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너마이트 터진 듯 폭발"..'가스관 공격 사고'에 유럽 패닉

김영주 2022. 9. 2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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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러시아-독일을 잇는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있는 덴마크 보른홀름 선 인근에서 가스 유출로 인해 커다란 파장이 일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독일을 거쳐 유럽으로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가스관)에서 "의도적 공격"으로 추정되는 가스 누출 사고가 잇따라 벌어졌다. 일각에선 사보타주(파괴 공작) 주체로 러시아를 지목하는 가운데 독일·스웨덴·덴마크 등 관련국 간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장관은 전날부터 이틀간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에서 발생한 3건의 가스 누출에 대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가스 누출은 26일 노르트스트림 2(NS2)에서 먼저 보고됐으며, 이튿날 노르트스트림 1(NS1) 2곳에서 발생했다. 사고 지점은 덴마크와 스웨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근방이다. 발트해 해저를 관통하는 노르트스트림은 2011년 개통한 NS1과 지난해 완공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가동되지 않은 NS2가 있다. NS1도 지난달 러시아가 폐쇄해 가스 수송은 중단됐지만, 가스관엔 가스가 남아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전문가에 따르면 가스 누출 지역에서 두 차례의 강력한 폭발이 기록됐다. 덴마크 그린란드지질조사국(GEUS)은 로이터에 "지진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폭발에서 나오는 신호"라고 했다. 또 GEUS의 파트너인 스웨덴 웁살라대 지진학자들은 특히 두 번째 폭발의 위력이 "100㎏ 이상의 다이너마이트에 해당한다"며 "폭발은 해저가 아닌 수중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폭발 후 다량의 가스가 수면 위로 올라왔으며, 이는 거대한 기포와 함께 '표면 교란'을 일으켰다. 덴마크군에 따르면 기포와 파장 등이 일으키는 표면 교란은 반경 1㎞에 달했다. 덴마크 에너지청은 "가스가 유출된 해수면은 메탄으로 가득 차 있다. 배가 들어가면 부력을 잃을 수 있다"며 "가스 배출을 멈추게 하려면 1주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하벡 장관은 가스 유출이 기반 시설에 대한 표적 공격이라며, "자연 발생이나 시설 피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막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도 가스관에서 두 번의 폭발이 감지됐다며, 관련 국가와 긴밀하게 접촉 중이라고 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세번의 누출을 우발적이라고 하긴 어렵다"며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단, 의도적 파괴 공작이라고 한다면 그 배후가 어디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전했다. 두 번째 가스 유출이 일어난 27일은 노르웨이-폴란드를 잇는 새 가스관 '발틱 파이프'가 개통한 날이었다.

가스관 운영사인 스위스 노르트스트림 AG 본사는 "전례 없는 사고"라며, 사고 수역 기준 5해리(약 9㎞)에 걸쳐 안전지대를 설정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스웨덴 해양청도 "선박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특별 감시 중"이라고 밝혔다.

누출 사고의 원인과 배후를 놓고 유럽과 러시아는 서로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림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이번 누출을 사보타주로 추정하느냐는 질문에 "지금 당장은 어떤 것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가 개입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으며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이 한 단계 더 고조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내지 않았다.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고의 훼손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NYT는 미 고위관리를 인용해 지난 6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독일 등 유럽에 노르트스트림이 공격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사고가 '러시아의 공격'인지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으며,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파생된 '하이브리드 전쟁'(전통적 무력행사가 아닌 기술·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역량을 동원하는 전쟁) 위험을 보여준다는 관측도 있다. 줄리안 폴락 독일 국방전략연구소 연구원은 "노르트스트림 가스 누출은 중요한 시스템이 외부 공격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지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고의적 행동'에 의한 가스 누출까지 발생하면서 유럽의 에너지 불안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했다.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10월물은 한때 메가와트시(MWh)당 208유로(약 28만원)로 전날보다 19.65% 뛰었다. 28일도 200유로 이상을 기록 중이다.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은 "NS 1·2에서 가스 유출은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과 관계없이 올겨울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제임스 헉스텝 S&P 글로벌플래츠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올해 말까지 NS1이 정상으로 돌아올 확률은 1%에서 0%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NYT도 이번 사고로 인해 치솟는 에너지 가격과 연료 부족에 직면한 유럽의 에너지 안보가 더 불확실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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