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속옷은 섹시해야'.. 파키스탄 남성들은 바뀔 수 있을까?
경비원이 출입을 막을 거라 예상되는 곳은 많다. 파키스탄에서는 아마도 속옷 판매점이 그런 곳일 것이다. 파키스탄에서 속옷 회사 경영진 대부분이 남성이고, 속옷에 대해 얘기하는 건 금기로 여겨진다. 때문에 편안하고 몸에 잘 맞는 속옷은 돈이 많아야만 구할 수 있다.
15개월 전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한 가게 입구에서 남성 두 명이 마크 무어의 출입을 저지했다. 이 남성들은 무어에게 여자 속옷 가게에 무슨 볼일이 있어 들어가는지, 도대체 생각이 있는건지 따져 물었다.
당시 같이 있던 친구가 무어는 외교관이고 아내 속옷을 사러 왔다고 거짓말을 해줘서 그는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영국 레스터 태생의 사업가인 무어는 사실 그곳에 시장 조사차 방문했다. 파키스탄 여성들에게 고품질의 저렴하고 편안한 속옷을 판매하기 위한 조사였다.
그러나 무어가 파키스탄의 여성 속옷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경비 요원의 출입 저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기본적으로 파키스탄에선 여성 속옷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생각이 매우 다르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에게 여성 속옷은 "섹시하고 매력적"인 의미라는 게 무어의 설명이다. "남성들은 레이스와 반투명 원단의 속옷을 사죠. 반면 여성들은 제품의 편안함과 신뢰성을 원해요."
하지만 파키스탄 여성 대다수에겐 편하고 믿을 수 있는 소재의 속옷은 꿈에서나 봄 직한 것이었다. 이런 속옷은 수입품 코너에서나 찾을 수 있는데, 많은 여성은 이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다.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속옷은 고리가 잘 녹슬고 와이어(철사)도 날카로워 착용감이 불편했다.
현지 아나칼리 시장에서 만난 27세의 히라 이남은 BBC 취재진에 "원하는 모양과 크기를 가진 브래지어를 10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브래지어 소재가 좋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죠. 착용할 때 간지럽고 땀이라도 흘릴 때면 브래지어 컵 주변에 두드러기가 납니다."
시장에 있던 또 다른 여성들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 익명의 여성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몸에 맞고 피부에 편한 브래지어를 찾는데 많은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지만 지금까지 못찾았습니다. 브래지어의 와이어가 제일 먼저 튀어나오죠. 조심하지 않으면 와이어에 피부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파키스탄엔 분명 고품질의 저렴한 속옷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국의 주요 소매업체 출신이면서 파키스탄 섬유 산업의 허브에 공장까지 세워 현지 공략에 나선 무어의 제품은 출시도 못 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우선 무어 회사의 현지 인지도를 꼽을 수 있겠다. 파키스탄 여성을 겨냥한 속옷 마케팅은 까다롭다. 이곳의 공공장소에선 속옷에 대한 어떤 논의도 금기시된다.
속옷 마케팅엔 입소문이 핵심요소다. 30년 전 카라치 미나 시장의 속옷 상인들은 제품에 만족한 소비자의 추천이 있으면 금세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먼 곳에 사는 여성을 겨냥한 속옷 마케팅은 잡지 광고를 통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잡지는 점점 쇠퇴하고 있다.
이제 파키스탄에서 입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소셜 미디어 캠페인이다. 그러나 이 방법엔 속옷을 '천박한' 물건으로 포장 하는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가게 진열창으로 여성 고객을 유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파키스탄 속옷 가게는 상호가 없고 색유리를 진열창에 사용한다. 즉 속옷 가게를 지나가더라도 이곳이 무엇을 파는지 추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안 그런 곳도 있다. 쇼핑몰의 속옷 가게는 더 눈에 띄지만 이런 곳에 가는 사람들은 엄선된 소수다.
결국 무어는 현지 진출을 위해선 대형 소매점이나 브랜드와의 제휴가 최선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즉 남성들로 가득한 현지 속옷 회사 임원진에게 섹시함보다는 안전함과 편안함의 중요성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무어는 "팀원들과 내가 브래지어와 팬티 같은 제품을 탁자에 놓고 나면 남자들이 킥킥 웃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브래지어와 팬티가 성적 자극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현재 가장 힘든 일이죠. 편안함이 중요한 게 속옷이라는 것을 알리고 속옷 판매 역시 금기시되지 않고 일상적인 일이 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소망이 이루지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무어가 방문한 속옷 제조사 및 브랜드의 임원과 디자이너 대다수는 남성이었다.
무어의 회사 현지 공장의 운영 책임자인 카마르 자만의 설명이다. "남성 직원에게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해야만 했죠. 그리고 나면 이들이 조수직 여성들에게 아이디어에 대한 피드백을 묻습니다. 하지만 남자들로 가득 찬 이사회실에서 여성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속옷에 대한 얘길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불편하죠."
무어도 현지 속옷 공장의 고위직에 여성을 앉히려 시도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일반직 및 고위직 자리에 여성을 찾는 구인 광고를 내기도 했지만, 구직자 대부분이 가족과 상의하고 연락하겠다고만 했죠. 그중 두 명은 가족이 속옷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가 공장에서 여러 번 거론되는 것조차 금기 사항이다.
무어의 공장 직원 수마이는 남편이 BBC 인터뷰에 동행했다고 밝혔다. "일을 시작한 뒤, 남편은 가족들에게 제 직장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이를 문제 삼을 것이기 때문이죠."
또 다른 여성 직원도 재봉공 면접에 가기 전에 아버지에게 물어봤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즉시 제 말을 듣는 것도 거부했죠. 아버지에게 일단 공장 답사라도 하게 해달라고 했고 만약 공장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공장 남성 직원들도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직업을 쉬쉬해야만 했다.
안와 후세인은 처음에 가족과 친구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제 일터를 놀려댔죠. 가족들은 공장에 가는 것을 막았고요. 간신히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에 다른 여자 동료에게 바느질한 브래지어를 건네는 것조차 부끄러웠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편해요. 결국엔 그냥 직업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이제 공장 직원들에겐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 만약 무어의 사업이 파키스탄 시장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면 공장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직원의 생계가 곤란해진다.
하지만 무어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BBC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파키스탄에서 속옷은 실패 확률이 높은 아이템이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곳을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 일단 버텨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