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엄마의 죽음.. 열아홉 소녀가 숨기려 한 이유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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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아홉"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 리틀빅픽처스 |
우경희 감독의 전작인 단편영화 <증언>을 퍽 인상 깊게 봤었다. 해당 작품은 직장 내 성추행에 맞서는 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비정규직으로 차별받는 여성노동자 간의 이중의 관계성을 교차시키며 이해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세계관과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런 감독의 첫 장편영화는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 하에서 싸이월드 미니 홈피와 mp3 플레이어, 폴더 폰이라는 소재로 빚어내, Lo-fi 사운드로 장식한 열아홉 소녀와 소년의 "절대" 평범하지 않은 성장 이야기다.
(근래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의 창작 경향이기도 한)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고하며 자전적 경험과 세대적 체험을 녹여내는 영화로서 <열아홉>은 감독 본인의 해당 시기를 배경으로 맞춰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이런 일련의 시도들은 자칫하면 일종의 노스텔지어에 빠져들 위험이 다분하다. 누구나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거나, 정반대로 그것을 극단화시켜 흥미를 끌어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 속 현실에서 상당히 극단적 상황을 설정하면서도 아직 세상과 맞서 감당하기에 버거웠던 열아홉의 기억을 또래 세대에 갇히는 체험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공감대로 풀어내는 데 일정부분 성공한 작업으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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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아홉" 포스터 영화 키워드 포스터 이미지 |
| ⓒ 리틀빅픽처스 |
열아홉 소정은 임대 아파트에서 엄마와 산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빠와는 격리되어 있지만 언제 난입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다. 그리고 엄마는 몸이 편치 않다. 이 2인가구는 기초수급과 의료지원으로 겨우 연명하는 중이다. 소정에게 병든 엄마와 임대 아파트의 좁은 공간은 그녀를 옥죄는 질곡이다. 어른이 되면 이 집을 떠나 음악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픈 게 그녀의 소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의 2008년 9월 10일,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는 피를 토한 채 죽어 있다. 소정은 엄마의 죽음이 알려지면 임대 아파트에서 쫓겨나 아빠에게 보내진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소녀는 어디 의지할 데도 마땅히 도움 받을 곳도 없다. 일단 소정은 시신을 욕조에 옮기고 아무 일 없는 척 해보려 하지만 세상일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화는 그로부터 한 달여 동안 소정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미니 홈피 일기장 써내려가듯 풀어나간다. 어떻게든 홀로서기를 해보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낯설고 부족한 열아홉에겐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그녀가 꿈꾸던 집의 상상도는 어느새 현실의 집과 기묘한 혼합의 풍경으로 변해 있다. 실제와 머릿속 풍경이 교차하며 소정의 의식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이야기를 보완해낸다. (미술 팀 꽤나 공들이느라 고생했을) 적당한 환상성이 저예산 영화임에도 그럴싸하게 구현된다. 소정은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시간을 끌어보지만 한국의 사회복지 체계는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는 구조다. 소녀는 점점 벼랑 끝에 몰린다.
여기에서 소녀는 소년을 만난다. 붕괴 위기의 가정에서 탈출을 꿈꾸지만 그 소년, 성현 또한 독립할 준비는 안 된 상태다. 성현은 미디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정신적 자유를 찾는다. 소녀와 소년은 그 정서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성현으로 인해 찰나의 위안을 얻었던 소정에게 이제 더 이상 현재 상황 그대로 지탱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도래한다. 그 위기의 결정적 순간에 소녀가 소년과 함께 동정 없는 세상에 직면할 용기를 내는 게 영화의 주제의식으로 형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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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아홉"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 리틀빅픽처스 |
<열아홉>의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줄거리만 봤을 때는 좀 긴 단편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을 법한 이야기란 생각이 얼핏 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장편의 호흡이라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다(장편의 내용을 꽉 채운 거의 중편 분량 단편이 적잖은 현실에서 장편다운 장편이란 표현은 결코 나쁜 평가가 아니다). 소정과 성현, 두 열아홉 소녀와 소년에게 극단적으로 집중되는 이야기 전개이지만 두 배우의 연기가 영화 속 캐릭터에 잘 맞는 옷처럼 입혀져 있어서 지루하거나 식상할 틈 없이 소녀와 소년의 행보를 따라가면 된다.
그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감독의 청소년기 체험이기도 할 문화 코드들이 꼼꼼하게 재현되는데 이게 은근히 그저 복고적 감성만으로 그치지 않고 극중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와 시대 배경 환기에 잘 녹아들고 있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소소한 배경으로 활용되는, 성현의 가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중산층의 붕괴나, 소정이 겪게 되는 대학진학 대신 취업으로 나갈 때 청소년 노동착취, 임대 아파트 생활에 대한 묘사 등도 군더더기 없는 쓰임새를 선보인다.
그런 장치들에 힘입어 영화는 주인공들이 그 나이 대에 응당 겪게 마련인,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나 절박했던) 극한의 감정들을 배우들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충분히 되새김질하듯 구현한다. 의도적으로 계산된 속도감은 느린 것 같지만 그 연기를 음미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연출된다.
특히 영화 속 암울한 상황에서 정말 절실히 작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 보이는 주인공 소정 역 손영주 배우의 얼굴과 눈빛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두려움에 떨 때와 원하는 것을 찾을 때에 극단적으로 다른 표정 톤을 선보인다. 차기작에서 또 다른 면모를 기대하게 만드는 배우다.
우울한 십대말의 초상을 그리지만 영화는 그저 잔혹한 청춘의 재현과 그 광경의 소비로만 자기 용건 다 한 것처럼 끝내지 않는다. 감독은 주인공들의 미래를 염려하고 후일담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썼을 게다. 소녀와 소년은 막막하고 두려운 거친 파도 앞에 내던져지겠지만, 혼자와 둘은 분명히 다르다. '답정너' 해피엔딩이 아니라 숨 쉴 찰나만은 남겨두는 결말의 여지 또한 중용의 미덕으로 볼 만하다.
| <작품정보> |
| 열아홉 Nineteen 한국|드라마|2021 2021.06.30. 개봉|86분|15세 관람가 감독 우경희 주연 손영주(소정), 정태성(성현) 출연 박희은, 최원용, 원미원, 변중희, 임호준, 이천희, 김가영, 정서인 우정출연 박강섭 제작 K'arts 배급 리틀빅픽처스 2021 제22회 전주 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상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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