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경찰서장은 유죄, 용산구청장은 무죄... 왜?

김성욱 2024. 9. 3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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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의무와 권한 유무로 판단... 유가족들 "159명 죽었는데" 오열

[김성욱 기자]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1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기사대체: 30일 오후 8시 10분]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0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동일한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같은 날 1심에서 금고 3년의 유죄를 선고 받은 것과 대비된다. 재판부가 관할 경찰에겐 핼러윈 인파를 관리할 의무와 권한이 있다고 본 반면, 관할 구청엔 의무도 권한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 구청장 무죄에 유가족들은 법정에서 "159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무죄냐"라며 통곡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 부장판사·김병일·백송이)는 이날 박 구청장 등 용산구청 직원 4명, 이 전 서장 등 용산서 경찰관 5명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사건 재판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참사 발생 후 1년 11개월, 이 전 서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 1년 8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박 구청장과 이 전 서장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2개월 뒤인 2022년 12월 경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후 각각 지난해 6월·7월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아왔다.

용산경찰 책임 인정한 법원… "자연재해 아닌 인재"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의 유무죄가 엇갈린 이유는 재판부가 인파 사고를 대비할 의무와 이를 조처할 권한이 경찰엔 있고 구청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2022년 핼러윈은 3년 만에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돼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 선고에서 "경찰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할 임무가 있다"라며 "축제를 맞아 수많은 군중이 경사진 좁은 골목길 등 공간에 운집해 혼잡이 예상되는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관, 특히 축제에서 혼잡 상황에 대비한 치안유지라는 구체적 임무까지 부여된 경찰관의 지위에서, 대규모 인명 사상이라는 대형 참사의 결과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공간에 군중의 밀집으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사고, 즉 전도·추락·압사 등의 안전사고라는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 전 서장 등이 항변해온 것처럼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를 정확히 예지하진 못했더라도, 사고 발생 가능성은 예견할 수 있었기에 경비 대책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재판부는 "참사 당일 오후 6시 34분경부터는 사고 장소 부근에서 압사의 위험 및 인원 통제를 요청하는 112 신고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었음에도 112 자서망 무전기(교선용 무선망)를 제대로 청취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대처했다"라며 "마약류 범죄 단속과 교통 단속에만 치중했을 뿐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안전사고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았고, 사고 당일 혼잡 경비와 정보 경력 전원을 집회·시위 현장에만 배치했다"고 했다. 참사 당일 오후 8시 33분께까지 진행된 용산 대통령실 앞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언급한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불과 1400미터 떨어져있는데, 이곳엔 경찰 기동대 67개가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112로 압사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던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엔 경찰 기동대가 하나도 없었다. 이태원 참사는 오후 10시 16분 발생했다.

재판부는 "이태원 참사는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주의의무를 다하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라면서 경찰관들의 책임을 물었다. 이 부분은 오는 10월 17일 선고가 예정된 '윗선'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선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이 상급자인 김 전 청장에게 경찰 기동대 요청을 했는지 여부를 놓고 진실 공방이 일었던 부분에 대해선 " 핼러윈 데이를 맞아 용산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에 교통기동대 지원 요청을 한 것 외에 경비기동대까지 지원 요청하였다는 객관적 증거는 없다"고 명시했다.

금고 3년형을 받은 이 전 서장은 재판부가 보석상태를 유지해 주면서 법정 구속되진 않았다. 이 전 서장과 함께 기소된 송병주 전 용산서 112 상황실장은 금고 2년, 박인혁 전 112상황실 3팀장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참사 후 이 전 서장의 현장 도착 시간을 실제보다 40여 분 앞당겨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았던 최용원 전 생활안전과 경위와 정현우 전 여성청소년과장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관련 1심 선고에서 금고 3년 형을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박희영은 왜 무죄? 법원 "재난안전법에 압사 사고 분류 없어"

그런데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용산구청은 비껴갔다. 용산구청이 적용 받는 재난안전법에 인파 관리의 의무와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며 경찰과 달리 구청의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박 구청장 판결에서 "재난안전법령에 다중운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의 유형으로 분류돼 있지 않았고, 용산구 안전관리계획의 상위 수립지침인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의 2022년 안전계획 수립 지침에도 그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점, 재난안전법령에 시군구 안전관리계획의 수정 및 변경 절차에 관한 규정이 없는 점, 재난안전법령에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았던 점 등 2022년 용산구 안전관리계획의 심의에서 피고인들에게 어떠한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재난안전법령상 2022년 핼러윈 데이에 대비하여 안전관리계획을 추가·정비·보완해야 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업무상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사고의 직접 원인은 '다수인파의 유입과 그로 인한 군중의 밀집'이므로, 사고를 방지·예방할 수 있는 실효적인 대책은 다수인파가 유입되는 것을 통제·차단하여 군집의 밀집을 방지하거나 밀집한 군중을 분산·해산하는 조치인데, 자치구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에서 사전에 특정 장소로의 대규모 인파 유입을 통제·차단하거나 밀집한 군중을 분산·해산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수권규정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결국 이 사건 공소에서 검찰이 지적하고 있는 여러 업무상 주의 의무는 자치구의 일반적·추상적 주의의무에 해당할 뿐 피고인들이 인파관리·통제에 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업무상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설령 피고인들의 조치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 내내 박 구청장 측이 견지해온 주장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박 구청장뿐만 아니라 함께 기소된 유승재 전 부구청장, 문인환 전 안전건설교통국장, 최원준 전 안전재난과장 등 용산구청 관련자 4명은 모두 무죄를 받았다.

다만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검찰의 혐의 입증이 부족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특히 재판부는 "공소 요지를 보면 피고인 박희영이 이태원 참사 당일 오후 9시경 당직실 직원에게 삼각지 역 인근 집회 현장에서 시위 전단지를 수거하라는 지시를 함으로써 당직실의 인파밀집 신고 대응을 어렵게 한 과실이 있다고 했지만, 당직실 직원이 집회 현장에서 전단지 수거를 한 것이 당직실의 업무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차질이 발생되었는지 그리고 이 사건 사고에 대한 대응이 실제로 지연되었는지 등에 대한 검찰의 충분한 주장과 입증이 부족했다"고 짚었다.

검찰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인 2022년 10월 29일 고향인 경남 의령을 방문했다가 오후 8시 22분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으로 귀가한 바 있다. 박 구청장 집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불과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그러나 박 구청장은 귀가 후인 오후 9시께에도 직원들에게 용산 대통령실 앞 윤 대통령 퇴진 시위로 인근에 흩뿌려진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피켓들을 수거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박 구청장이 실제 이태원 참사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10시 59분경이었다. 참사 발생 후 이미 40여 분을 넘긴 때였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1심 선고재판이 열린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유가족이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무죄 판결을 받고 청사를 빠져나간 뒤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울부짖은 유가족들… "박희영 무죄? 차라리 날 죽여라"

박 구청장 무죄 판결이 나오자 법정에 있던 30여 명의 유가족들은 울분을 토했다. 박 구청장이 법원을 빠져나가려 하자 일부 유가족들이 차를 막아서며 경찰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이게 재판이냐", "차라리 나를 죽여라", "159명이 죽었다", "무죄가 말이 되냐", "내 자식 살려내라"며 땅을 쳤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주영씨 아버지이자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이정민씨는 "재판 결과에 절대 승복할 수 없다"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다. 앞서 검찰은 박 구청장과 이 전 서장에게 각각 징역 7년을 구형한 바 있다.

유가족들은 박 구청장 무죄에 반발하는 성명을 내고 "(박 구청장 등) 피고인들이 인파 운집으로 인한 이번 참사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나 권한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참사 불과 2주 전 백만 명이 몰렸다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천 명이 넘는 용산구청 공무원들을 동원하여 인파를 관리하고 축제를 개최한 경험이 있고, 용산구는 2020년 및 2021년에도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용산경찰서 및 상인들과 협력하여 방역 지침을 집행하고 인파를 통제하여 본 경험이 있다"면서 "이번 참사에서도 최소한 구청 공무원들이 골목 내 교차 통행 등 인파 통제에 나섰다면, 이토록 대규모의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법원의 판단은 형식적인 법 논리에만 매몰돼 피고인들의 무능을 무죄의 근거로 삼은 부당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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