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서예에서 영감 얻은 피에르 술라주..물감 긁어내는 방식 '서예 추상화' 창조
아시아 사상과 문화 예술, 특히 서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미국의 추상화 거장들만이 아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전후 시대 주요 추상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에 그 영예를 뺏기기 전까지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세계 미술의 메카라는 위상을 굳건하게 지킨 곳은 파리였다. 파리에서는 사실 이전부터 이미 아시아 예술의 엄청난 영향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자포니즘(Japonisme)’이라 불린 문화 현상. 새로운 회화를 모색하던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일본의 우키요에(목판화)에서 예술적 영감을 구했다. 이후 다시 아시아 예술의 영향이 나타난 것은 전후 세대 추상 화가들 작품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1919년생)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문화적 뿌리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이해가 술라주 예술의 출발선이다. 하지만 아시아 선불교 사상과 서예가 그의 추상 예술을 보다 풍부하고 심오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다.
그는 1947년 처음으로 통일감을 지닌 선으로 구성된 추상화를 선보였다. 이를 한자 형태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서예 정신의 영향으로 보는 편이 옳다. 이후 1950년대를 관통하며 어두운 색채의 명암 효과를 다양하게 실험했다. 1958년에는 일본을 방문해 여러 서예가와 교류했다. 일례로 ‘회화 186×143㎝, 1959년 12월 23일’을 보라. 서예에 대한 그의 높은 관심이 반영된 이 추상화는 2018년 11월 15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000만달러(약 110억원)가 넘는 금액에 낙찰, 현재까지 그의 전작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m에 달하는 큰 캔버스가 뿜어내는 거부할 수 없는 힘과 드라마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서예의 힘찬 붓질을 연상시키는 흔적이 캔버스 표면에 다양한 감촉을 생성하고 있다. 하지만 술라주는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거나 제스처를 저장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유화 물감의 내재적 특질을 최대한 활용해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려 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드러낼 뿐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 작품 역시 서정적, 감성적인 측면보다는 회화라는 물성 그 자체, 즉 구조와 색채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가 제목에서 작품 크기와 완성한 날짜 이외에 관객의 감상이나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그 어떤 주관적인 정보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생존 화가로 추앙받지만, 술라주를 먼저 인정한 것은 뉴욕이었다. 1953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유럽의 젊은 화가들’이라는 전시에 소개됐고, 1954년에는 이름난 화상 사무엘 쿠츠(Samuel Kootz)의 갤러리에 소속된다. 그는 술라주를 미국에서 스타덤에 올린 주인공이다. 1955년 5월 그의 갤러리에서 열린 술라주의 두 번째 개인전은 전작 판매라는 기록을 세울 정도였다. 이어 술라주는 뉴욕현대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1957년 뉴욕을 방문해 마크 로스코, 프란츠 클라인, 로버트 마더웰 같은 추상표현주의 거장들과 친분을 맺는다.

그가 모국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뉴욕에서 성공을 거두고도 10여년이나 지난 뒤였지만, 영예는 그만큼 컸다. 1967년 파리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통해 이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진 최연소 화가로 등극한 것. ‘회화 202×159㎝, 1965년 7월 3일’은 이 전시에 포함됐던 작품으로, 1960년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강력하면서도 고요함을 간직한 이 추상화는 견고한 수직의 붓질이 2m가 넘는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며 묵직한 존재감과 압도적인 인상을 풍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술라주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1979년부터 시작한 ‘검정색을 넘어서(Outrenoir)’라는 제목의 새로운 연작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는 물감의 촉각적 특질과 밀도의 다양성을 통해서 주변의 빛과 관객의 위치에 따라 색채가 지속적으로 변하는 ‘상호작용의 화면’을 창조해내는 데에 주력했다. ‘회화 222×222㎝, 1987년 5월 15일’이 그 좋은 예다.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캔버스를 이어 왼쪽 패널은 전체가 검정색으로, 다른 쪽은 밑에 칠한 푸른색이 드러나게 넓은 사선으로 붓질을 한 위에 수제 주걱을 사용해서 긁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윤기와 무광, 거침과 부드러움, 사선과 수평적 촉감이 조화롭게 교차하는 이 작품은 마치 선불교의 수도승이 정원의 모래를 쓸어 만들어낸 것 같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처럼 빛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하는 검은 추상적 표면의 율동감을 창조한 술라주는 그야말로 ‘검정색과 빛의 화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7호 (2021.05.05~2021.05.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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