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쿠팡 서한'의 진실, 서한의 발신인을 주목하라

강명구 2026. 4. 24.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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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뉴욕 직설] 쿠팡 로비의 해부, 그리고 사법주권의 원칙

[강명구 기자]

 미국 공화당 내 하원의원 54명이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보낸 서한.
ⓒ RSC
지난 20일, 미국 공화당 내 하원의원 54명이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서한을 보냈다. 쿠팡을 비롯한 미국 기업을 "표적 삼아 차별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서한이 태평양을 건너자, 이튿날부터 한국 보수 진영과 일부 언론은 이를 '친미·반미'의 이념 구도로 해석해 정부 공격과 국내 정치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이 프레임은 익숙하지만,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도 개발독재 시절에나 통할 법한 방식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지금은 조금만 검색해도 서한에 이름을 올린 의원들이 쿠팡의 로비 활동과 어떻게 엮여 있는지 드러나는 시대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세계적으로 반미 정서를 가장 거세게 확산시키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 아니던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 집행 담당관을 비자 발급 제한 대상 명단에 올렸고,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와 판사를 개인 제재 대상에 올렸으며, 유럽 기업에는 미국식 방침을 요구하는 대사관 서한을 보냈다. 한국 보수 일각의 논리대로라면, 이 나라들도 모두 반미·친중이라서 제재받는다는 말인가.

이번 서한은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읽을 사안이 아니다. 이름을 올린 공화당 의원 상당수가 쿠팡 로비의 수혜자이자 워싱턴 로비 네트워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상장된 한 기업이 워싱턴에서 대대적인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고, 이를 떠받치는 일부 한국 전문 카르텔이 소수의 이익을 '미국 사회 전체의 의견'으로 포장해 왜곡하고 있으며, 국내 보수 일각은 그 왜곡된 문장을 국내 정치에 받아쓰고 있다. 이번 서한은 이 세 고리가 맞물린 전형적 사례의 하나다.

서한의 행간, 원문에 없는 세 가지

서한 원문을 차분히 읽어보면 먼저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첫째, '좌파'라는 단어가 없다. '이재명'이라는 이름도 없다. 원문의 표현은 "정치적 동기에 의한 조치들(politically motivated attacks)"이 전부다. 그런데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권은 이 문구를 좌파 정부의 반미 공세인 듯 원문에 없던 이념 꼬리표를 슬며시 연결 지었다.

둘째, '미국 의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명자 54명은 공화당 연구위원회(Republican Study Committee, RSC) 소속이다. 한국어로 '공화당 연구위원회'지만, 실제로는 하원 공화당 내부의 정책 성향을 공유하는 의원들이 모인 코커스(caucus)에 가깝다. 한국 정치에 빗대자면 당내 계파 모임 정도다. 상원 의원은 한 명도 없고 민주당 의원도 없다. 공화당 하원 전체로 봐도 4분의 1 남짓이다.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도, 미국 시민사회의 여론도 아니다.

워싱턴에서 한국 문제를 다루는 인적 네트워크는 생각보다 좁다. 국무부 한국과, 싱크탱크 한반도 연구원, 한국 기업 로비스트, 일부 의원실 보좌관이 사실상 한미 관계의 담론을 독점한다. 이 작은 집단의 목소리가 한국으로 건너올 때 마치 미국 전체의 여론인 양 포장된다. 이번 서한도 그 오래된 경로를 따랐다.

셋째, 서한은 쿠팡 사건을 "민감도 낮은 데이터 유출(low-sensitivity data leak)"이라고 규정했다. 한국 민관합동조사단이 지난 2월 10일 확정한 숫자는 다르다. 개인정보 3367만 건 유출, 배송지 정보 1억 4800만 회 조회.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다. '민감도가 낮다'는 표현은 미국 정부의 판단이 아니다. 쿠팡이 미국 법정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써온 문장을 옮긴 것이다.

결국 이 서한은 미국의 공식 입장이라기보다는 쿠팡이 로비로 얻어낸 한국 정부 압박용 청구서에 가깝다.

쿠팡은 왜 로비에 이토록 목을 매는가

솔직히 필자에게는 쿠팡 사태가 이렇게까지 외교적 쟁점이 되는 상황 자체가 어이없고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한 기업의 법적 문제는 그 나라 사법주권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가. 그래서 찾아봤다.

서한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언제, 왜 움직였는지를 따라가면 구조가 드러난다.

미국에는 "Money talks(돈이 결정한다)"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로비는 합법이다. 1995년 '로비 공개법(Lobbying Disclosure Act)' 이후,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썼는지만 공개하면 로비스트는 공식 직업이 된다. 연방에 등록된 로비스트만 약 1만 2000명, 한 해 로비 시장만 4조 원이 훌쩍 넘는 거대 산업이다.

여기에 '정치자금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 이하 PAC)'라는 제도가 있다. 기업이 의원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것은 금지지만, 기업이 만든 PAC이 의원 선거캠프에 기부하는 것은 합법이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는 불법인 기업의 정치 헌금이 미국에서는 합법적 창구를 통해 공개적으로 집행된다. 공개되기에 추적도 가능하다. 그래서 쿠팡이 어느 의원에게 얼마를 줬고, 어느 로비회사를 통해 누구를 만났는지, 시민단체 웹사이트(OpenSecrets)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 담긴 수치도 모두 그 공개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정보에 근거해 쿠팡의 워싱턴 로비 지출을 보자. 나스닥 상장 첫해인 2021년 101만 달러(15억 원)였던 지출은 2024년 331만 달러(49억 원)로 세 배 넘게 뛰었다. 특히 2024년 4분기 단일 분기에만 101만 달러(15억 원)가 집행됐다. 2021년 한 해 지출이 3개월에 쏟아진 셈이다. 트럼프 재당선 직후 정권 이양기에 맞춘 집중 투자였다.

더 주목할 점은 인력 변화다. 쿠팡이 고용한 로비스트 수는 2024년 약 10명에서 2025년 32명으로 세 배 늘었다. 같은 기간 지출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돈의 양보다 사람의 네트워크를 늘리는 쪽으로 전략이 바뀐 것이다. 복수의 위원회와 기관에 동시에 사람을 심어 두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쿠팡 관련 수사와 쟁점이 커질수록 워싱턴의 인적 네트워크는 더 촘촘해졌다.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에 가깝다.

실제로 쿠팡은 지금 미국에서 최소 두 개의 집단소송에 걸려 있다. 2025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과 뉴욕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증권 집단소송이 잇달아 제기됐다. 쟁점은 명확하다.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알고도 미국 투자자들에게 제때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다. 미국 증권법은 상장 기업에 중대한 사이버보안 사고를 4영업일 이내에 공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쿠팡은 이 기한을 11영업일 넘겨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것이 집단소송의 핵심 쟁점이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는 한국 국회 청문회 위증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고, 그 조사의 녹취와 증언은 미국 법정의 증거로 쓰일 수 있다. 한국에서의 수사가 미국 주주 소송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조사로 연쇄 확대될 수 있는 구조다. 쿠팡의 워싱턴 로비는 바로 이 연쇄를 차단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다.
 2025년 12월 30일 해롤드 로저스 한국 쿠팡 임시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돈 다음은 사람이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수석비서실 선임참모를 지낸 롭 포터는 지금 쿠팡의 글로벌 대외전략 총괄 임원이다. 쿠팡이 상장 직후 외부 로비스트로 고용한 알렉스 웡의 궤적은 더 입체적이다. 그는 트럼프 1기 때 국무부에서 북한 문제를 담당한 부차관보였고, 2025년 1월 트럼프 2기 백악관의 부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됐다. 한때 쿠팡의 로비 창구였던 인물이 한국 안보 정책을 다루는 자리로 옮겨간 셈이다. 작년 5월 '시그널게이트' 여파로 경질됐지만, 이 경로 자체가 말해주는 바는 분명하다. 기업 로비와 안보 결정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져 있다.

하원 법사위원회 쪽은 더 가관이다. 짐 조던 법사위원장의 수석 정책보좌관이던 타일러 그림은 2024년 12월 대형 로비회사 밀러 스트래티지스로 자리를 옮겼다. 14년간 의회에서 일한 조던의 최측근이었다. 그 이전에는 이번 서한의 공동 주도자인 대럴 아이사 의원의 입법보좌관과 비서실 차장도 지냈다. 서한의 주도자와 법사위의 실세가 같은 사람을 거쳐 연결된다.

그가 로비회사로 옮긴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림이 모시던 조던이 위원장으로 있는 바로 그 법사위가 2026년 2월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 같은 법사위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이끌었던 라마 스미스 전 위원장도 지금은 로비회사 에이킨 검프에서 쿠팡 일을 맡고 있다. 전직 위원장과 전직 수석보좌관이 현직 위원장의 소환장 뒤에 나란히 서 있는 구조다.

하원 세입위원회도 같은 각본이었다. 2026년 1월 13일 무역소위원장 애드리언 스미스 의원은 청문회에서 "한국이 미국 기업을 노골적으로 표적 삼는 입법을 계속하고 있다. 쿠팡이 바로 그 사례"라고 발언했다. 그는 쿠팡 정치자금위원회로부터 5000달러(740만 원)씩 두 차례를 받은 인물이다. 세입위원장 제이슨 스미스는 1만 5천 달러(2200만 원)를 받았고, 같은 청문회에서 한국을 "정치적 마녀사냥"이라 몰아붙인 캐롤 밀러 의원 역시 쿠팡 정치자금의 수혜자다.

2025년 1월 트럼프 취임식은 이 네트워크의 정점이었다. 쿠팡은 취임위원회에 100만 달러(14억 8000만 원)를 기부했고, 김범석 의장은 취임식에 직접 참석했다. 취임위원회의 재정을 총괄한 인물이 바로 쿠팡과 계약한 로비회사 밀러 스트래티지스의 대표 제프 밀러다. 기부자와 주선자와 수혜자가 한 테이블에 앉은 셈이다.

이번 4월 21일 서한으로 돌아가자. 공동 주도자 대럴 아이사 의원 역시 쿠팡 정치자금위원회로부터 5000달러(740만 원)를 받았고, 그의 전직 비서실 차장이 지금 쿠팡 로비스트로 일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방미 중 직접 만났다는 인물이 바로 그다. 장 대표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미국 핵심 인사들과 핫라인을 구축했다"고 자랑했지만, 누구를 만났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이 서한을 '미국의 여론'이나 '한미 관계의 심판'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드러난다. 이것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쿠팡이 한국 수사로부터 미국 내 법적 책임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년에 걸쳐 설계한 로비 채널의 산출물이다. 외교를 거래로 보는 행정부에서는 로비력이 있는 기업이 그 자체로 외교 자산이 된다. 지금 한국이 받아 든 것은 미국 정부의 요구가 아니라, 그 자산이 발행한 청구서다.

원칙에 서 있는 동맹만이 오래간다

한미 관계의 지속 가능성은 호혜성에 있다. 미국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동맹의 강화가 아니라 동맹의 변질이다. 사법주권은 국가 자율성의 기본선이다. 이 선을 외교 압박에 내주는 선례는 반드시 더 큰 양보 요구로 돌아온다. 국제정치의 오래된 철칙이다.

한국 보수 진영도 이제 '친미 대 반미' 구도로 한미 관계를 국내 정치에 소비하는 낡은 습관에서 벗어날 때다. 눈 가리고 아웅 하던 시절은 지났다. 미국의 정치자금 흐름은 의외로 투명하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기부했는지, 어느 로비 회사가 누구와 계약했는지, 전직 보좌관이 어느 기업으로 옮겨 갔는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공공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적할 수 있다.

한국 보수가 진정으로 한미 관계를 중시한다면 설 자리는 분명하다. 부당한 외교 압박 앞에서 사법주권의 원칙을 함께 요구하는 자리다. 사법주권은 한국이 주권국으로서 갖는 전략적 자율성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원칙이다.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친미(親美)와 굴미(屈美)는 다르다. 원칙에 서 있는 동맹만이 국익도 증진하고 더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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