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심신단련] 몸치의 '오운완', 이 종목이 최고입니다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난 몸치다. 선천적으로 운동 신경이 없다. 몸치의 사전적 의미는 '노력을 해도 춤이나 율동 등이 맞지 않고 어설픈 사람'이다. 간단한 율동을 배울 때에도 '손을 어떻게 하라는 거지? 다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지?' 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몸치인 걸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그 전엔 태권도, 수영, 스케이트 등을 못 하는 게 그저 이 운동이 나와 맞지 않아서겠거니, 하며 자신에게 관대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비로소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당시 체육 선생님께서 수업하실 때마다 내 동작을 따라 하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배구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께서 시범을 보이신다. 그러고는 선생님의 시범을 학생들이 따라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쭉 훑어보신다. 그러고는 누군가의 동작을 따라 하신다. 팔을 편 것도 접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몸짓,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자, 지금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면 되겠냐?"
아이들은 모두 까르르 웃는다. 선생님의 눈빛은 나를 향하고 아이들은 '아~'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 바다의 날 마라톤 대회 시작 전 집합 장소 모습. 바다의 날 마라톤 대회. 흐린 날씨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
ⓒ 김지은 |
난 항상 열심히 달리는데도 100m 달리기 기록이 20초를 넘었다. 기록이 20초가 넘는 아이만 따로 선착순 달리기를 할 때는 어찌나 힘들었던지. 중학교 2학년 이후, 난 운동과 거리가 먼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잃은 채 학창시절이 지났다.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건, IMF로 가정 경제가 어려웠던 재수생 때였다. 버스비가 없어서 집에서 40분 거리의 구립도서관까지 걸어 다녔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걸어 다녔는데, 걷고 달리며 스트레스가 풀렸다.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라 전체가 침울했던 시기에도 꽃은 피고 나뭇잎은 초록빛으로 변하고 하늘은 높아진다는 걸 걷고 달리면서 알았다. 성실히 시간이 간다는 게 큰 위로가 됐다. 내가 뛰는 시간을 측정하는 선생님도, 경쟁하며 달려야 하는 친구도 없다. 혼자서 사색하며 달리고 걷는 그 시간이 그 시절의 나를 지켜주었다.
그러고는 20년 후, 다시 그런 시절이 왔다. 성실히 시간이 가는 게 위로가 되는 시절. 코로나19로 마음껏 사람을 만날 수 없을 때, 수영장도 헬스장도 필라테스 학원도 가지 못하게 됐을 때. 그래도 달릴 수는 있었다. 팔과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내가 살아 있다고 느낀다.
기고 걷고 뛰고 달리는 건 사람의 발달상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니 몸치도 달릴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우선 달리기만 하면, 한 걸음 내딛기만 하면, 달리기 전보다 기분이 나아진다. 복잡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 한강에서 저녁 러닝 선선한 저녁, 한강 러닝 |
ⓒ 김지은 |
런데이 앱에는 초보자를 위한 30분 달리기 가이드가 있어서 달리는 자세와 복장 등 러닝의 기본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스트라바(Strava)라는 앱도 많이 사용하는데 스트라바는 러닝뿐 아니라 자전거를 탈 때나 걸을 때도 사용할 수 있고 러닝코스를 추천해 주기도 해 좋다고 한다.
처음엔 런데이 앱의 가이드가 시끄럽게 느껴졌는데 코로나19로 주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가이드가 정겹단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지금 열심히 뛰는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라는 가이드에는 "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고, "트레이닝 할 때 걸으면 안 돼요, 천천히라도 뛰세요!"라고 하면 "어머! 어떻게 알았지?" 하고 피식 웃으며 다시 뛰기도 한다. "여러분 지금 집에서 TV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승자입니다!"라는 가이드에는 "에이, 그건 아닌데. 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나요?"라고 대꾸한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주위 사람에게 '밖에서 좀 걷다 와라'라는 조언을 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걷기는 즉각적인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를 떨어뜨려서다. 경미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이 걷기 운동부터 권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시사저널 , 무시할 수 없는 '걷기 운동'의 3가지 효과 중"
달리는 건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명절 스트레스로 마음이 복잡한 저녁. 한강을 뛴다. 문제를 헤치고 나아간다. 가끔은 마라톤 10km 부문에 참가하기도 한다. 얼마 전 있었던 '바다의 날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9월인데도 어찌나 덥던지, 내가 왜 뛰나, 왜 생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계속하며 뛰었다. 그만 뛸까. 옆의 산책로로 벗어날까. 이거 다 뛰어서 뭐해. 다 뛰어봤자 겨우 10km 완주인 걸. 유혹은 계속된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논다. 마음은 마음대로 하게 두고 몸은 계속 달린다.
보통 마지막 1km는 피치를 올려 더 세게 뛰는데 이번엔 올릴 기력이 없다. 그걸 느끼는 순간, 내가 정말 전력을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마지막 때 이런 생각이 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난데없이 스친다. 괜히 울컥한다. 운동하며 느낀 성취감은 삶의 다른 영역으로 확장된다. 다른 것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달리기는 '나는 할 수 없어'에서 '나는 할 수 있어'가 되게 한다. 꼭 오랜 시간이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뛰면 에너지가 생긴다. '혼자서 어떻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러닝앱을 깔고 들으며 뛰면 된다. 몸치라는 핑계는 이제 그만. 몸치도 뛸 수 있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서 딱 뛰기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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