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집단성폭행 피해자, 국가 도움 못 받았던 이유

충북인뉴스 김남균 2024. 9.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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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고교생 집단성폭행 사건의 이면 ④] "관할 아니라서" "연락 안 받아서"라는 어른들

7개월동안 지속된 집단성폭행. 2020년 10월 경찰 수사는 시작됐지만 지역사회에서 꼭꼭 숨겨졌고, 경찰 수사 개시부터 검찰의 기소까지 2년 1개월(2022년 11월 불구속 기소)이 걸린 사건. 2024년 2월에 1심, 지난 7월 항소심 결과가 나왔다. 경찰 수사 시작부터 계산하면 사법적 판단에 약 3년 5개월이 걸렸다. 바로 '충북 충주시 고교생 집단성폭행사건' 이야기다. <충북인뉴스>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2020년 충주 고교생 집단성폭행 사건의 이면을 연속으로 보도한다. <기자말>

[충북인뉴스 김남균]

 법에 따르면 국가는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 피해자가 적절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 충북인뉴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대한 국가·지방지차단체·교육청의 책무를 규정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가는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 피해자가 적절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줘야 한다. 충주 고교생 집단성폭행 사건 피해자에게 법이 규정한 보호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교육청, 이유는... "관할이 아니라서"
 충청북도 교육청 관계자는 충주 고교생 집단 성폭행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와 관련해 "피해자는 사건 접수 후 얼마되지 않아 관할지역을 벗어난 타 도로 전학을 갔고, 이에 따라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충북인뉴스
항소심(2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 사건이 사건화가 돼 1차 경찰 조사를 받은 후부터는 피고인들의 강압적인 성관계가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라고 적시했다. 강압적 성관계가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에게는 국가의 도움이 무엇보다 필요했을 것이다.

현재까지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가 사건을 외부에 최초로 알린 곳은 학교다. 2020년 10월 8일 피해자는 교사에게 피해사실을 알렸다. 학교는 충주교육지원청과 충주경찰서에 관련 내용을 전파했다. 그러고 나서 그해 10월 말, 피하재와 가해자에 대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피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는 이날 열린 학폭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청주일보> 기자는 "당시 열렸던 학폭위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충북도교육청 관계자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부른 것은 맞지만 시간대를 분리했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접촉할 가능성은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충북도교육청은 피해자에게 심리상담 등 추가적인 보호방안을 마련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관할구역' 때문이었다.

충북도교육청 관계자는 "학폭위가 끝난 지 열흘 만에 피해학생이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갔다"면서 "충북도교육청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전학 간 피해자에 대한 보호 책임은 전학 간 학교의 관할 교육청이 된다.

그렇다면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법적 조력 필요성에 대한 정보는 타 지역 교육청에 전달 됐을까? 이에 대해 충북도교육청 관계자는 "피해자에 대한 정보는 개인정보에 해당된다"며 "OO교육청에 전달해서도 안 되고, 전달할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OO교육청도 피해자가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더 이상 충북도교육청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가) 전학 간 이후의 상황은 전혀 알지 못한다"면서 "경찰로부터 수사상황이나 이런 것들을 통보받은 것도 일절 없다"고 말했다. 충북도교육청의 성폭력 피해학생에 대한 후속 조치는 '관할구역 아님'이란 표현 하나로 끝이 났다.

해바리기센터 "사건 관련해 말할 수 있는 것 전혀 없다"
 충주고교생집단성폭행 사건 피해자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충주시 소재 충북해바라기센터 전경. 센터는 "이 사건과 관련헤 규정에 따라 공개할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며 취재를 거절했다. (사진=김남균 기자)
ⓒ 충북인뉴스
<충북인뉴스> 취재 결과, 피해자는 '충북아동해바라기센터(아래 해바라기센터)'와 상담을 진행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언제부터 몇 차례에 걸쳐 상담이 이뤄졌고 어떤 보호조치가 행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해바라기센터는 '개인정보보호 등 관련 법령에 따라 피해자와 관련한 일체의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바라기센터는 사무실을 방문한 취재진에게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다만, 충주 지역 유관기관 관계자는 "해바라기센터 관계자로부터 '이 건이 사건화 되기 전까지 (피해자와) 상담을 진행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해바라기센터는 피해자가 전학 가면서 관할 지역기관에 이관했고, 이후 상황은 알지 못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1심-2심 재판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국선 변호인

이 사건으로 기소된 9명의 1심 재판은 2023년 4월 심리를 시작해 2024년 2월 1일에 끝났다. 2심은 2024년 7월 18일에 마쳤다.

피고인들은 성폭력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을 선임해 대응했다. 국가는 피해자에게 국선 변호인을 제공했다.

오선희(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를 변호하는 변호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피해자의 변호인이 재판에 참석한 것과 참석하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피해인의 변호사가 참석했을 경우 당장 가해자의 변호인 측이 황당한 내용을 담은 변론을 하지 못하는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사건에서 공익변론 활동을 하고 있는 조영은 변호사는 "피해자가 증언을 할 경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게 된다"며 "또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왜 폭력인지에 대해 재판부를 상대로 의견을 개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엄중 처벌해 달라는 의사가 중요한데, 피해자의 변호인을 통해 이를 재판부에 전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사건 검색을 통해 확인한 재판기록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한 국선 변호인은 10여 차례 넘게 진행된 1심과 2심 재판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가해자 측 변호인이 여러 의견서를 제출하는 동안 피해자의 국선 변호인은 어떤 의견서도 재판부에 내지 않았다.

피해자의 국선 변호를 맡았던 P변호사는 "피해자가 '도움이 필요 없다'며 변론을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P변호사는 "심지어 (피해자가) 연락도 받지 않았다"며 "이런 상태에서 변론을 할 수가 없었고,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심 재판에서 국선 변호인으로 지정된 것은, 1심 국선 변호인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자동으로 연장된 것"이라며 "변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선 변호인 관련 수당도 청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적절한 조력만 있었더라면... 1·2심 결과 달라졌을 것"

지난 7월 2심 선고를 앞두고 '가해자를 엄중 처벌해 달라'며 850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제출한 최명희 충주성폭력상담소장은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국가와 지역사회로부터 적절한 조력을 받았는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최명희 소장은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며 "법률적인 지식도 부족했고, 이런 상황에서 혼자 수사기관의 수사와 재판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애시당초 한계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상황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매우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때 국가와 지역 사회는 피해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대처 방안을 안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움을 거절했다'는 말로, '전학 가 관할 기관이 아니'라는 말로 빠져나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그럴수록 더 연락하고 접근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조력이 제공됐다면 재판 결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국가와 지역 사회가 존재는 했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기사]
① 7개월간 지속된 집단성폭행, 판결까지 3년 넘게 걸린 이 사건 https://omn.kr/29p4n
② '지역 유지 자제 집단성폭행 연루' 소문... 언론·시민사회도 침묵 https://omn.kr/29sau
③ 집단성폭행 피해자의 부서진 일상, 가해자들은 지금... https://omn.kr/29qtr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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