출점했고, 그해 매출은 1100억 원을 돌파했다. 단숨에 국내 화장품 업계 4위 업체에 등극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이듬해엔 코스닥 상장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상장 당시 공모주 청약의 경쟁률은 722.78 대 1이었고, 1조 원이 넘는 돈이 몰렸다. 인기는 국내에 저가 화장품 브랜드 열풍, 즉 '로드숍 붐'을 가져왔다. 미샤를 필두로 더페이스샵, 잇츠스킨, 네이처리퍼블릭, 이니스프리 등 많은 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탄생했고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미샤의 인기 요인이었던 저렴한 가격 전략을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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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샤 매장)

이는 한편으로 미샤만의 장점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샤의 첫 황금기는 이내 저물기 시작했다. 국내 저가 화장품 시장의 경쟁이 심화된 탓에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미샤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며 해외 시장에 공격적인 출점 전략을 펼쳤는데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한 것도 원인이었다. 2006년 127억 원, 2007년에는 16억 원의 적자를 봤다. 300명이 채 되지 않던 회사에서 50명을 내보내기도 했다. '미샤가 망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반전을 쓴 건 2007년 일명 '빨간 BB'로 불린 제품이다. 후속 상품 'M 시그너처 리얼 컴플릿 BB크림'도 출시 8개월 만에 100만 개 판매 기록을 달성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저가 경쟁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실적을 이끌 만한 히트 상품의 존재는 필수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미샤엔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으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작업이 과제로 던져졌다.   

"비교 품평을 제안합니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실적 상승... 그러나 거기까지

미샤는 결국 중저가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 시도를 감행한다. 김혜수, 이병헌 등 톱스타를 모델로 기용해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로 전환을 시도했다. 광고 전략 보다 더 화제를 모았던 것은 고가 화장품과의 직접적인 비교광고였다. 시장에선 공격적이라고 여길 정도로 과감한 마케팅을 펼쳤다.

SK-II의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를 겨냥한 '타임 레볼루션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를 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SK-II 제품의 공병을 가져오면 자사 제품을 증정하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펼쳤다. '갈색병'으로 유명한 에스티로더의 '나이트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를 겨냥해 '나이트 리페어 사이언스 액티베이터 엠플'을 출시하고 비교 품평회를 열기도 했다. 별명도 '보라병'으로 붙이며 정면에 도전장을 내밀어 화제가 됐다.

출처: 미샤
(미샤가 자사 제품으로 해외 화장품 회사들과 비교 품평을 제안한 광고는 집행 당시 업계의 가장 큰 이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브랜드를 겨냥한 도발적인 마케팅으로 SK-II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등 구설에 오르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마케팅 전략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8년부터 안정기에 접어들어 2012년까지 업계 1위를 수성했다. 매출도 2011년 3303억 원, 2012년에는 4523억 원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빨간 BB', '보라병' 이후 히트 상품과 눈에 띄는 마케팅이 좀처럼 등장하지 못했다. 반짝 올랐던 매출은 2013년 4424억 원, 2014년 4384억 원, 2015년 4079억 원으로 떨어졌다. 2016년에는 434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실적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이듬해인 2017년 3733억 원으로 다시 감소했다. 고가 브랜드의 미투 상품 정도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됐다. 2013년엔 더페이스샵에 브랜드숍 1위 자리를 내줬다. 해외시장을 돌파구로 노렸으나 홍콩 쪽 판매 대행사가 자금난에 빠지는 등 불운이 겹치면서 실적 하락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해외 시장선 숨통... 하지만 국내 시장 침체 장기화에 고민 깊어져

출처: 미샤
(올해 4월 미샤가 발표한 새로운 BI. 거추장스러움을 배제하고 단순하고 과감하게 아름다움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서 전 회장은 에이블씨엔씨 설립 17년 만인 2017년,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의 자회사 리프앤바인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서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29.3%의 대부분인 25.53%를 매각한 것. 새 주인을 맞은 미샤는 4월에는 12년 만에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선보이면서 사업 확대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업계 측에 따르면, 부진했던 해외 시장 진출에도 빛이 드는 듯하다. 중국과 일본 현지에서 색조 화장품 ‘매직쿠션’과 ‘비비크림’이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다시 매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업계는 이미 포화상태인데다가 저가 화장품 브랜드 모두 동반 실적 하락을 거듭하고 있어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다. 국내 업계 판도가 올리브영, 랄라블라 등 H&B 스토어 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고민을 깊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미샤는 3300원이라는 상징적인 가격에 맞춰 마스크팩 등을 다시 출시하는 등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시장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다. 반전 카드가 필요한 시점, 화장품 시장을 선도할 만한 새로운 히트 상품의 등장이 간절해지는 상황이다. 

인터비즈 최예지 임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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