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 피아노는 34㎝ 더 컸다…'피아노의 벤츠' 택하지 않은 이유

김호정 2024. 10. 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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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계의 '벤츠'인 스타인웨이 대신 파지올리 선택
"다이내믹 범위 큰 피아노 필요했다"
이탈리아 피아노 브랜드인 파지올리로 6일 독주회를 연 피아니스트 손열음. 현존하는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 중 가장 큰 3m짜리다. 사진 파이플랜즈

6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커다란 피아노 한 대가 놓였다. 건반부터 악기 끝까지 길이가 3m 8cm인 파지올리 F308이다. 이탈리아 제작사인 파지올리가 만든 피아노로, 이번 공연을 위해 3일 한국에 들어왔다.

곧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등장해 독주회가 시작됐다. 거대한 피아노의 소리는 강력했다. 낮은 음부터 고음까지 전 음역대의 소리가 공연장 구석까지 골고루 전달됐다. 손열음은 이날 베토벤부터 얼 와일드까지, 피아니스트를 겸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했다. 피아노로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와 음악적 구절이 들어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공연의 라이브 녹음을 담당한 톤마이스터 최진은 “가로로 넓은 예술의전당 객석을 꽉 채우는 파워풀한 사운드의 악기였다”고 평했다.

이 무대에서 보통 연주되는 피아노는 독일 회사인 '스타인웨이 앤 선스'의 모델번호 D274다. 스타인웨이 중 가장 큰 콘서트 모델이고 2m 74㎝다. 예술의전당은 이 모델의 그랜드 피아노를 10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손열음은 파지올리에서 F308 피아노를 빌려 들여와 무대에 올렸다. 현존하는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 중 가장 큰 모델에, 페달도 보통 피아노보다 한 개 많은 4개다. F308을 예술의전당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피아니스트는 16년 전 보리스 베레초프스키(러시아)였다.

손열음은 왜 안정적이고 고른 음색으로 피아노의 ‘벤츠’라 불리는 스타인웨이 대신 이 거대한 악기를 외부에서 대여해 무대 위로 올렸을까. 그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피아노를 고르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했다.

손열음은 다양한 피아노를 탐험하는 대표적 연주자다. 지난해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 중 예술의전당 무대에서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브랜드인 뵈젠도르퍼로 연주를 했다. 그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피아노 브랜드마다 소리의 결이 다르다”라고 했다. “스타인웨이가 ‘강철 51, 나무 49’의 소리라면 뵈젠도르퍼는 ‘나무 51, 강철 49’ 라 느낀다. 모차르트는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걸 연상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뵈젠도르퍼를 선택했다.”

이런 이유로 손열음은 다양한 악기를 선택하고는 한다. “이달 파리에서 라벨의 독주곡을 녹음했는데 작곡가의 시대에 만들어진 플레이엘 피아노로 녹음했다. 지난 8월에는 폴란드에서 시게루 가와이를 연주했고, 몇 년 전에는 독일에 몇 개 안 남은 수작업 브랜드인 슈타인그래버를 말로만 듣다가 드디어 처음으로 연주했다.”

이번에 고른 ‘3m 피아노’는 소리의 대비가 분명한 악기라는 기준에 맞았다. “이번 공연은 ‘소곡집’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음량의 범위가 크고, 민첩한 피아노를 원했다.” 손열음은 같은 악기를 10여년 전 연주해봤다고 했다. “타이베이 국립극장에는 스타인웨이 외에도 파지올리, 뵈젠도르퍼, 야마하가 있었는데 당시 연주곡인 베토벤 ‘황제’ 협주곡과 이 남다른 스케일의 피아노의 기상이 잘 어울릴 것 같아 골랐다.” 6일 연주한 파지올리에 대해 손열음은 “큰 소리뿐 아니라 작은 소리까지도 잘 표현해주는 재빠른 악기였다”고 평했다.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뵈젠도르퍼로 연주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사진 마스트미디어


"관리가 생명"


피아니스트에게는 피아노의 딜레마가 있다.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다닐 수 없기 때문에 불리하다. 하지만 공연장에 잘 관리된 좋은 악기가 있다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연주하려는 음악에 잘 맞는 악기를 찾아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스타인웨이를 선택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6월 독주회에서 예술의전당 피아노 중 일련번호가 115로 끝나는 피아노를 선택했다. 조성진도 5월 도쿄필과 협연에서 같은 피아노를 선택했다. 예술의전당 측은 “115는 2013년 도입한 스타인웨이인데 소리가 밝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 악기”라고 설명했다.

몇몇 피아니스트는 ‘스타인웨이 일색’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을 찾아낸다. 지난달 20일 포르투갈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도 예술의전당에서 파지올리로 독주회를 열었다. 이때는 파지올리 F278로 손열음의 피아노보다는 사이즈가 작았다. 피레스가 연주한 악기는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가 2021년 폴란드에서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스타인웨이 대신 선택해 연주하고 우승했던 바로 그 피아노였다. 안드라스 쉬프는 2022년과 지난해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뵈젠도르퍼를 선택했다. 물론 자신의 전용 피아노와 조율사를 대동하는 크리스티안 짐머만 같은 피아니스트도 있다.

손열음은 “사실 공연용 피아노는 평상시 얼마나 잘 관리가 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내 취향과 딱 맞는 피아노가 관리가 안 돼있을 때는 선택할 수가 없다. 악기의 성격과 색채보다는 관리의 세심함과 조율의 역량이 더 중요한 척도가 되곤 한다.”


"공연장 피아노 다양해야" 지적도


세계적으로도 공연장 피아노에서 스타인웨이의 점유율은 높다. 하지만 한국의 공연장에서는 그 비중이 유독 더 크다. 예술의전당에는 스타인웨이가 10대, 다른 브랜드로는 야마하만 1대가 있다. 롯데콘서트홀에는 스타인웨이만 4대다. 지난달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쇼케이스를 열었던 풍월당의 박종호 대표는 “공연장의 피아노 브랜드도 다양해질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손열음은 “유럽 전역에는 다양한 피아노를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어 피아니스트들도 호기심을 키워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 악기가 통용된 역사 자체가 짧고 지리적 특성도 있지만 인적 자원으로 세계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만큼 훌륭한 조율사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다양한 악기의 강국도 될 수 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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