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눈치보면서 우린 막 대해"..서글픈 낀 세대, 75~84년생
임원들 MZ세대는 뒤탈 날까 조심
우린들 기성세대 문화 좋겠어요?
'선수 겸 감독' 멀티 플레이어 요구
팀원 몇 안 되는데 성과 압박 심해
묵묵한 허리 역할, 인정 받았으면

“저희가 무슨 MZ세대인가요? 술자리부터 야근, 행사차출, 의전까지 실제 삶은 기성세대와 같은데. 내 정체성은 뭔가 싶어요.” (중견기업 83년생 A과장)
낀 세대. 기업부터 정치권까지 사회의 관심이 온통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쏠린 가운데 소외된 70년대 중후반~80년대 초중반 출생 세대의 왜소한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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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7~46세, 알고보면 같은 세대
사실 MZ세대의 구분은 미국식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에서 처음 쓴 용어로,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가리킨다. Z세대는 영미권 학자들이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라며 1996~2010년에 태어난 인구집단으로 구분했다.
문제는 MZ세대의 범위가 워낙 넓고 한국 현실에 들어맞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인구학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선 75년~84년생이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X세대로 묶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인 사회·경제·문화적 환경에서 자랐다. 중간에 초등학교로 명칭에 바뀌었을지언정 ‘국민학교’를 경험했고, 수능시험을 봤다. 비슷한 나이일 때 각각 IMF외환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겪었다.
조 교수는 “90년대생인 밀레니얼은 부모가 교육부터 취업, 결혼까지 아낌없이 지원해준 첫 번째 세대인 만큼 공동체보다는 본인 중심주의일 수밖에 없다”며 “단적으로 X세대는 회사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참고 체념하는 반면, 밀레니얼들은 사표를 내버린다”고 예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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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멀티 플레이어’ 요구
그래서일까.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낀 세대’들은 꾹꾹 참는 애로가 적지 않다. 업무면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플레잉코치(playing coach)’다. 선수로 뛰면서 동시에 감독도 하는, 이것저것 다 사람이 딱 본인들 얘기라는 것이다.
최근의 조직은 공공·민간을 막론하고 급변하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셀(cell·세포) 단위 조직, 애자일(agile·기민한) 조직 등 규모를 줄이는 추세다. 직위도 부장-차장-과장-대리-사원에서 탈피해, 연차가 낮든 높든 프로·매니저·책임·코치·컨설턴트 등으로 통일하는 곳이 많다. 호칭이 암시하듯 실무를 하면서 일에 책임(관리)도 지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낀 세대들은 이 비중이 거의 5대5로 육체적·심적 부담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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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같은 차장·부장들
낀 세대 안에서도 불만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40대 초중반인 70년생들은 차장~부장, 직책은 팀장 등 중간관리자급이 많다. 이들의 주된 고민은 ‘리더십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이들이 봐 온 부장은 휘하에 수십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실무는 하지 않는 관리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팀원 수가 크게 줄었다. 올해부터 팀장직을 맡은 전자기업 김모(43)부장은 “사내 리더십 교육 때 ‘팀장이 다 하면 안 된다, 팀원들이 하도록 독려하라’고 강조하던데, 고작 3명을 주고 아웃풋(성과)을 내라니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말했다.

반면 80년대생들은 ‘아예 리더의 기회가 없다’고 한숨짓는다.
유통 대기업에 다니는 차장 1년차 박모(37)씨는 “차장이 되면 좀 더 비중 있는 일을 할 줄 알았는데 대리 때 만들던 자료를 지금도 그대로 만들고 있다”며 “밑에 사람을 안 주니 계속 막내로 잡일만 하면서 리더의 경험, 성장의 기회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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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사각지대 놓인 낀 세대
‘꼰대 문화’에 대한 피로감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70년대생들은 임원급과 MZ사이에 끼어 윗사람들의 ‘옛날 스타일’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고 토로한다. 국내 5대 대기업의 모 부장(45)은 “실장이나 임원들도 MZ세대 눈치는 많이 본다. 욕을 하거나 심하게 지적을 하면 인사(HR)부서에 건의가 들어가고,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올라가 본인들의 차후 인사에 문제가 생긴다는 걸 안다”며 “결국 임원들이 여과 없이 감정을 푸는 게 우리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적 불만’은 오히려 80년대생들이 더 크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이모(38)과장은 “불과 2~3년 차이밖에 안 나는 대리, 과장 초년생들에겐 ‘MZ래’ ‘쟤들은 특이하대’하며 그렇게 조심하면서 우리한테는 막 한다”고 발끈했다. 그는 “한국에선 아직 기수·학번·나이가 중요해서 70년대생 낀세대조차 우리에겐 꼰대상사같이 군다”며 “정작 우리는 MZ후배들에게 그렇게 못 시킨다. 80년대 생이야말로 총알이 날아드는 최전선에 있는 셈”이라고 빗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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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하지만 두 낀 세대는 같은 목소리로 소외감과 박탈감을 호소한다. 한 대기업 부장은 “또래끼리 ‘20대가 일자리가 없다면, 40대는 갈 데가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며 “회사에선 가정도 있고 나이도 많고 이직이 쉽지 않으니 막 대해도 괜찮은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을, 후배들에겐 ‘똑같은 꼰대’ 취급을 받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기업의 차장도 “말이 좋아 신·구세대의 가교지, 투자도 안하고 필요할 때 편하게 써먹고 사고가 나면 탓하는 징검다리 취급”이라고 했다.

해결책은 없는 걸까. 실제 일부 기업은 낀 세대들의 소외의식을 덜고 역량과 동기를 끌어올릴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낀 세대의 강점은 한국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로 베이비부머와 밀레니얼 세대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면서도 속마음은 밀레니얼 세대 쪽에 더 가깝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합리한 조직 문화를 바꾸고,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MZ세대의 잠재력을 끌어낼 적임자란 얘기다.
그는 “최근 젊은 임원들이 많이 배출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조직이 변하려면 낀 세대들에게 더 많은 재량과 교육·시간·예산 등 자원을 지원해야 하는데 현장에선 잘 되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 원인으로는 ▶기성세대의 기득권 지키기 ▶낀 세대 육성 필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 ▶변화를 이루려는 절박감 부족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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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 세대 활용해야 조직이 산다
조영태 교수는 자발적인 자기계발 노력을 당부한다. 빠른 고령화로 다시 한번 법적인 정년 연장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낀 세대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70대까지 일할 가능성이 높다. 젊은 세대보다 더 자기계발을 열심히 해 노동시장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이고 시급한 건 조직 내부의 인식 변화다. 실제 많은 직장인들이 요구한 건 빠른 승진이나 연봉 인상 등의 혜택보다 ‘인정’이었다. 이 교수는 “조직에서 ‘너희가 있었기에 이만큼 온 거다’ ‘너희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 ‘언제든 기회가 있으면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시그널을 끊임없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업을 떠받치는 허리 세대가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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