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무한 성과급’ 약일까 독일까 [경영전략노트]
유례없는 ‘하이퍼 불(Hyper Bull·초강세장)’에 올라탄 한국 반도체 투톱이 뜻밖의 변수를 맞닥뜨렸다. 올해부터 SK하이닉스가 성과급 상한을 없애자 삼성전자 노동조합도 성과급 상한 폐지를 요구하며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노사 합의로 성과급 재원을 영업이익 10%로 고정하고 성과급 최대한도를 없애 이를 10년간 유지키로 했다. AI 메모리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고급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성과 연동 보상이 ‘인재 록인(Lock-In)’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반면, 반도체처럼 고정비 부담과 경기 진폭이 큰 산업에서는 보상 제도가 사실상 자본 배분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무한 성과급’ 제도 이면을 우려하는 시선도 팽배하다. 일각에서는 호황기에 설계된 무한 성과급제가 반도체 산업 경기 진폭을 내부에 그대로 전가해 조직 안정성과 비용 구조까지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창사 이래 두 번째
삼성전자 노조가 오는 5월 총파업에 돌입한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지난 3월 9일부터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3.1% 찬성률로 쟁의권을 확보했다고 18일 밝혔다. 전체 재적 조합원 약 9만명 가운데 6만6019명이 투표에 참여해 73.5%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6만145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번 파업은 2024년 7월 이후 약 2년 만으로, 1969년 창사 이래 두 번째다. 노조는 오는 4월 23일 집회를 거쳐 5월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와 상한 폐지, 기본급 7% 인상 등이 노조 요구다. 노사 갈등 핵심은 성과급 체계다. 사측은 OPI(초과이익성과급) 재원을 EVA(경제적부가가치) 20% 또는 영업이익 10% 가운데 선택하는 방안과 임금 6.2% 인상, 자사주 지급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를 고수해 협상이 결렬됐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최근 SK하이닉스 무한 성과급 도입 이후 슈퍼 사이클 기대를 타고 이익 분배 갈등이 산업계 전체로 확산했다고 분석한다. 이번 성과급 갈등은 ‘성과 공유’와 ‘설비투자 재원 확보’ 사이 딜레마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SK하이닉스처럼 성과급 상한을 없앤 구조는 호황기 인재 유인과 조직 몰입을 극대화하는 인센티브로 작동할 수 있다. 반면, 업황이 꺾일 경우 누적된 고정비 부담으로 설비투자 여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많다.

유인+선별 효과 톡톡
성과급 도입 이후 노동생산성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점은 여러 실증연구에서 밝혀졌다.
에드워드 라지어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논문 ‘성과보상과 생산성(Performance Pay and Productivity·2000년)’이 대표적이다. 그는 논문에서 기존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한 ‘유인 효과(Incentive Effect)’와 생산성 높은 근로자가 유입되고 낮은 근로자가 이탈한 ‘선별 효과(Selection Effect)’로 성과급 도입이 노동생산성을 개선한다고 분석했다. 즉, 성과급이 기존 직원을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더 잘하는 사람’까지 끌어들이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성과 연동 보상을 도입한 조직 내부에는 평균 이상 생산성을 가진 인력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이런 효과가 더 극대화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반도체 산업은 동일한 설비와 자본을 투입하더라도 핵심 인력의 문제 해결 능력에 따라 생산성과 수익성이 명확히 갈린다. 특히 반도체처럼 ‘소수의 탁월함이 전체 성과를 좌우하는 산업’일수록 공격적인 성과 보상 체계가 유리할 수 있다. 성과 연동 보상이 강화된 조직일수록 고성과자 이탈률이 낮고 조직 전체 생산성이 상향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여러 실증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이 때문에 성과와 보상을 강하게 연동할수록 고몰입 조직 구축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성과급 논쟁 불편한 이유
경기 진폭 따라 보상도 ‘들쑥날쑥’
그럼에도, 국내 반도체 업계 ‘무한 성과급’ 논쟁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도 상당수다.
반도체 산업은 일반 제조업보다 인센티브 설계가 매우 까다롭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반도체 산업은 특유의 증설 리드타임(장비 발주 후 입고까지 소요 기간) 탓에 다른 산업과 비교해 수요예측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메모리 기업은 현재 가격과 수요 신호를 근거로 미래 생산능력을 확정하지만, 신규 팹(Fab·공장) 건설부터 장비 반입, 공정 안정화까지는 통상 1~2년 이상 소요된다.
문제는 이 사이에 실제 수요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호황기에 가격 상승과 주문 증가를 보고 설비투자를 확대하지만, 생산능력이 본격 가동될 시점에는 수요가 둔화해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불황기 때 투자를 줄이면 이후 수요 회복 국면에서 공급 부족이 빚어질 수 있다. 이처럼 현재 수요 반응보다 실질적인 공급 확대가 늦게 따라오는 ‘지연 효과’로 반도체 산업 경기 진폭이 증폭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성과급 체계는 공통적으로 영업이익에 연동된다. EVA를 고수하던 삼성전자도 영업이익 기반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상한 없는 성과급’이 사실상 영업이익 증가분을 기계적으로 보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성과와 보상을 직접 연결해 동기 유인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일 수 있지만, 반도체 업황 변동성이 조직 내부에 그대로 전이된다는 점에서 ‘그늘’도 만만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금처럼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영업이익이 급증할 땐 보상이 폭증하지만, 업황이 꺾이면 성과급 역시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보상 체계의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을 키운다는 점에서 잠재 리스크 요인으로 평가된다. 호황기에는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 투자 여력을 잠식하고 불황기에는 보상 축소에 따른 사기 저하와 인재 이탈 가능성을 동시에 키우는 양면성이 나타날 수 있다.
IT 대기업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서울 주요 대학 A교수는 “설비투자 사이클이 긴 반도체 산업에서는 불황기에 오히려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성과급이 영업이익에 연동된 구조에서는 이익 감소와 함께 인건비 조정 압력이 발생해 전략적 대응 여지를 좁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비투자 여력 제한 우려
막대한 설비투자와 경기 진폭을 견뎌야 하는 반도체 기업에서 영업이익을 성과급 산정 기준으로 삼는 게 적절하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메모리 산업은 선단 공정 전환을 위해 매년 최소 수조 원에서 수십조원 투자가 필수다. 이는 상당 부분 외부 차입에 의존한다.
영업이익에는 차입금 등 이자 비용이 반영되지 않으므로, 임직원 입장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금융 비용 때문에 내 성과급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 기업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무한 설비투자를 견뎌야 한다. 이에 비춰, 영업이익 기반 성과급 구조가 조직 전체 생존 논리와 상충되는 면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불황기 땐 거액의 감가상각비와 인건비가 동시에 덮쳐 조직 생존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
성과급 논쟁을 바라보는 주주들 시선도 따갑다. 영업이익은 세금과 이자 등을 반영하기 전 이익으로, 자본 비용이나 미래 투자 부담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지표다. 이 단계에서 성과급이 기계적으로 연동될 경우, 주주 몫 순이익이나 잉여현금흐름이 확정되기 전 보상 재원이 먼저 빠져나갈 수 있다. 영업이익 기반 성과급이 자본 배분 효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주주들 사이에서 팽배한 이유다
TSMC가 대만 회사법·정관에 따라 ‘법인세 차감 전 이익(세전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산정하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깔려 있을 것으로 산업계는 바라본다. 세전이익은 영업이익 등 본업 성과에 재무 활동(이자 수익·비용, 환차손익, 자산 매각 이익 등)까지 반영한 것이다. 2015년 법 개정 이후 대만 정부(경제부)는 성과급 기준이 되는 이익을 ‘해당 연도 세전 이익(Profit before tax)’으로 규정한다.
TSMC는 이 규정을 기반으로 세전이익 단계에서 성과급을 비용으로 반영하며 배당 정책과 함께 조정한다. TSMC 정관에 따르면, 회사는 연간 이익이 발생한 경우 이익의 최소 1% 이상을 직원 보너스로, 0.3% 이하를 이사 보수로 할당한다. 정리하면, TSMC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금융 등 제반 비용을 모두 빼고 남은 이익을 성과급 재원으로 삼자”는 취지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TSMC는 노사 교섭이 아니라 이사회가 경영 실적과 투자 계획을 고려해 성과급 규모를 결정한다. 업계 최고 수준 보상으로 핵심 인재를 지키지만, 성과급은 이사회 판단 영역으로 남겨두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반도체에서 ‘무한 성과급’이 독(毒)이 되지 않으려면, 장기 경쟁력과 연결된 유인 체계 구축이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AI 반도체는 단순 대량생산이 아니라 초미세 공정, 커스터마이징, 수율, 패키징, 품질 대응 등이 얽힌 지식 집약 산업이다. 숙련된 역량 축적의 가치가 높아 인재 이탈 비용이 매우 크다.
구스타보 만소(Gustavo Manso) 미국 UC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2011년 논문 ‘혁신 인센티브(Motivating Innovation·Journal of Finance)’에서 혁신 활동에 적합한 보상 구조가 일반적인 성과평가 시스템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점을 실증했다.
그는 혁신이 본질적으로 실패 확률이 높고 성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갖는 만큼, 단기 성과에 기반한 보상·징벌 체계는 오히려 실험과 탐색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한다. 즉, 혁신을 유도하려면 단기 성과에 대한 엄격한 평가보다는 장기 성과에 대한 보상과 실패 허용이 결합된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춰, 영업이익에 연동된 성과급 체계는 업황이 좋을 때 강력한 동기부여로 작용해 실행력을 높일 수 있지만, AI 반도체처럼 불확실성이 큰 영역에서는 단기 성과 기준이 오히려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SK하이닉스가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면서도 성과급 20%를 2년에 걸쳐 이연 지급하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로 분석된다. 성과급 전체를 즉시 현금화하지 않고 일부를 뒤로 미루는 구조는 단기 성과주의를 완충하는 제도적 장치로 평가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장기적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혁신이나 품질 기반의 기업이 단기 성과급을 채택하면 전략과 일관성 부재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라며 “창조적 혁신과 민첩성 등을 동기부여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미래지향적 성과급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2호(2026.03.25~03.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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