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닥쳐온 불행, '슬의생2'가 전하는 평범한 위로
[양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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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포스터 |
| ⓒ tvN |
간담췌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은 간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김장호의 면역 억제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한다. 3년 전 첫째 딸에게, 1년 전 둘째 딸에게 간 이식을 받은 그였다. 딸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간을 이식 받았던 탓일까. 김장호는 자신의 경우가 얼마나 감사하며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다시 많은 양의 술을 마시면서도 익준에게 거짓말을 하고, 남편과 딸 걱정에 마음 고생했을 아내를 살피지도 않는다.
김장호의 이러한 행태는 가족에게 걱정을 안기겠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힘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 앞에는 참으로 무례한 행동이다. 간절히 간 이식을 기다리는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을 생각한다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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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2화 한 장면 |
| ⓒ tvN |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의 진료실이 시끄럽다. 실밥을 뽑기 위해 진료를 받는 승원이 정원의 손이 닿을라치면 새된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기 때문이다. 정원은 승원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료를 미루지만, 외래 진료 시간이 마감되도록 실밥을 뽑지 못한다.
진료가 마감된 후, 정원은 외부 대기실에서 승원이 미워 저녁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는 승원 엄마(류혜린 분)를 발견한다. 정원은 의기소침한 승원 엄마를 다정하게 위로한다. 승원이 그 힘든 암도 이겨냈는데, 실밥 하나쯤이야 어떠냐며, 언제든 실밥을 뽑자고 이야기한다. 승원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어린이 환자의 보호자들은 진료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자신의 아이 때문에 다른 진료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눈치를 보며 살피게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어린 환자에 대한 진료는 성인 환자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의사는 주로 보호자와 소통해야 하고, 보호자는 아이를 달래며 치료에 협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환자인 아이가 가장 최우선이 되는 이 과정에서 의사와 보호자 사이에는 해소되지 않는 불편한 감정들이 남을 수 있다.
사실 승원 엄마는 승원이가 밉기보다는 의사인 정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정원 역시 환자 보호자의 이러한 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미안해하는 어린 환자의 보호자와 그것을 알아채고 언제 하든 괜찮다고 말하는 의사의 대화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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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2화 한 장면 |
| ⓒ tvN |
다행히도 민찬의 수술은 무사히 끝나고 민찬 엄마는 기뻐하며 안도한다. 민찬 엄마 앞에서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준완 역시 수술 결과에 그 누구보다 기뻐한다. 준완은 늘 건조한 어조로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기에 자칫 냉정한 사람으로 오해를 사기 쉽다. 그러나, 준완은 세심하게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이다.
수술 후, 준완은 영국에 유학 중인 연인 익순(곽선영 분)에게 전화해 뛸듯이 기뻐하며 수술 결과를 전한다. 익순은 준완의 이야기를 미처 듣지 못한 채 인종차별을 당한 사연을 전한다. 익순의 슬픔 앞에서 준완은 더이상 자신의 기쁨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슬픔을 느끼는 다른 이의 감정에 대한 작은 배려이다. 준완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표정과 말투만으로 누군가를 속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차갑고 냉정한 의사의 태도에 상처 받는 환자들이 많다. 준완을 뺀 나머지 네 사람의 친구들처럼 친절한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모든 의사들이 다정한 성격일 수는 없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냉정한 얼굴 속에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감추고 있는 사람도 때론 존재한다.
속초 병원에서 근무하는 신경외과의 채송화(전미도 분)는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유경진의 뇌종양 수술을 위해 율제종합병원을 찾는다. 레지던트 허선빈(하윤경 분)은 송화에게 경진의 상태를 설명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보호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송화는 선빈의 '뒷담화'를 단호하게 막는다.
송화를 선빈과 같은 레지던트로 착각한 경진의 엄마는 팔짱을 낀 채, 불신하는 말과 태도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교수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불평하던 경진 엄마는 송화가 자신이 집도할 교수임을 밝히자 민망해하며 태도를 바꾼다.
이러한 경진 엄마의 태도는 종합병원의 레지던트를 불신하며 무례하게 구는 일부 환자와 보호자를 떠오르게 한다. 좀더 경험이 많고 실력이 좋은 교수의 진료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무례를 정당화해 줄 수는 없다. 예의는 직위를 따져가며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병원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예의의 기준은 동일하다.
송화는 수술을 마친 후 바이올리니스트 유경진을 집도한 의사로 소개하려는 독일 언론의 인터뷰 제의를 거절한다. 그 이유는 경진을 같이 수술한 레지던트 용석민(문태유 분)과 선빈의 일정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술을 자기 혼자한 것이 아니라는 송화의 말은 경진 엄마의 태도에 상처 입은 선빈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되살린다.
결코 혼자 해낸 것이 아니라는 송화의 태도는 석민과 선빈을 동료로 인정하는 마음이다. 배움을 주고 받는 관계 내에서 제자가 일정 수준으로 성장하면 동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가르치는 입장의 송화 역시 그들처럼 배우며 성장했을 것이다. 좀더 알고 좀더 능숙하다는 것이 모든 공을 독차지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송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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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2화 한 장면 |
| ⓒ tvN |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이 문구는 석형이 보는 의학 서적에 붙여진 메모지에 쓰여 있던 것이다. 석형은 과거의 어떤 상처를 누군가 보내준 이 문구로 달랬을 것이며, 그 위로를 다시 깊은 아픔을 느끼는 김수정 산모에게 전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불행들에 우리는 슬퍼하며 자책한다. 김수정 산모는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을 자신을 탓으로 돌리며 아파했을 것이다.
형용사 '좋은'은 누군가 짐진 부당한 책임감을 경감시키며, 부사 '때때로'와 의존명사 '수'는 불행의 특별함을 평범함으로 변모시킨다. 저 문구는 아파하는 누군가를 자책의 늪에서 건져내며 어찌할 수 없는 불행을 그저 삶의 하나로 받아들이도록 안내한다.
병원의 많은 환자와 보호자는 불행을 만난 사람들이며, 더 큰 불행이 오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다. 불행 앞에 가장 힘든 사람은 환자와 보호자겠지만, 의사 역시 그 불행에서 비켜날 수가 없다. 김수정 산모의 병실 문을 차마 열지 못하는 석형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들만의 불행에 고통스럽다면, 의사는 광범위한 불행 앞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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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2화 한 장면 |
| ⓒ tvN |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2화는 의사가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의사들이 가진 인간적인 여러 면모들을 부각시킨다. 드라마는 의사가 어떠해야 한다는 정의에는 거리를 둔 채 어떤 의사가 어떤 사람인가에 집중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의사가 된다.
율제종합병원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한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좋은 사람 투성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환자, 보호자, 동료들의 희로애락에 공명한다. 그러나, 이 좋은 사람들의 모습은 의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조금은 동떨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를 불신한다. 환자의 안위보다는 경제적 이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되기는 어렵지만 편하게 앉아서 많은 돈을 버는 직업 중 하나라고 여긴다. 일각에 이루어지는 고된 노동은 큰 보상과 사회적 지위가 따르니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돈과 명예을 따지는 의사를 배척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돈과 명예 때문에 의사가 되려 한다(혹은 자식을 의사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리는 이상적인 의사는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생명에 대한 소명의식과 책임감에 눈을 빛내는, 그런 의사일 것이다. 이런 바람들은 좋은 의사를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의사를 지나치게 냉정하게 평가하는 요인도 된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특수성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의사 역시 그저 보통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누구도 의사가 진료실 뒤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그리는 것은 아픈 사람 가득한 세상에서 아픈 사람이기도 한 좋은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그런 위로가 '때때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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